워싱턴-장명화

세계 여느 나라처럼, 남한에도 시대의 본질을 언어로 승화시킨 시인들이 많습니다. 이들은 모두, 예술가로서의 출발은 우리 주변의 사회와 인간의 삶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생각을 작품으로 표출할 뿐만 아니라, 직접 사회운동에 뛰어들기도 했습니다.
RFA 초대석, 오늘은 1970년대의 대표적인 반체제 저항시인, 김지하씨를 모셨습니다. 김 씨는 최근 워싱턴을 방문해 자신의 작품 세계를 조명해 보는 시 낭독회를 가졌습니다. 김씨의 본명은 김영일이며, ‘지하’는 필명으로 ‘지하에서 활동한다’는 뜻을 안고 있습니다. 사회현실에 대한 강한 비판의식이 담긴 시를 쓰면서, 민주화 운동에 투신, 여러 차례 옥고를 치렀습니다. 대표적인 시로는 ‘타는 목마름으로,’ ‘오적’ '황토‘ ’애린‘ 등이 있습니다.
지난 1970년에 지배층의 탐욕을 적나라하게 비판한 시 ‘오적’으로 인해, 체포돼 6년 넘게 감옥에 갇혀있었는데요, 결국 남들이 체념과 침묵 속에 있을 때 두려움을 떨쳐내고 자기 목소리를 내는 용기 때문이 아니었습니까? 원래 어릴 적부터 용감했었나요?
김지하: 아닙니다. 전혀 반대입니다. 제가 가끔 질문 받는 사항인데, ‘용기가 어디서부터 나느냐?’는거죠. 반은 민주주의적인 시민의 의무감, 그리고 반은 원한입니다. 대학 시절 초반에 한일회담 반대운동, 한일 굴욕회담 반대운동이 있었는데요, 제가 주동자 중의 한 사람이어서, 수배가 돼서 도망다닐 때, 부모님을 잡아갔어요. 그 후 아버지가 고문으로 인해 고혈압이 와서 반병신이 됐습니다. 그 소식을 숨어있는 장소에서 듣고 제가 이를 갈았던 적이 있습니다.
박체제만큼은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 반드시 물리치고야만다고 했었죠. 제가 뭐 영웅이어서 그런 것은 아니고, 한 사람의 지식인으로서, 또 한 사람의 청년으로서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보고, 거기에 더해서 근본적으로는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이 같이 작용했던 것 같습니다.
청취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김지하 시인의 ‘오적’ 일부분을 김시인의 목소리로 직접 듣겠습니다.
김지하: (중략) “서울이라 장안 한복판에 다섯 도둑이 모여 살았겄다.남녘은 똥덩어리 둥둥구정물 한강 가에 동빙고동 우뚝북녘은 털 빠진 닭똥구멍 민둥 벗은 산 만장아래 성북동 수유동 뾰죽남북 간에 오종종종종 판잣집 다닥다닥 게딱지 다닥 코딱지 다닥 그 위에 불쑥장충동 약수동 솟을 대문 제멋대로 와장창 저 솟고 싶은 대로 솟구쳐 올라 삐까번쩍으리으리 꽃궁궐에 밤낮으로 풍악이 질펀 떡치는 소리 쿵떡예가 바로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이라 이름하는,간뗑이 부어 남산하고 목질기기가 동탁배꼽 같은천하흉포 오적(五賊)의소굴이렷다.... (중략)
시 ‘오적’을 발표한지도 벌써 37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다시 29살의 나이로 돌아간 다해도 당시 나라현실을 과감하게 풍자한 ‘오적’을 쓰겠습니까?
김지하: 그렇게 생각하는 바보가 어디에 있겠어요? 후회투성이지. 조금 더 영리했더라면 좋았을 텐데요. 감옥에 안가고 좀 어떻게.. 그렇다고 매일 후회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잘난 것도 없어요. (기자: 너무 겸손하게 말씀하시네요) 아니 겸손이 아니라, 뭐 감옥간게 뭐 그리 잘났어요? 감옥에 안가고 싸운 사람들도 역사에 얼마든지 있는데요. 그냥 시민적인 의무, 지식인으로서의 사명 때문에 하다보니까 됐다고 말하는 게 가장 옳습니다.
1980년 감옥에서 나온 이후 김 시인의 관심은 투쟁보다는 생명운동으로 넘어갔습니다. 지난달 서울의 한 강연회에서는 “사회, 경제, 정치적인 혼란이 전 세계적으로 만연해있다”면서 “이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을 생명에서 찾아야한다”고 주장했는데, ‘생명’을 어떤 뜻으로 쓰고 있습니까?
