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자)'통일의 주축, 장마당세대' 99화 진행에 김진국입니다. 아프리카에서 살고 있는 한인 청년들과 그들이 경험한 이국에서의 북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임우순)안녕하세요, 저는 서아프리카 가나에서 테마라는 항구 도시에 살고있는 임우순 이라고 합니다. 13년 동안 건축일로 돈 벌면서 소소하고 평범한 일상을 즐기면서 살고 있습니다. (박혁)안녕하세요. 아프리카에서 12 년차 살고 있는 박혁이라고 합니다. 저는 이것저것 많은 일을 하다가 현재는 조그맣게 옥수수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김태균)안녕하세요. 김태균입니다. 탄자니아라는 곳에서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고 있고요. 오랜동안 의료NGO, 의료 봉사단체를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맛본 잊을 수 없는 북한 김치 맛의 비결은 ?
BGM (웰컴 투 동막골 주제음악)
(진행자)몇 년 전만해도 아프리카에서 북한 사람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고 한국의 영화 '웰컴 투 동막골' 처럼 남북한과 외부인의 인연이 만들어 졌다는 추억을 나누고 있습니다. 박혁 씨가 아프리카 오지에서 손을 크게 다쳤을 때 도움을 받았다는 북한 의사를 만났을 때가 언제예요?
(박혁) 2014 년 정도였어요. 집에 초대를 받아서 갔는데 몇 가지 특이한 기억들은 김치가 너무 맛있더라고요. 김치를 주시는데 일단 밤에 그분들 일 끝나고그분 집을 방문했는데 단칸방에 살더라구요. 침대만 하나 덩그러니 있는 방인데 그래도 이제 손님이 왔는데 차릴 건 없다고 말하면서 소박하게 김치랑 무슨 고기 안주인지를 상에 올리고 함께 마시자고 위스키를 한 병을 준비했던 것 같습니다. 그 북한 의사분 이름도 생각도 안 나지만 집에 들어가서 본 첫 장면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딱 들어갔는데 그 방에 이제 지도자들 사진이라고 하나요? 김정일과 김정은 사진이 벽에 붙어 있고 그다음에 그 밑에 자기 아들이 군 복무하고 있는 사진을 걸었습니다. 사실 제 나이 또래가 그분 아들뻘이였대요. 그러다 보니까, (오지에서 크게 다친 모습이) 좀 더 더측은하게 보였던 거 같애요. 저도 부모님 생각이 났고요. 그러다 보니까는 김치가 너무 맛있길래 엄청 먹었는데 나중에 그 왜 김치가 그렇게 맛있는지 물어봤는데 미원을 많이 넣으셨다고 하셨어요. 후배 초대를 받아서 봤는데 몇 가지 이제 특이한 기업들은 김치가 너무 맛있더라고요.
(진행자) 역시 맛의 비결은 MSG였군요. 미*이라면 한국 조미료였나요?
(박혁)미원을 되게 좋아하시더라고요. 그때도 한국 미원은 아닌데 미원과 같은 상표가 그려져 있었어요.
(임우순)박혁 씨는 지금 한국 조미료 상품을 간접 광고하시는군요. (웃음)
(박혁)상표는 중국어로 써 있더라고요.
(진행자) 요즘 북한 장마당에서 제일 핫한 아이템(인기 좋은 상품)이 중국에서 밀수로 북한으로 들어가는 일명 '맛내기'라고 하던데, 그것인가 보군요.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프로그램은 내용은 특정 상품과 관련없음을 알려드립니다. (일동 웃음).
(임우순)북한 김치에 대한 기대감과 맛을 표사하는 설명에 자꾸 침이 고이고 그랬었는데 미원에서 기대감이 조금 깨졌습니다. (웃음)
(박혁) (김치가) 정말 맛있었요. 열무가 들어 갔는데 일단 물이 되게 많더라구요. 열무김치도 아닌데 아무튼 되게 독특했던 기억이었습니다.
(진행자) 그분이 고향이 어디라고 했나요? 평양 특산물 김치 등 어떤 지역의 특산 김치일 수 있잖아요?
(박혁)굉장히 추운 곳이 고향이었다고 말씀했던 걸로 기억하고요. 집에 걸린 사진들이 모든 털달린 겨울 옷을 입었습니다.
