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자) '통일의 주축, 장마당세대' 30화 진행에 김진국입니다.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아서 한국에서 성장해서 해외에 정착한 청년과 북한 출신의 한국 정착 청년들이 2020년의 한반도 상황에 비춰진 한국 전쟁의 의미를 나눴습니다.
(진행자) 독일, 미얀마, 카자흐스탄, 탄자니아, 미국, 한국에 살고 있는 20대부터 40대까지인 남북 장마당세대의 온라인 대화, 오늘은 그 마지막 순서입니다.
(진행자) 70년이 지난 한국전쟁의 의미를 세계 각지에 정착한 청년들과 나누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대화를 마무리하는 각각의 느낌을 이야기해 볼까요?
(김성수) 안녕하세요. 탈북청소년 대안학교에서 대학을 준비 중인 김성수입니다. 한국 생활은 4년됐습니다. 저는 그동안 막연하게 같은 민족이니 통일은 무조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형제와 가족이 여전히 북한에 있기 때문에 통일은 하되 전쟁은 절대 안된다는 생각을 계속 해왔습니다. 저는 북쪽에서 개성공단 상품을 썼고, 4학년 때 처음 '대한민국' 글자가 새겨진 붉은 십자가 포대의 48킬로 쌀포대를 처음 봤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지도 몰랐는데 중학교 때 '대한민국'이 남조선 국호라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2004년도 무렵 일본에서 중고차가 많이 들어왔습니다. 수리를 위해서 중국산 제품을 많이 썼지만 품질이 안 좋았습니다. 하지만 개성공단에서 생산된 자동차 부품을 써봤는데 일본산 제품에 견주기 충분했고 중국산보다는 훨씬 좋았습니다. (개성공단에서 생산된) 베어링 하나 대한민국 이름이 찍힌 쌀포대를 보고, 남한의 생각하는 태도가 많이 달라졌습니다.
(조경일/북한) 통일은 목적지가 되어야 하는데 통일이 과정처럼 얘기한다. 치열하게 토론하고 준비한 후에 통일을 열어가야 합니다. 우리는 전쟁 트라우마, 남북 상대의 두려움과 거부감이 있습니다. 내 안에 두려움을 없애야 상대방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평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동서독 통일 30배, 남북의 경제규모는 200-300배 됩니다. 교류 많이 하다 보면 이제 통일해도 되겠다는 최종적인 3단계에 들어갑니다. 통일이라는 구호만 외치지 말고 우선 교류 폭을 넓혀야 합니다. 북한을 알려고 해야 합니다. 제가 만난 형님 중의 한 명이 청진에서 손전화 장사를 했어요, 그래서 돈을 많이 벌었고 그 돈으로 차를 샀어요. (8'14") 그런데 차를 개인 명의로 못사니까 기업소 명의로 샀어요. 어떻게 하다가 탈북해서 한국왔는데 할 일이 없어서 공사판의 막노동을 합니다. 그 분 말씀이 "이럴려고 내가 한국에 왔나? 나는 북한에 살 때가 지금보다 훨씬 잘 살았는데" 이것은 북한이 그만큼 생활 방식이 많아 바뀌었는데 남한에서는 북한 사람들 대부분이 배급에만 의존해서 생존하는 줄 알거든요. 남한 사람들이 북한에 대해 공포가 있는데, 두려움이 있는데, 제가 생각하기에는 가장 무서운 공포는 무지에서 나온 공포라고 생각합니다. 옛말이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적을 알면 백 번 싸워도 백 번 이긴다는 말이 있지만 우리는 북한을 모릅니다. 알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니까 계속 무섭기만 한거예요. 북한에 공부해야 합니다. 어떻게 살아가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진행자) 중앙아시아에서 20년 거주한 이재욱 변호사는 러시아에서 외교문제 전문대학인 모스크바 국립 국제관계대학을 다닐 때 만났던 교수님의 일화가 생각난다고 소개했습니다.
(이재욱/카자흐스탄) 모스크바 국립 국제관계대학 교수님이 얄타회담에 참석했던 원로 학자였습니다. 그 교수님의 경험담을 듣고 충격을 받았는데요. 그 시절에는 소련의 대표와 미국대표가 친분이 깊었다고 하시더라구요, 제 생각으로는 남북의 적대관계처럼 미국과 소련처럼 그럴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고 하셨습니다. 소련 외교관이었지만 미국에서 파견된 외교관하고 같이 술도 많이 마시고 국제 정세의 농담도 많이 나눴다고 하셨습니다. 소련의 대통령은 술을 좋아했는데 백악관에서도 술을 많이 마셨다는 비화도 소개해 주셨습니다. 이 두 나라가 맞붙은 곳이 한반도인데 이 둘은 친한데, 남북만 원수관계를 유지하는 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최재희/미얀마) 김성수 학생 이야기 듣고 마음이 뭉클해졌습니다. 쌀 한 포대와 개성공단 제품으로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새로워졌다는 이야기 듣고 눈물을 흘릴 뻔했습니다. 박사 과정을 위해 미얀마로 오기 전에 한국에서는 북한학으로 유명한 동국대학을 다니면서 북한이탈주민을 돕는 봉사활동도 참여했습니다. 북한 출신 남자학생이 내가 봉사활동을 하는 진정성에 의구심을 가진다는 말을 들으며 스스로 반성하기도 했습니다. 남북의 민간차원에서 접합점을 늘려서 서로를 이해하는 노력과 행동이 많아 지기를 희망합니다. 서로에 대한 신뢰가 쌓여야 통일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진행자) 북한 출신 장마당 세대의 이야기에 감동 받았다는 반응이 많네요, 그렇다면 북한에 있는 고향 친구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조경일) 친구들에게 많이 미안해요, 어떻게 보면 제가 훨씬 더 좋은 환경에서 살잖아요, 제가 꿈꾸고 싶은 대로 꾸고 살아가는데, 북한은 꿈이 없는 사회입니다. 북한은 어른이 될수록 꿈을 없애 버리는 사회입니다. 어떤 사회가 좋은 사회일까? 청년이 꿈을 꿀 수 있느냐 없느냐. 북한은 꿈을 꿀 수 없는 사회입니다. 제 친구들은 지금 어딘가에서 한 10년 정도 군대 갔다가 일하고 있을 거예요, 저는 언젠가 고향으로 돌아갈 겁니다. 제가 돌아갔을 때 손가락질 당하고 싶지 않아요, 우리가 배고플 때 너는 뭐했냐, 제가 여기서 잘 살아야죠, 형제들을 위해서 잘 살아요, 친구들에게 미안하단 말과 곧 만날 수 있을 거다, 다시 만날 날을 위해서 한국에서 정말 열심히 살고 있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SIGNAL MUSIC)
(진행자) 남북한 청년들이 과거 배웠던 한국전쟁, 그리고 지금 이해하는 한국전쟁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세대와 지역의 인식 차이를 넘어서 한반도 미래의 길을 찾는 나침반이 되려는 '통일의 주축 장마당세대' 제30화를 마칩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김진국입니다. 청취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0:00 / 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