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북 열차방송원의 남한 이야기.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함경남도 함흥 열차방송원이었던 정진화 씨는 지금 남한에 살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출발해 워싱턴을 거쳐 북한으로 들어가는 소식. 지금부터 열차방송 시작합니다.
기자: 정진화 씨 안녕하세요?
정진화:네. 기자님. 안녕하세요?
기자: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서울은 날씨도 봄기운이 느껴질 만큼 많이 따듯해졌다고 하던데요.
정진화: 네, 텔레비전을 보니까 곳곳에서 꽃 축제 소식이 들려오는데 남한에서도 날씨가 따듯한 지역에 속하는 전라남도가 가장 먼저 봄소식을 전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예년보다는 다른 지역도 꽃이 빨리 피었다는 소식이 있는데 남쪽 강원도 산간지역에는 때아닌 눈이 내린다는 소식도 있습니다.
기자:그렇군요. 지역간 온도 차이도 크고 여름철 비를 연상하는 많은 비가 온다는 기상청 예보도 있습니다. 환절기 건강 유의하셔야 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진화:그렇습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경상북도의 일부 지역은 날씨가 너무 가물어서 산불이 잦았거든요. 또 최근 남쪽 강원도 지역에는 큰 눈이 내렸고, 주말에는 전국적으로 많은 비와 함께 해안가에는 태풍급에 속하는 돌풍이 불기도 했습니다. 정말 꽃 피는 춘삼월이라고 하지만 종잡을 수 없는 변덕스런 날씨를 보이고 있습니다.
기자:정진화 씨,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해주실 건가요?
정진화:네. 오늘은 '만남과 인연'이라는 내용으로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기자:어떤 내용입니까?
정진화:네. 사람이 살다 보면 수 많은 사람과 만나고 또 헤어지면서 인연을 이어가지 않습니까? 저도 지금까지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났고 또 그 사람들을 다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잠깐 만남이었지만 잊지 못하는 그리고 잊을 수 없는 그런 사람이 있거든요. 그래서 그런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기자: 그래서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도 있잖습니까?
정진화:그렇습니다. 오늘 이야기가 바로 그런 내용입니다. 며칠 전 저녁 시간이었는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오랫동안 연락을 안하고 지냈던 분인데 사실 제가 남한에 처음 왔을 때 만났던 적십자 도우미였습니다.
기자:적십자 단체에서 봉사를 하시는 분이란 말씀인데요.
정진화:네. 북한을 탈출해서 남한에 입국하는 탈북민들이 하나원을 수료하고 사회로 나오면 남한사회 정착을 돕는 도우미분들이 계십니다. 회사에 다니면서 주말마다 봉사를 하시는 분도 있고 적십자 같은 시민단체에 몸담고 활동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탈북민을 도와 주시는 분들은 일정한 교육을 받고 도우미가 된다고 합니다. 저를 도와주셨던 분도 적십자라는 단체에서 봉사를 하고 계시던 분인데 남한에 와서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던 저에게는 정말 친언니처럼 다정한 분이었습니다.
기자:어떤 추억이 있기에 기억에 남았나요?
정진화: 시간이 많이 흘러서 정확한 얼마나 만났었는지 생각나지 않지만 저는 꽤 오랫동안 그분의 도움을 받았다고 기억됩니다. 저랑 가까운 동네에서 살았던 분인데 처음에는 상점에서 물건을 사거나 은행에서 돈을 입금시키거나 찾는 기초적인 생활부터 시작해 아파서 병원에 가면 접수를 하는 방법까지 제가 도움을 청하면 어떤 일이든 찾아와 동행하고 도움을 주곤 했습니다.
기자:초기정착 때 도움을 받았던 분에게 전화가 온 것이군요.
정진화: 네. 아들 돌잔치 때도 오셨고요. 몇 년 동안은 연락도 하면서 지냈는데 제가 회사일과 아이 키우면서 바쁘다 보니 연락이 뜸해졌는데 얼마 전에 전화가 온 겁니다. 사실 제가 아파서 며칠동안 집에서 휴식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전화 소리가 울려서 보니 그 분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미안해서 받을까, 말까 망설였는데 사실은 너무 반갑고 고마운 분의 전화였습니다.
