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등산을 마치고 저녁을 먹고 호텔로 돌아와 잠깐 소파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시간은 저녁 7시였습니다. 갑자기 밖에서 음악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는 순간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밖에는 남해 바닷바람으로 인한 강추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어른과 아이들이 수영을 하고 있었고 그 무대 위에서는 공연이 한창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수영복을 입은 수영장이라는 것을 까마득히 잊은 채 손전화기를 들고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었습니다. 눈앞에서 황홀한 모습이 현실화되고 있다는 자체가 너무도 놀라워 그만 입을 다물지 못하고 “우와!” 하는 소리만 질렀습니다. 갑자기 손전화기 벨이 울렸습니다. 11살 손녀에게서 걸려오는 전화였습니다. 손녀는 제주도에 있다는 이 할미의 영상과 함께 호텔을 영상으로 보여 달라고 하네요.
손전화기의 영상으로 호텔 곳곳과 함께 외부 수영장에서 진행되고 있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 주었습니다. 손녀는 여름 방학에는 꼭 함께 가자는 약속을 받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전화를 끊자마자 승강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갔습니다. 3층 호텔에서 내려다보는 모습과는 달리 에메랄드빛 수영장물과 야자수 나무들과 전등불에 어울려 아름다운 환경이 제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수영장물이 궁금하여 우선 손을 담가 확인했습니다. 응당 찬물인줄 알았지만 따스한 온수였습니다. 넓은 수영장에서는 연기처럼 김이 몰몰(모락모락) 났습니다. 수영장 물 안에 있는 사람들은 수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무대 위에서 진행하고 있는 공연에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었습니다. 저도 그들 못지않았습니다. 수영장이 아니라 노천탕이 따로 없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바닷바람과 함께 쌀쌀한 저녁 날씨로 인해 볼은 칼로 베이는 것 같았지만 춥지가 않았습니다. 수영을 하면서 공연을 볼 수 있는 현실, 귀족들에게만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알고 있었던 저로서는 나 자신을 믿을 수 없을 만큼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사실 저에게는 수영장에 대한 안 좋은 기억으로 인해 물에 들어가는 것은 그리 좋아하지 않았거든요. 어린 시절 여름방학 어느 날, 학교 수영장에서 친구들과 물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수영장의 절반은 중학생들이 수영을 할 수 있는 곳은 조금 깊었고 어린 학생들이 할 수 있는 곳은 낮게 만들었거든요.
낮은 곳에서 제일 친한 친구와 함께 손을 잡고 놀고 있었는데 장난기가 심한 친구가 갑자기 뒤에서 등을 밀었습니다. 하여 친구와 함께 손목을 잡은 채 깊은 곳으로 빠져 들어 갔습니다. 아무리 사람을 살려 달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소리는 입안에서 뱅뱅 돌았고 머리는 밑으로 점점 빠져 내려갔습니다.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지금도 생각해 보면 두렵고 무서운 것은 상상도 못할 정도였습니다. 정신을 차려 보니 병원 침대 위에 친구와 나란히 누워 있었습니다. 어린 몸에 너무도 많은 물을 먹었다고 했고 조금만 시간이 지났으면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지도 모른다고 했거든요. 그 이후에도 잠을 자다가도 물속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꿈을 꾸었고 이로 인해 심장치료도 받았습니다.
군복무 시절 한 여름 장마철 많은 폭우로 인해 순식간에 중대 병실이 산사태에 밀려 떠내려 없어지는 모습을 보았거든요. 비록 사람은 다치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그로인해 수많은 시간과 세월이 흘렀지만 이곳 남한에 와서 자주 바닷가 해수욕장을 찾을 때마다 마치 어린아이들처럼 파도도 두렵고 물 깊은 곳에는 가까이 다가가지 못해 친구들의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었습니다.
잠깐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수영장 밖에서 열심히 무대공연 사진을 찍던 남편이 예쁜 포즈를 잡으라고 요구하네요. 이번 신라 호텔 수영장에서의 내 일생 처음으로 물의 두려움을 모르고 즐겁고 행복을 만끽했다는 것 자체가 저로서도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행복이 있는 곳에는 두려움도 무서움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런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이번 제주도 여행이 가족들과 함께 손자들과 함께였더라면 조금도 서운함이 없었을 것인데, 언제 기회가 되면 제주도의 신라호텔 여행을 가족들과 함께 해 보고 싶네요. 서울에서 김춘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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