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의 약속 615선언 20주년 “3년 내 통일을 기대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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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자) '통일의 주축, 장마당세대' 20화 진행에 김진국입니다. 2000년 6월 15일 분단 후 처음으로 남북 정상이 만나서 화해와 평화를 약속하는 공동선언을 채택했습니다. 장마당세대에게 당시 기억을 물었습니다.

(진행자) 2000년 6월 중학생이었다는 조경일 씨는 역사적인 남북정상의 만남 소식은 북한에서도 외지라고 알려진 자신의 고향인 함경북도 경흥군까지 전해졌다고 기억했습니다.

(조경일) 한국에 온 지 15년 됐습니다. 북한을 떠나서 중국에서 2년 정도 살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갔는데 그때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했다는 뉴스를 봤습니다. 제 고향은 '아오지 탄광'으로 유명한 함경북도 경흥군입니다. 저는 그 소식을 TV로 봤습니다. 제가 완전히 북한을 떠난 것이 2000년7월이기 때문에 정상회담 그 다음 달에 한국을 향해 집을 떠났습니다. 2000년 6월에 고향의 기숙사 시설에서 살고 있었는데 TV로 두 정상이 만나는 것을 봤습니다. 하지만 별 다른 감흥은 없었습니다. 사실 그때 제가 어렸거든요, 13살이었습니다. 단순하게 "남조선 대통령과 최고 지도자가 만나는구나"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당시에 저희 동네에는 2003년에는 통일이 된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습니다.

(진행자)

6·15 남북 공동선언은 2000년 6월 15일 평양에서 대한민국의 김대중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정상회담을 통해서 발표한 공동 선언입니다. 남북정상은 한반도 평화를 위한 5개 항에 합의했습니다.

그 내용은;

1.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

2.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3.남과 북은 올해 8·15에 즈음하여 흩어진 가족, 친척방문단을 교환하며 비전향장기수 문제를 해결하는 등 인도적 문제를 조속히 풀어 나가기로 하였다.

4.남과 북은 경제협력을 통하여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고 사회·문화·체육·보건·환경 등 제반 분야의 협력과 교류를 활성화하여 서로의 신뢰를 다져 나가기로 하였다.

5.남과 북은 이상과 같은 합의사항을 조속히 실천에 옮기기 위하여 이른 시일 안에 당국 사이의 대화를 개최하기로 하였다.

이에 더해서, 김대중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울을 방문하도록 정중히 초청하였으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앞으로 적절한 시기에 서울을 방문하기로 하였다.

김 국방위원장은 공동성명 채택 이후 11년 이상 북한의 최고권좌를 지켰지만 2011년 12월 사망할 때까지 2000년에 약속했던 서울 방문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진행자) 2000년 6월에 북한에서 군생활 중이었다는 권상목 씨도 그 당시 북한 주민들의 기대가 상당했다고 회상했습니다.

(권상목) 그 당시10년 이상 군생활을 하며 고통을 감수했습니다. 모두가 힘들었던 시절이었죠. 한국과 대화하면서 경제적 기대가 커졌습니다. 남한과의 대화는 인도주의 지원과 경제지원 등 물질적 보상이 동반이 됐단 말이죠. 그래서 자연스럽게 북한 주민들이 가지는 한국의 이미지가 좋아졌습니다. 한국이 이렇게 잘 살게 됐으니까 남북이 화합하면 더 잘 살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진행자) 그때 기억이 나시나요?

(권상목)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때 집에 들리려고 평양으로 향하다가 김대중 대통령의 방문으로 평양으로 들어가지 못했거든요. 봉쇄를 했으니까. 그때 분위기는 남북대화에 대한 기대가 상당히 컸습니다. 그 당시 북한에서도 통일 분위기가 고조됐던 것도 사실입니다. 인간은 고난을 겪어 야지 기존의 행복한 순간을 더 소중하게 느낄 수 있게 되는데요. 북한은 그 당시 경제적으로 상당히 어려웠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잘사는 한국의 최고 지도자인 김대중 대통령의 북한 방문을 계기로 우리도 잘 살 수 있게 되겠다는 회생의 희망을 가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진행자) 하지만 어린 시절 615를 기억하는 조경일 씨는 6.15 공동선언의 열기는 오래가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조경일) 주변 마을이나 사람들은 크게 관심을 두지는 않았습니다. '내 삶에 별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생각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진행자) 2000년 당시 북한에 살았다는 탈북자 이광진 씨는 당시에도 북한 주민들은 공동선언에 대해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이광진) 한국 대통령이 북한에 올 때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이 마중을 나갈지가 주목됐는데, 결국 나가서 비행장에서 남북정상이 만나서 악수를 나눴거든요. 그래서 북한 사람들이 그 후에 어떻게 됐는지 대단히 궁금하게 생각했는데 신문에 회담 얘기가 안 실렸습니다. 무슨 비밀 회담을 했는지 북한 사람들은 몰랐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북한 방문했다는 것만 나왔지 어떤 협의를 했고 어떤 약속을 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 후 신문에 공동 선언이 발표되고 그래서 무척 기뻐했습니다. 북한 주민들도 대단히 기뻐했습니다. 남북 관계가 화해가 잘 될 것 같다는 내용을 신문에서 봤는데 615 남북 공동 선언이 발표되고 우리는 이제 남북간에 화해가 되겠구나 생각했는데 세월이 감에 따라 그런 기대도 무마되고 말았습니다.

(진행자) 한국 국회에서 의원 보좌진으로 3년을 근무한 조경일 씨는 615 남북공동성명의 의미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고 믿는다고 말했습니다.

(조경일) 615 성명이 올해로 20주년입니다. 이후 한국 정상 2명과 북한 최고 지도자 2명이 정상회담을 계속 이어왔습니다. 사실 615 정상회담은 역사적 최초이고 굉장히 획기적인 남북 합의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제대로 지켜진 합의는 하나도 없습니다. 의미가 큰 남북정상의 약속이 지켜져야 했지만 북한은 북한대로 남한은 남한대로 내부 정치 문제로 후속 조치에 적극적이지 못했습니다.

(진행자) 북한에서 외교 공무원이었던 권상목 씨는 615 공동성명의 의미를 계승하기 위한 탈북민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권상목) 우리는 북한을 고향으로 둔 사람으로서 북한에 대한 올바르고 정확한 시선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쁜 건 나쁘다고 규정하고 북한을 바른 길로 인도하려면 올바른 나침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탈북민들이 그 역할을 해야 합니다. 통일하자는 비전도 없이 하면 안된다, 대화로 풀어나가야 합니다. 북한도 잘 알고 남한의 경험도 많은 탈북민들이 통일의 비전과 남북대화를 위해서 해야할 역할이 많습니다.

(SIGNAL MUSIC)

(진행자) 세대와 지역의 인식 차이를 넘어서 한반도 미래의 길을 찾는 나침반이 되려는 '통일의 주축 장마당세대' 제20화를 마칩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김진국입니다. 청취해 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