(진행자) 아름다운 '웰컴 투 동막골'을 박혁 버전으로 잘 들었습니다.
(박혁)그리고 또하나 또렷하게 기억나는 것이 그분들이 굉장히 자존심이 세시더라고요. '우리보다 못사는 사람'이라는 식으로 생각하고 대화하면 굉장히 빠르고 예민하게 그걸 알아차리더라고요. 예를 들면 돈을 주려고 한다던가 이러면 단호하게 거절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내 마음에 우러나서 동포애로 너를 도와줬지 내가 이런 거 받으려고 그랬던 것이 아니다."라고 하면서 일단 자기는 (돈이) 없지만 그런 자존심이라고 해야 되나 그런 게 되게 엄청 강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래서 돈 대신 음식이나 기념품 정도를 전해 드렸습니다.
가정집 같았던 탄자니아 '코리아 병원'은 남한이 아닌 북한 병원
(진행자)이번에는 김태균 씨의 경험담을 들을 차례인데요. "2018 년까지 탄자니아에 북한 노동자가 많았고 북한 의사들도 많았다"라고 했는데, 혹시 북한 의사가 운영하는 병원에서 진료를 받아 본 적은 있나요?
(김태균)병원에 들어가지는 않았고요. 들어갈 뻔 한적은 있습니다. 제가 2016년으로 기억하는데요. 그당시 살던 집에서 가까운 곳에 코리아 병원 (Korea Hospital)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들어가려고 하다가 보니까, 병원이라고 치기에는 너무 가정집 느낌이죠. 평범한 가정집처럼 생겨서 사람들에게 물어봤습니다. "여기 정말 병원 맞냐"고 병원이라기엔 너무 작았거든요. 그냥 가정집이었고 그냥 영어로만 '코리아 병원 (Korea Hospital)'이라고 써 있었으니까요. 그렇게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김태균) "북한에서 오신 분들이고 한의사, 침을 놓으시는 분들이다"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러고 보니까, 그 당시에 한 다섯 곳 정도의 비슷한 종류의 북한병원이 탄자니아에 당시 있었던 것으로 사람들에게 들을 수 있었고요 그런데 또 2018 년도 쯤에 현지신문에 약간의 의료사고인 것처럼 "코리안 병원에 갔더니 몸이 더 안 좋아졌더라"라고 하면서 기사가 난적이 있었는데, 병원건물 사진을 보니 제가 있었던 바로 그 앞에 들어갈 뻔했던 병원 사진이었어요.
(김태균)그러니까 탄자니아분들이 보기에는 북한병원인지 남한 병원인지는 잘 모르겠고 "코리아 병원에 가서 오히려 몸이 더 안 좋아졌다"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한국에 대한 인식이 갑자기 낮게 평가되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었고요 그리고 그럴 때쯤에 (탄자니아) 이민국에서 대대적인 조사들이 나와서 그분들은 다 북한으로 돌아간 걸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진행자)그 사건은 자유아시아방송에서도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2016년 6월 13일 RFA보도) 탄자니아의 유력 일간지 더 시티즌(The Citizen)은 지난 6일 보도를 통해, 탄자니아 내에서 영업중인 10개 북한 병원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인 테메케 북한병원은 문을 열 당시 양의학으로만 진료 및 치료를 하는 조건으로 탄자니아 정부로부터 영업허가를 받았지만 실제로는 전통치료 등 불법의료행위를 저질러 왔다고 밝혔습니다. 한편, 탄자니아 보건 당국은 자국 내 북한 병원과 관련한 위법사실과 피해 사례에 관한 취재가 계속되자 조만간 북한병원에 대한 단속을 또다시 실시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진행자) 북한과 남한의 문화가 함께 있는 땅, 아프리카에 거주하는 한인 청년들의 '유쾌한 통일수다'는 다음 주에 계속 이어집니다. 세대와 지역의 인식 차이를 넘어서 한반도 미래의 길을 찾는 나침반이 되려는 '통일의 주축 장마당세대' 지금까지 김태균, 임우순, 박혁 그리고 진행에 김진국이었습니다. 청취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기자 김진국 , 에디터 이진서 ,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