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자) ‘통일의 주축, 장마당세대’ 9화 진행에 김진국입니다. 한국에 정착한 북한 출신 학생들이 독일 연방의회 산하 기관의 초청을 받아 통일 30주년인 독일을 직접 경험했습니다. 남북한이 통일되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를 이번 독일 방문을 통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는 장마당세대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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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청소년 최초의 야구단원인 박솔 학생과의 전화 통화에서 우연히 독일 방문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진행자) 야구단이 이번 일본 여행 후 야구의 본산인 미국도 언젠가는 방문할 계획이라고 들었어요.
(박솔) 일본 다녀오고 곧장 독일을 다녀왔습니다.
(진행자) 독일 여행을 한 건가요?
(박솔) 아니요. 독일 연방의회 산하의 콘라드 아데나워 재단이라고 있는데 재단총재님이 제가 다니던 여명학교를 방문하셨을 때 '독일에 초청하겠다'라고 약속하셨는데 이번에 그 약속이 실현되어서 친구들과 독일을 방문했습니다.
(진행자) 언제 갔어요?
(박솔) 지난 2월 17일부터 23일까지 5박 6일 일정으로 다녀왔습니다. 당초에는 학생 7명이 갈 예정이었는데 학생 한 명이 중국을 다녀오는 바람에 (코로나19영향으로) 못 가고 대신 선생님이 함께 가셨습니다.
(진행자) 흥미로운 여행이겠네요, 선생님과 아데나워 재단 그리고 함께 갔던 학생들과 대화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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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자) 학생들과 함께 독일을 방문했던 여명학교 전형국 선생님에게 독일 방문의 일정과 인상 깊었던 장면을 질문했습니다.
(전형국 교사) 독일 연방의회 산하의 콘라드 아데나워(Konrad-Adenauer) 재단을 통해서 매년 통일 세미나를 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노르베르트 람머트(Norbert Lambert) 콘라드 아데나워 재단 총재가 여명학교를 방문하셨을 때 여명학교 학생을 독일에 초대하겠다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지난 2월 17일부터 독일을 일주일간 방문했습니다. 독일 남동부의 드레스덴과 베를린 등을 방문하고 돌아왔습니다. 드레스덴에서는 일반 고등학교 학생들과 교사를 만났습니다. 드레스덴이 있는 작센 주 문화부 (교육청) 교사와 고등학생도 만났습니다. 베를린에서는 베를린 장벽과 2차세계대전 때 유대인 집단학살을 뜻하는 홀로 코스트 추모비, 브란덴부르크 문 그리고 독일의 연방의회를 방문했습니다.
(진행자) 선생님이 보셨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무엇이었습니까?
(전형국) 제일 기억 남는 건 아무래도 베를린 장벽이었습니다. 박솔을 비롯한 학생들이 북한에서도 살았고 남한에서도 살고 있지만 여전히 남북은 분단된 상황입니다. 독일은 분단에서 통일을 이룬 과정이고 지금은 미래로 가는 과정인데, 학생들은 독일 통일의 과정을 직접 봐서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고 말하면서도 남북한이 통일될 때 나의 심정은 어떨지 그리고 내가 해야 할 일은 어떤 것일지를 많이 생각했다고 말했습니다. (여명학교 학생들은) 남북한을 모두 경험한 사람이기 때문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현장을 보면서 독일 통일의 역사를 현장체험을 한 것과 같은 그런 모습들이었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통일에 대한 시선을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할 수 있었던 점에서 의미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진행자) 청취자들을 위해서 장마당세대 학생들이 독일 현장 체험학습을 통해 배운 내용을 잠시 소개해 드리면 베를린 장벽은 1961년 세워졌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에 독일은 한반도처럼 연합군의 점령 지역이 되었고, 그 결과 분단됐습니다. 한반도에서 소련 군대와 미국 군대는 두 개의 점령지역을 만들었는데, 독일에서는 점령지역이 4개였습니다. 미국, 구소련, 영국, 프랑스로 나뉘었는데, 구 소련이 점령했던 지역이 동독 나머지 세 나라가 점령했던 곳이 서독이 됐습니다. 베를린 장벽이 세워진 배경을 러시아 모스크바 대학과 평양 김일성 대학 출신의 한국 국민대 안드레이 란코프 교수가 설명합니다.
