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자) '통일의 주축, 장마당세대' 98화 진행에 김진국입니다. 아프리카에서 살고 있는 한인 청년들과 그들이 경험한 이국에서의 북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임우순) 안녕하세요, 저는 서아프리카 가나에서 테마라는 항구 도시에 살고있는 임우순 이라고 합니다. 13년 동안 건축일로 돈 벌면서 소소하고 평범한 일상을 즐기면서 살고 있습니다. (박혁) 안녕하세요. 아프리카에서 12 년차 살고 있는 박혁이라고 합니다. 저는 이것저것 많은 일을 하다가 현재는 조그맣게 옥수수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김태균) 안녕하세요. 김태균입니다. 탄자니아라는 곳에서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고 있고요. 오랜동안 의료NGO, 의료 봉사단체를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진행자) 아프리카에서 10년 이상 13년, 14년 살고 있는 한인 청년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임우순 씨는 적도 위편 서아프리카의 가나에 살고 있고 김태균 씨는 적도 바로 아래 동아프리카 탄자니아에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총각임을 강조하는 박혁 씨는 아프리카의 어느 나라에서 농작물 재배와 개인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남북한 문화를 경험해본 '웰컴 투 아프리카 동막골' 경험담
(진행자) 지금 이 소리가 뭐죠?
(김태균) 아잔이라고 부르는 무슬림들의 기도하는 소리입니다.
(진행자) 그렇군요. 이 방송을 들으시는 청취자분들이 아프리카의 생생한 현지 분위기를 느낄 수 있겠네요. 다음 주제로 넘어가죠. 다들 그곳(아프리카)에 살면서 북한을 경험하기도 했다면서요? 박혁 씨부터 이야기해 주실까요?
(박혁) 10년 쯤 전에 한국 정부와 대기업 후원으로 아프리카의 개발 지원을 하는 일을 했는데 그때 시기적으로 비가 많이 오는 그런 시기였어요. 근데 그러다 보니까는 그 한국에서 파견 오신 분들이 많이 몸도 안 좋으시고 실제로 뭐 교통사고도 나고 그랬습니다. 저도 몸이 안좋아서 병원에 가고 싶었는데, 누군가 북한사람이 운영하는 병원이 있다는 것을 알려줬어요. 북한 의사들은 아프리카 공립 병원에 소속돼서 파견됐는데 여섯 명 정도였습니다. 그 여섯 분도 지방마다 30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지역의 관한 병원으로 한 명씩 파견이 되었더라고요. 당시 제가 일하던 공사 현장이 되게 비포장으로도 한 400 킬로미터씩 떨어져서 한 4-5공사현장이 있었는데 그곳을 이동하다가 사고가 나서 손을 많이 다쳤었습니다. 급하게 꿔매야 하는 급박한 상황이어서 혼자 차를 운전해서 여섯 시간 정도 비포장 도로를 달려서 병원에 도착을 했습니다. 하지만 거기는 영어권 나라가 아니어서 말도 안 통하고 치료 받는 것이 너무 어려웠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북한 의사 선생님이 그때 많이 도움을 주셨어요. 그 북한 의사 분은 아내와 두 분이 살고 있었는데 한국 사람이 없는 곳에서 그런 도움을 받다보니 그분들과 친해졌습니다. 일단 말이 통하니까요. 도움을 많이 받은 감사함을 표하고 싶었지만 그곳이 국가 병원이다 보니까, 그런 개인적인 사례를 이런 건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어떻게든 답례를 하고 싶어서 돈을 건낼려고 했었는데 돈도 안 받는다고 하셨어요, 그러다가 갑자기 "한국 담배가 있으면, 예전에 되게 얇은 담배가 있었다고 얘기를 들었는데 그런 한국 담배가 한 갑 달라" 그런 식으로 이렇게 하다가 대화를 많이 했습니다. 사실은 이게 인제 정이죠. 그러다 보니까는 자주 만났어요.
BGM (웰컴 투 동막골 주제음악)
(진행자) 아름다운 사연인데요. 듣다 보니까, 제가 좋아하는 한국 영화 중에 하나가 떠오르네요. "웰컴 투 동막골" 한국전쟁이 끝날 무렵 강원도 산골인 동막골에서 북으로 돌아가려는 인민군과 우연히 마주친 한국군 그리고 사고로 그곳으로 우연히 떨어진 연합군 미군 병사와 이들 사이에서 생활하는 동막골 주민들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다룬 영화인데요. 여러분들의 아프리카 생활을 듣다보니 그 영화 생각이 더 나네요.
(진행자) 아프리카 오지에서 손을 크게 다쳤고 급하게 치료를 받기 위해서 여섯 시간을 운전해서 겨우 찾은 병원이었지만 말이 안통해서 곤혹스러웠는데, 그곳에서 북한 의사를 만나서 치료를 받고 우정을 쌓게 되었다. 따뜻한 이야기네요. 북한 의사와의 인연 이야기를 더 해 주세요.
