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생각 평양생각] 임진각 망배단에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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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추석날 아침, 남한의 실향민들이 해마다 추석과 설 명절이면 함께 모여 합동차례를 지내는 임진각 망배단으로 향했습니다. 막히는 길 탓에 경기도 파주에 있는 임진각으로 가는 길은 쉽지 않았습니다. 전날에 비가 많이 내린 뒤 날씨는 조금 흐렸지만, 다행히 비는 내리지 않고 선선했습니다.

조금 일찍 도착한 저는 임진각 주차장과 휴게소를 돌아보며 군 출신 탈북자 동료들을 기다렸습니다. 정오 12시가 거의 되어서야 친구들과 함께 임진각 망배단으로 갔습니다. 이미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군복을 차려 입은 우리 일행은 조용히 행사장 뒤편에 절도 있게 섰습니다. 우리들은 북한 군복이 아닌, 남한 군복을 입고 있었지만, 그래도 군복을 입고 등장한 우리 모습이 이상했는지 몇몇 사람들은 의아한 눈으로 쳐다봤습니다.

이 행사에 참가한 모든 사람들은 돌아갈 고향이 없는 실향민들이었습니다. 이북5도청 간부들도 참석했고, 한쪽에서는 실향민들과 실향민 2세, 3세들이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차례를 지내려고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차례를 지낸 실향민들은 북녘 땅 가족들을 그리워하는 애타는 마음으로 몇 번이고 절을 반복했습니다. 고향이 평양이라는 한 어르신은 연세가 너무 많아 혼자 걸을 수가 없는 몸이었지만, 삼면자전거(휠체어)에 몸을 실은 채 아들의 부축을 받으며 상을 차려놓은 망배단까지 올라가 절을 올렸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저는 고향 땅에 묻혀 계신 부모님 생각에 저절로 눈물이 났습니다.

우리 일행도 순서가 되어 임진각 망배단에 올라 합동제를 지냈습니다. 그리고는 자가용 승용차를 타고, 오두산 통일전망대를 찾았습니다. 오두산 통일전망대는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성동리에 위치한 전망대로 그 위에 올라가면 멀리서나마 북한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습니다.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오두산에 세워진 이 전망대는 안보교육장이기도 합니다. 다행히 날씨가 좋아 직접 눈으로 북한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북녘 땅을 바라보며 언제쯤 다시 고향에 갈 수 있을 지 기약 없는 현실을 생각하니 마음이 착잡했습니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점심을 먹기 위해 야외 식탁이 놓여 있는 경치 좋고, 아늑한 곳으로 갔습니다. 식탁 3개를 연결해 놓고 각자가 미리 준비해온 음식을 차려 놓았습니다. 북한 사람들이 흔히 먹는 두부밥을 해가지고 온 사람도 있었고, 고기에 떡을 준비해 온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한창 갖가지 음식을 맛있게 먹고 있는데 누군가 '역시 음식에서 북한 사람냄새가 난다'고 말해 모두가 크게 웃었습니다. 저는 한참 웃고 있는 그들을 보며 서로 나름대로의 아픈 상처가 있고, 오늘 같은 추석날엔 더욱 마음이 착잡하겠지만, 그래도 이 땅에서 행복을 찾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우리가 앉았던 곳은 임진강을 사이에 두고 남녘과 북녘 땅이 마주하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함북도 무산군에 있는 두만강 폭보다 별로 넓지 않아 보이는 임진강 건너 북녘 땅 마을 입구에서는 사람들의 움직임도 보였고, 벌판의 벼들은 누렇게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고향을 마주하고, 점심을 먹기는 처음이었습니다. 너무나 가까워서 더욱 한스러웠습니다. 동료들은 고향 땅을 바라보며, 고향에서의 잊을 수 없는 추억들을 나누었습니다. 고향이 개천인 친구도 있었고, 강원도 원산이 고향인 친구도 있었고, 황해도가 고향인 친구도 있었습니다.

북한에 있을 때 자식을 찾기 위해 통행증 없이 평양을 떠나는 저를 위해 무사히 갔다 오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말없이 제 등 뒤에서 소금을 뿌려주시던 어머님의 모습이 새삼 떠올라 눈물이 났습니다. 고향 이야기를 하던 친구들의 눈에서도 어느덧 눈물이 글썽거렸습니다.

오후 4시쯤이 돼서야 우리는 각기 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산소에 다녀오는 차량들로 도로는 꽉 막혔습니다. 비록 돌아오는 길은 힘들었지만, 고향 친구들과 서로 아픈 마음을 어루만지고, 고향 땅을 바라보고 온 것만으로도 행복했습니다. 밤 12시가 되어 저는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둥글고, 환한 보름달을 바라보며 고향 땅에 묻혀 계신 부모님의 묘를 찾아가 생전에 못다 한 말을 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올 수 있도록 해달라며 소원을 빌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