(란코프 교수) 1961년 베를린 장벽이 생길 때까지 누구든지 자유롭게 동베를린에서 서베를린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특별한 검사도 받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동베를린에 살았지만, 서베를린에 있는 공장이나 사무실로 출근했습니다. 사회주의 국가 중에서 동독처럼 도망가기 쉬운 나라가 없었습니다. 사실 결과를 예상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1949년부터 61년까지 하루에 약 800명씩 도망갔습니다. 기본적인 이유는 동독이 다른 사회주의 국가에 비해 잘 살기는 했지만, 자본주의 나라가 된 서독만큼은 잘 못살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동독은 인구감소라는 위기에 빠졌고, 특히 도망자 중에는 청년 학생이나 지식인, 기술자들이 많았습니다. 이 같은 상황을 계속 방치하면 동독에는 늙은 사람과 아무런 교육을 받지 못한 미숙련 노동자들만 남게 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결국, 동독 공산당 지도부는 도망자들을 막기 위해 결정적인 조치를 취하기로 했고, 모스크바의 허락을 받아 베를린 장벽을 건설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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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자) 다시 여명학교 학생들과 독일 통일 30주년의 현장을 방문한 전형국 교사와의 대사를 이어갑니다. (진행자) 학생들과 만난 독일 학생들이나 교사들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전형국) 겨울방학 때 간 거라서 드데스덴 일반학교에서는 학생들과 가깝게 대화하기 어려웠습니다. 대신 넬슨 만델라 국제학교에서는 다양한 문화권 자녀들이 많아서 훨씬 자유롭게 대화했습니다. 이곳의 학생들은 필리핀 크로아티아, 스페인 심지어 난민까지 있어서 여명학교 학생들과 심정적으로 비슷한 상황과 환경이어서 더 대화가 잘 되는 것 같았습니다. 드레스덴의 독일 학생들은 통일을 경험한 이후의 세대여서 선대에 이루어 놓은 업적을 가지고 살아가는 세대라서 탈북학생들과 공감대 형성이 어려워 보였습니다. 하지만 국제학교 학생들은 소수계이고 문화도 다양해서 우리 학생들과 소통도 잘됐던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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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자) 박솔 학생은 올해 24살로 2016년 12월부터 한국에서 살았습니다. 평안남도 에서 태어나 강원도를 거쳐 탈북 전에는 함경북도에서 생활했다고 합니다. 수의사가 되고 싶다는 박솔 학생은 이번 독일 방문에서 통일 후 자신이 어떤 일을 할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박솔) 엄청난 많은 분들 만났구요, 많은 것을 배우고 왔습니다.
(진행자) 북한 출신 청년학생이 통일 30주년 맞아서 독일을 다녀온 것의 의미가 적지 않을텐데요
(박솔) 저는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남과 북이 언젠가는 통일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한국에 정착했습니다. 이번 독일 방문을 통해서 남북통일이 되면 남북을 연결하는 중개자 역할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요즘 남북한 사이가 좋다가도 지금은 관계가 안 좋잖아요, 그래서 과연 언제 통일이 될까 하는 부정적인 생각도 있고 통일된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독일에 갔습니다. 독일 방문 중에 동독,서독 분단되었을 때 동독에 있던 분들이 통일 후 잘사는 스토리들 많이 들었습니다. 그분들의 경험담을 들으면서 한반도가 통일되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수 없이 많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독일은 통일전에도 동서독 교류가 있었고, 서로 만날 수도 있었는데, 교육적으로 역사적으로 후대들에게 교육하려는 것을 보니까, 우리나라는 분단 시기가 너무 길어서 분단의 아픔 그리고 그 증거를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다 돌아가셔서, 북한과 관계도 안좋고 교류가 안되고 하니 그게 참 안타까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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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자) 세대와 지역의 인식 차이를 넘어서 한반도 미래의 길을 찾는 나침반이 되려는 ‘통일의 주축 장마당세대’ 제 9화를 마칩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김진국입니다. 청취해 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