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에서는 백화점은 물론 마트와 슈퍼에만 가도 예쁘게 포장된 추석선물세트를 흔히 볼 수가 있습니다. 텔레비전 홈쇼핑 채널을 보면 한우세트 또는 LA양념갈비세트들이 많이 홍보되고 있어 재미있기도 합니다. 지난 주, 백화점을 찾은 저는 선물세트장에서 떠날 줄 모르고 서 있는데 백화점 안내원이 다가와 무엇을 찾는가 하고 물었습니다.
순간 나 자신도 모르게 소리 없이 피식 웃었습니다. 잠깐 이 세상에 안 계신 부모님이 생각이 났거든요. 고작 명절 공급으로 차려지는 술 한 병 드린 것 외에는 언제 한번 제대로 된 좋은 선물을 드린 기억이 전혀 없었습니다. 성인이 되어 결혼을 하고 자녀를 키우면서도 부족한 것에 대해서 항상 부모님에게 의존하는 것을 그저 응당한 것으로 생각해 왔습니다.
하기에 이곳 남한에 온지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언제 한번 부모님을 잊은 적이 없거든요. 가는 곳 마다 부모님에게 드릴 추석선물을 고르고 있는 많은 사람들 속에 있다 보면 그들이 부럽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며 백화점 쉼터에 앉아 있는데 마침 텔레비전에서 문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평양시 순안공항에 도착해 육해공군 의장대와 군악대의 사열 뒤 평양시민들의 대 환영을 받으며 시내로 들어서는 모습이었습니다. 문득 고향 생각이 났습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 내 고향이 입니다만 텔레비전 화면에 나오는 내가 나서 자란 고향, 평양 시내 모습을 바라보는 순간 괜스레 마음이 설레었습니다.
언뜻 언뜻 스쳐 지나가는 연못동의 삼거리와 4,25문화 회관을 비롯한 금수산궁전과 대극장과 거리와 아파트들의 모습이 나왔는데 그 속에 제가 살았던 정든 집과 어린 시절 뻔질나게 오고 가던, 정든 곳들이 보였습니다.
꽃다발을 손에 들고 흔들고 있는 시민 환영 대열을 보며 순간 잠시나마 마치 내가 그 속에 있는듯 허황된 환상이 눈앞에 그려지기도 했네요. 문 대통령과 김정은이 잠시 잠깐 차를 타고 스쳐 지나가는 그 한 순간을 위해 그 많은 시민들이 얼마나 많은 시간, 강도 높은 훈련을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순간 제 몸이 굳어지기도 하네요.
문 대통령이 방문한다는 결정이 난 그 순간부터 평양시민들에게는 강한 통제와 환영 훈련을 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냈으리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하거든요. 김정은이 직접 나오는 1호 행사이기 때문에 행사 인원을 추천하는 것부터 시작해 꽃다발 만드는 것 그리고 시민들에 대한 사상 교육과 행사 복장, 그 어느 하나 빈틈없이 해야 하는 조직이니까 말입니다.
얼마나 어렵고 고통스러웠을까 생각하면서도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끝이 없었습니다. ‘고향의 동창들과 친구들은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 또 동네 주민들은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 혹시라도 저 시민 환영 대열에 낯익은 얼굴이 있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에 눈이 빠질라 뚫어지게 보게 되네요.
화보나 그림 그리고 텔레비전을 통해 고향의 모습을 자주 보았지만 이번에 보는 고향의 모습은 더 의미가 있는 듯합니다. 고향을 떠난 지도 오랜 세월이 흘러 인제는 강산도 두 번은 변했을 세월이 흘렀습니다. 길거리에서 고향 사람을 만나도 서로 소개 인사가 없이는 알아 볼 수도 없을 거라 해도 과언이 아니네요.
그래서 제가 이 나이 살아오면서 잘한 것 중에 하나가 이곳 남한에 사랑하는 내 자녀들과 함께 온 것이고 성공해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것이라고 큰 소리 치며 자랑하거든요. 많은 사람들은 성공하고 행복한 사람이라고 하면 흔히 땅과 돈 그리고 명예를 생각 합니다만, 저는 그것이 다가 아니라고 얘기합니다.
이곳 남한에는 내가 노력하면 하는 것만큼 내 것이 되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가고 싶은 곳에 갈수가 있고 먹고 싶은 것을 먹을 수가 있고, 입고 싶은 것을 입을 수가 있고 내 맘대로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거든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말입니다. 저는 이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행복을 고향 땅의 모든 분과 나누기를 바라며 제 수기 시간을 마치려 합니다.
그 동안 함께 해준 청취자 여러분 참으로 고마웠습니다. 항상 건강하십시오. 다시 만날 그 날을 기다리며 저는 제 자리에서 열심히 살겠습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