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기획 ‘남한의 보금자리’ 이 시간에는 양강도 출신으로 북한에서 중국과 무역 일을 하다 탈북하게 된 30대의 탈북여성 홍명옥(가명)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홍명옥씨는 지난 2004년 3월 친구가 중국의 친척을 만나러 중국에 나가는데 보증인 자격으로 함께 따라 나섰다가 북한으로 돌아가지 않고 남한 행을 하게 됐습니다. 장사 일을 하면서 혜산에서는 남부럽지 않게 살던 홍 씨였지만 처음 보는 외부세계가 너무도 충격적이었습니다.
홍명옥: 첫째는 황장엽 책에서 제가 많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책을 읽고 김정일 우상숭배와 자유, 목사들이 보는 책도 보고 했는데 갑자기 속이여 살았다는 것에 분노가 치밀더라고요. 또 중국 하알빈으로 들어가는데 거리를 보고 하면서도 북한은 평양과 비교해도 말도 안 된다 그런 생각이 들면서 북한으로 가기가 싫더라고요.
홍 씨는 양강도에서 태어나 군사복무 6년을 평양에서 지낸 것 외에는 쭉 양강도에서 살았습니다. 너무 시골에 살았던 탓에 외부세계를 본 뒤 충격이 그 만큼 컸던 것이 아닌가 하고 기자가 물어봤지만 그것은 아니라고 답했습니다.
홍명옥: 지금은 시골이 아닙니다. 양강도 맞은편에 중국 장백현이 있고 북한 쪽은 혜산해서 북한 전국으로 보면 신의주, 라진. 선봉, 청진, 양강도가 최고로 꼽히는데 제일 돈이 많이 유통되고 돈이 많은 부자가 있다고 말합니다. 전국적으로 보위부 검열이 붙었을 때도 돈이 제일 많이 나온 것이 양강도입니다. 북한에서는 김일성이 죽고 나서 고난의 행군 때 모든 사람들이 장사를 하게 되고, 장사 안 하면 못산다는 풍조가 생겼죠. 장사를 통제하면 ‘네가 우리 집 밥 가마에 먹을 것을 보상해 주겠는가? 그러면 나를 장사하지 못하게 말려라, 단속을 해라 그럴 정도입니다. 제가 있을 때도 그랬죠.
그는 30년을 북한에 살다가 남한이란 곳에 와보니 생활자체가 북한과는 비교가 되지 않고 너무 황홀했다고 까지 말했습니다. 홍명옥씨는 북한과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보지 못하고 죽는다면 정말 억울한 일이 아닌가 하며 남한에서 받은 자신의 첫 인상에 대해 들려줬습니다.
홍명옥: 차가 엄청 많아서 놀라웠습니다. 평양은 행사정도면 작은 차가 조금 있는데 청진, 혜산, 함흥 같은 직할 도시 특히 양강도 쪽은 한 30분에 한 대 볼까? 하루에 한 두 대의 차를 볼까 말까 합니다. 그리고 북한 자체가 큰 차는 많고 작은 차는 많이 없습니다. 남한은 차가 길에 너무 많아 너무 놀라웠습니다.
홍 씨는 남북한 생활의 수준은 수 십 년이 가도 북한이 남한을 따라잡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북한은 중국에 비해 수 십 년 그리고 남한과는 거의 백 년 차이는 날것이란 것이 홍 씨의 말입니다.
홍명옥: 목욕 할 때는 뭘 쓰고 머리 감을 때는 어떤 것을 쓰고 처음에는 그런 설명을 책에다 써놓고 3일 동안 공부를 했습니다. 이제는 좀 아는데 북한에는 그런 것이 없죠. 음식 씻는 그릇도 여기는 세척제를 쓰는데 북한에서는 쌀뜨물이나 증조, 식초를 썼습니다. 처음 저는 비누를 가지고 그릇을 닦아서 어떻게 먹나 그렇게 까지 생각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편했는데 계속 여기 살다 보니까 오히려 몸도 안 좋아진 것 같습니다. 왜냐면 추워도 전기, 뭘 마셔도 전기로 끓이고 또 세척하는 용품도 화학제품을 쓰니까 그쪽 보다는 피부도 안 좋아지고 ...편리한 것은 좋지만 몸에는 안 좋더라고요.
하지만 모든 것이 풍부한 남한에서 아직도 음식만은 북한식으로 요리를 해먹는다면서 지금은 건강을 많이 생각하며 살고 있다고 말하며 양강도 고향은 물 좋고 산천이 아름다워 양씨에게는 그리움으로 남아있습니다.
홍명옥: 물도 북한에는 여름에는 물에서 김이 납니다. 너무 차가워서요. 또 겨울에는 얼음 눈 속 산에도 막 김이 나고 그럽니다. 그리고 양강도 백두산 밑에는 공기도 좋고 물도 좋고 아침에는 그냥 흐르는 물을 퍼서 먹거든요. 아무런 병이 없습니다. 물맛도 너무 좋고 설사 한 번 안하는데 여기 물맛도 엄청 틀리더라고요.
홍 씨에게는 11살 된 딸이 있습니다. 홍 씨가 남한에 입국한 뒤에 북에 살고 있던 딸을 데리고 간 것입니다. 현재 6년제 초등학교 과정 중 4학년 과정을 공부하고 있는데 북한의 아이들처럼 뛰놀지 못하고 항상 공부에만 매달려 있는 모습을 볼 때 엄마로서 안타가운 마음이 듭니다.
홍명옥: 모두가 다 박사 되는 것처럼 공부에만 매달립니다. 한국의 부모들이 피아노 학원, 영어학원, 미술학원 해서 보내니까 덩달아 보내는데 북한의 교육은 공부를 초등학교까지는 편하게 합니다. 그러다가 중학교 3학년부터 많이 시킵니다. 거기서 공부하는 아이가 나옵니다. 그러면 그 아이들을 소조로 모아서 집중 교육을 시킵니다. 그래서 대학을 가는 것이죠. 그런데 남한은 방향이 아닌 것을 전부 공부를 시키니까 우리 아이 가방을 들어 보면 얼마나 무거운지 너무 불쌍해요. 집에 들어오면 엄마하고 얘기할 시간도 없습니다.
탈북여성 홍명옥씨는 이제 남한에서 자신감 있게 한 번 살아 보겠다면서 아직도 굶주리고 있는 북한의 친구들에게 남한은 북에서 듣던 그런 곳이 아니란 것을 꼭 들려주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홍명옥: 너무나 북한에는 개방이 안 돼서 자본주의 사회 자유세계에서 놓고 보면 먹는 것이 우선 풍부하니까 여기서 생활하면 거기서 풀뿌리도 없어서 못 먹고, 죽도 못 먹던 사람들이 여기 와서 배불러서 먹기도 싫고 세끼를 두 끼 먹기 하고 먹기 싫을 정도로 먹고 부러움이 없이 살고 하니까 북한 사람들에게 이렇게 먹는 것이 풍부한 세계도 있다는 것을 먼저 알려 주고 싶습니다.
워싱턴-이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