김지하: ‘생명’이야말로 모든 우주적인 존재의 근원이 아닙니까? 그리고 이 세상에 사실 따지고 보면 존재라는 것은 없죠. 있는 것은 살아있음, 살아있음만이 있는 겁니다. 그냥 있는 것은 없어요. 가만히 생각해보세요. 끊임없이 변해야 살고, 살아있는 것은 끊임없이 변하죠. 끊임없이 생성하고, 태어나고, 자라나고, 성숙해서, 몰락해서 사라지고, 또 태어나고... 그러니까 그 생명을 우리는 자꾸 존재로 바꾸어서 영원한 존재에 대한 갈망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허상입니다. 산 것은 반드시 죽어야 되고, 죽기 때문에 더욱 살아야 되죠. ‘죽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은 어차피 죽어야 되는데, 죽기 싫거든요.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죽어야 된다는 것을 자기 스스로 납득해야 제대로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생명’을 생각하게 됩니다. 또 ‘생명’을 생각한다면, 나만이 아니고 타자의 생명도 생각해야 합니다. 왜냐면, 생명이라는 것은 개체적이면서도 동시에 유기체적이기 때문입니다. 공동체적이구요. 지구 온난화, 생태계 오염이라던가,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 전쟁, 테러, 혹은 억압들이 존재하는 한은 제대로 산다고 볼 수 없습니다.
방금 ‘억압들이 존재하는 한은 제대로 산다고 볼 수 없다’고 했는데요, 한 가지 의문이 떠오릅니다. 한반도의 북쪽에서 날마다 일어나고 있는 ‘억압’, 생존권마저 박탈당한 채 고통 받고 있는 북한주민들에게 생명운동은 어떤 의미로 다가설 수 있겠습니까?
김지하: 대답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 말을 쉽게 해버리는 것은 간단한 일이지만, 말을 하고난 뒤에 책임을 어떻게 져야합니까? ‘북한 김정일 정권 나가라’ 그런 이야기는 저는 아직 할 수 없습니다. 왜냐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좀 더 들여다봐야 되고, 역사적으로 흘러온 내력을 알아야 됩니다.
북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느끼는가? 그들이 굶주리는 것도 틀림없고, 억압에 시달리는 것도 틀림없지만, 그러나 반대로 볼 때 그들은 김 씨 체제를 하나의 삶의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있거든요. 거의 종교적으로요. 그런 사람들에 대해서 어떻게 하는 게 옳을까요? 말을 함부로 하기가 참 힘들죠. 그래서 앞으로 여러 가지 노력을 해야 될 것 같아요.
노력하면 북한의 변화가 오리라고 보십니까?
김지하: 음.. 나는 그게 반드시 오리라고 봅니다. 난 북한의 변화가 중국의 변화와 함께 반드시 오리라고 봅니다. 지금 중국의 경제성장이라는 것은 놀라울 정도인데요, 또 그 경제성장과 함께 각 사회분야에 약진이 일어나는 것은 필연적입니다. 그렇게 되면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는 굉장히 높아질 겁니다. 그러면 북한이 미국과 남한과 좋은 관계를 추구하고, 그러면서 개혁, 개방을 하겠죠. 그건 필연이니까요.
그렇게 되면 자연히 중국모델을 취하지 않겠어요? 개혁/개방만 중국모델인게 아니라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 자유에 대한 요구 등도 같이 성장하지 않을까, 그리고 남쪽에서의 성실한 도움, 민족으로서의 어떤 협조와 사랑이 점차 시간이 흐르면 그 사회의 자산이 되지 않을까요? 변화의 근원이 되지 않겠습니까? 저는 시끄러운 사태가 일어나는 것은 반대합니다. 북쪽 (의 체제)이 그대로 있으면서 개혁/개방이 점차 되는 게 북쪽에 살고 있는 우리 동포들에게 좋죠.
김 시인은 1975년 노벨 문학상 후보에 추천된 이래, 제 3세계 노벨상이라 불리는 ‘로터스상,’ 세계 인권대회 위대한 시인상, 부르노 크라이스키 인권상 등 권위 있는 상을 많이 탄 유명시인인데요, 얼마 전 나이 든다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고백하는 시집을 내셔서 개인적으로 무척 의외였습니다.
김지하: (웃음) 내가 바라든, 바라지 않던 늙어요. 그런데 어떻게 보면 그걸 이제까지 모르고 살았다고. 안 늙을 것처럼. 그러나 세월은 가고. 얼굴에는 주름살이 오고, 마음 안에는 외로움이 깃들고. (기자: 그래도 지금 동안이신데요?) 에이. 무슨 말을... 말도 안 돼는 소리지... 그게 어쩔 수 없는 것이죠. 늙는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생명의 이치를 받아들이는 것과 다름이 없어요. 죽어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진실하게 살 수 있는 게 아닙니까?
그런데 이게 사실은 어려운 이야깁니다. 시집 ‘유목과 은둔’ 같은 경우에 나이가 들면서 오는 이야기를 할 때에 공연히 그걸 비틀어서 근사하게 말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탁 까놓고, "아, 나 내일모레면 죽겠구나, 쓸쓸하다“ 이런 이야기로 그냥 푸념하듯이 쓴 겁니다. 그게 더 나을 것 같아서 썼더니만, 많은 비평가들이 ‘시로서는 함량미달이다’라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