(박혁) 말이 통하는 유일한 사람이다 보니까 오가며 들려서 인사하고 어디 장보고 가다가도 고기도 사서 드리고 그러다 보니까는 식사도 밖에서 몇 번했고 그러다가 그분 집에까지 초대가 돼서 갔습니다. 위스키도 먹고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통일 얘기도 좀 해보고 그랬던 기억이 있었는데 하지만 그때는 몰랐어요. 그렇게 북한 주민과 개인적으로 접촉을 하면 안된다는 것을.

나이지리아에서 만난 20여명의 북한 여성, 아프리카의 옥류관 개점 기대하기도
(진행자) 아프리카에 파견된 북한 의사 집에 초대를 받아서 갔는 이야기 흥미롭네요. 잠시 후에 더 자세하게 말씀해 주시고요, 이번에는 김태균 씨의 북한 경험담을 들을 차례네요.
(김태균) 제가 나이지아라에 살던 때였습니다. 2010년 대 초반이었습니다. 제가 살던 아파트에 20 여 분들의 한국말을 하는 여성들이 아파트 테니스장에 들어오는거예요. 이 한꺼번에 공동으로 갑자기 아파트에 들어오셨고 거기 테니스장에서 정말 열을 맞춰서 되게 열심히 하셔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한국말인 거죠. 그래서 반가운 마음에 "한국분이세요?"라고 물어봤더니 그분들이 대답을 아무도 안 하시고 그중에 가장 연장자로 보이던 어느 여성분이 다가오더니 "우리는 당신들이랑 얘기 안 합니다"라고 북한 말투를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그 다음에 저 말고 다른 한인 분은 한국의 음료수를 아프리카로 수입하는 사업을 하셨는데 북한 여성들이 운동하는 장면을 보고 한국 음료수를 한두 박스를 드시라고 갖다 줬더니 "우리는 그런 거 안 받습니다."라고 굉장히 매몰차게 답을 해서 놀랐어요. 그래서 처음에 저희는 기대를 했죠 혹시 이렇게 여성분들이 많이 오셨으니 나이지리아에 북한 옥류관 같은 것이 생길 것인가? 기다렸는데 북한 식당이 열리는 조짐은 전혀 없었습니다. 아마 군사적인 임무가 아니었나 하는 추측을 조심스럽게 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김태균) 그리고 북한에서 오신 분들 중에 또 사업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제가 아는 어떤 분 같은 경우에는 북한 사업가로부터 연락을 받았어요. "당신이 가지고 있는 공장 기계를 살 수 있습니까?"라고 그래서 그분은 한국분이시니까 놀래셨죠 그래서 한국대사관에 이런 일이 있었다 라고 하면서 혹시 한국법 위반이 아닌가라고 문의했는데 북한 주민과 그 정도의 대화는 할 수 있다는 답을 들었습니다.
(진행자) 스무 명 정도의 북한 여성 봤다는 때가 언제쯤이에요?
(김태균) 2013 년도 정도로 기억합니다. 13 년에서 14 년 정도였던 거 같습니다. 나이지리아는 북한과 아직 교역도 많고
(진행자) 그렇죠 유엔 보고서를 보면 북한 쪽에서 네번째 정도 큰 교역국이 나이지리아입니다.
(김태균) 다른 나라 다르게 북한 사업가들이 나이지리아 현지에서 공장도 돌리고 되게 다양한 업무를 했습니다. (진행자) 지금도 공장을 돌릴까요? (김태균) 요즘에는 잘 모르겠어요.
(진행자) 탄자니아 얘기 잘 들었습니다. 가나 사정은 어떻습니까? 임우순 씨?
(임우순) 북한이랑 가나는 1964 년 한 십일 월 경에 수교하여서 북한 대사관을 그 아카라 수도에 설치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다만 아쉽게도 1998 년 2월 경에 그 수교가 단절이 되었어요. 현재까지 북한 대사관이 가나에서 철수한 상황입니다. 다른 분들과는 다르게 저는 북한 의사나 사업가, 노동자, 탈북자와 개인적인 접촉이나 경험은 없습니다. 하지만 꽤 많은 북한 노동자가 제가 가나로 왔던 시기에 이곳에 있었습니다. 2007 년부터 2013년 정도까지 가나에서 한창 유행하던 금광 산업에 북한 노동자들이 투입되었었다는 소식을 자주 전해 들었습니다. 그때 금광업체 중에는 이탈리아 업체도 있었고 한국인 업체도 있었고 스페인 업체도 있었고 그랬습니다. 그 업체들이 북한 노동자를 고용해서 금광에서 금을 캐던 일을 했는데 지금은 금광 산업이 침체되어서 북한 노동자들도 자취를 감췄습니다.
(진행자) 북한과 남한의 문화가 함께 있는 땅, 아프리카에 거주하는 한인 청년들의 '유쾌한 통일수다'는 다음 주에 계속 이어집니다. 세대와 지역의 인식 차이를 넘어서 한반도 미래의 길을 찾는 나침반이 되려는 '통일의 주축 장마당세대' 지금까지 김태균, 임우순, 박혁 그리고 진행에 김진국이었습니다. 청취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기자 김진국, 에디터 이진서,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