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추웠던 겨울은 가고 봄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예로부터 봄은 여성들의 계절이라는 말이 있듯이 두툼한 털 외투와 목도리 그리고 내의를 벗어 던지고 예쁜 옷을 골라 입고 외출 준비를 서두르고 있는데 알지 못할 번호로 부터 전화 한 통이 걸려 왔습니다. ‘여보세요’하는 여성의 예쁜 목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누구시죠?” 혹시나 했는데 연희의 목소리였습니다.
고향이 강원도인 연희는 나보다 조금 먼저 이곳 남한에 온 선배이지만 이곳 한국에 와서 처음으로 알게 됐고 친동생처럼 지냈던 친구이기도 합니다. 내가 살고 있었던 집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서 살았던 그 친구가 어느 날 갑자기 어디론가 사라졌거든요. 말없이 사라진 친구에게 조금은 섭섭했지만 무슨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것이라고 좋게 생각을 했고 또 한 번쯤은 그리워 했었습니다.
정말 반갑고 기뻤습니다. 그 친구 역시 내가 생각하고 있었던 그대로 첫 말을 합니다. 이곳 남한에서 처음으로 고향 사람을 만나 친언니처럼 친형제처럼 생각해 왔다면서 못내 반가워하면서도 그동안 미안했다고 하네요. 10여 년이 지나 50대 중반이 넘은 그에게서 소식이 올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지만 알고 보니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었습니다.
불과 한 시간 거리였습니다. 너무도 기쁘고 반가움에 달려갔습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멈추어 서서 바라볼 정도로 한 동안 우리는 서로 부둥켜안고 콩당콩당 뛰었습니다. 친형제의 이산 가족상봉이 따로 없었습니다. 그 친구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하기도 했습니다. 그에게도 말 못할 상처가 있었습니다.
고향의 부모님과 사랑하는 어린 딸을 남겨 두고 이곳 남한으로 오면서 그 상처의 아픔을 치유해 보려고 오는 과정에 알게 된 남자분과 재혼을 했었거든요. 말로는 성격차이라고 하지만 그와 이별 후 서울을 떠나 멀리 갔다가 현재는 경기도의 어느 조용한 곳에서 살고 있다고 하네요. 그 친구의 말에 의하면 아무리 좋은 외국이라고 해도 이곳 남한이 제일이라고 합니다.
다시 돌아오고 보니 마치 어디 멀리 잠깐 외국으로 갔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듯 한 기분이라고 합니다. 누구도 알 수 없는 곳에 가면 행복하고 잘 살 줄 알았다고 하네요. 하지만 잠시 잘못된 본인의 판단과 생각으로 괜히 헛 세월만 보냈다고 하면서 좋은 경험은 많이 해 보았다고 덧붙였습니다. 피부색도 다르고 언어도 다른 먼 곳에 가보니 고향과 사랑하는 가족들과 더 멀리 떨어져 있는 기분이 들어 괜히 기쁜 날 즐거운 날이 별로 없었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돈 많고 잘 먹고 잘 살면 근심 걱정이 없어질 줄 알았는데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60을 바라보는 지금에 알게 됐다고 합니다. 고향에 계시는 나이 많은 부모님은 건강하게 생존하고 있을 지, 또 두고 온 딸도 이제는 성인이 되어 누구의 아내로 아이 엄마가 되었을 것인데, 아직 소식도 모르고 사는 엄마가 무슨 엄마 자격이 있는 가고 한탄도 합니다.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면서 경제적 어려움에서 조금 벗어나 보려고 중국에 있는 친척집을 찾아 갔었다고 합니다. 친척집에 찾아 갔건만 시골에서 살고 있는 그들에게 큰 도움을 받을 수가 없어 돈이라도 조금 벌어 가려고 친척이 살고 있는 동네 이 집 저 집 찾아다니며 농사일을 도와주었다고 하네요.
그러던 중 한 동네에서 돈을 벌기 위해 이곳 저곳으로 떠돌아다니는 고향 사람을 알게 됐다고 하네요. 남한으로 가면 고생도 끝이고 잘 살 수 있다는 그의 말에 동감이 되어 그 분과 함께 이곳으로 오게 됐고 그 분과 재혼을 했다고 하네요. 처음에는 돈을 벌어 고향에 두고 온 딸도 부모님도 모셔 오려고 했지만 생각대로 쉽지가 않았다고 합니다.
친척도 없고 아는 사람 없이 외로움을 많이 겪고 있을 당시 저를 알게 됐고 단체 활동에도 조금씩 참여를 해 보았지만 전부가 아니라고 판단을 하고 결국에는 돌고 돌아 다시 고향이 가까운 곳으로 왔지만 외국으로 갈 결심을 했다고 하네요. 행복은 별게 아니라고 하면서 그냥 편하게 누구에게 구속됨 없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자그마한 것일지라도 만족을 느끼면 그것이 행복이라고 덧붙이면서 이제는 열심히 노력해서 고향에 두고 온 딸의 소식과 부모님의 소식을 아는 것이 제일 중요한 목표라고 합니다.
12년 만에 만난 동생 같은 친구와 많은 얘기를 하면서 저는 우리의 아픈 상처를 치유해 줄 사람은 우리 본인 스스로 노력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지만 서로 서로에게 귀를 기울이고 서로 많은 관심과 사랑을 베풀어 주는 것도 치유 중의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입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