기자:오랫동안 안부를 전하지 않다가 갑자기 전화를 해오면 반가우면서도 무슨 일이지 하면서 의아한 생각이 들기도 하죠.
정진화:맞습니다. 얼마 전에는 옆에 사는 언니고 평소에 자주 연락을 하고 지내는 언닌데 며칠 연락을 안 드렸더니 그사이에 언니가 엄청 아팠다는 거에요. 그러면서 아프면 가족이나 평소에 가깝게 지내는 사람의 목소리가 그렇게 그립다고 하더라구요. 그 말을 듣는데 너무 미안해지는 거에요.
기자:요즘같이 손전화기를 늘 사용하는 때에 가깝게 지내는 지인과 연락도 없이 무심하게 지내는 경우도 있죠.
정진화:네. 그런 것 같습니다. 아침이면 문자로 문안을 하거나 좋은 글을 보내주시는 분들이 계세요. 그런데 사실은 문자 확인을 하고도 일일이 다 답을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분은 제 생각이 나서 잊지 않고 소식을 전해주는 건데 답장은 해줘야지 하면서도 다른 일을 하다 보면 깜빡 잊고 넘겨 보내는 경우가 있더라구요.
기자:그렇죠. 한 번 그 순간을 놓치고 나면 답을 한다는 것이 어색하기도 하고 해서 그냥 넘기기가 쉽죠.
정진화:맞습니다. 이번에 연락을 주신 적십자 도우미분도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남한 땅에서 처음으로 인연이 된 분이라 정말 제가 잘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지 사는데 걱정 없고 편하니까 잊고 지내게 되더라고요.
기자:오랜 만에 찾은 지인과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공개해주실 수 있나요?
정진화:네, 해줄 수 있습니다. 저희가 카톡에 보면 사진이 있는데 작년에 석사 학위를 받고 아들과 함께 찍은 사진으로 바꿨는데 그걸 보신 거예요. 그러면서 아들이 많이 컸더라 몇 살이 됐나 어떻게 지냈냐 이러시는데 너무 미안하고 그랬어요. 인연을 잘 지켜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특히 남한에서는 다른 사람과의 신뢰를 쌓아가는 것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되었습니다.
기자:탈북민이 남한생활 하면서 쓰는 표현이나 말이 틀려 적응에 어려움을 경험하기도 하지만 문화도 틀려서 오해를 사거나 당황하는 경우도 있잖습니까?
정진화:네, 저도 처음에는 그랬는데 예를 들면 한 번 만났던 분이 헤어지면서 "오늘 고마웠습니다. 우리 다음에 만나면 한 번 식사같이 하시죠" 이러는데 여기서는 인사 뒷말 끝에 평범하게 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한 번 밥먹자 하면 약속이라고 알거든요. 북한에는 그런 식의 인사가 없어서 오해를 했는데 이런 표현은 탈북민에게는 오해를 사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분은 진화 씨 한 번 봐요, 밥 먹어요. 이러면 꼭 실천을 해줬는데 제가 오랫동안 연락을 못해서 정말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자:정진화 씨는 남한생활이 20년째라고 하셨던가요?
정진화:네, 그렇습니다.
기자:정진화 씨도 무심코 밥 한번 먹자 이런 말을 많이 하셨을 것 같은데요?
정진화:저도 한 것 같습니다. 제가 기관에서 교육을 받는 분들에게 정착사회 경험을 얘기해 주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때 만약 사회에 나와서 저를 만나는 분이 있으면 밥을 사겠다고 했는데 수료하고 나와서 우리동네로 오신 분이 있는 거예요. 낯이 익어서 저를 아세요? 그랬더니 그때 강의 하면서 밥 사준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제가 진짜 밥을 산적이 있습니다.
기자:이제 남한생활이 너무 익숙해졌는데요. 남한 사람들처럼 지나는 말로 밥 한번 먹자 이런 말을 하십니까?
정진화:저는 우리 분들하고 하는 그런 약속은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하고 하는 약속은 좀 다른 것 같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런 것은 꼭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주변에 어떤 분을 보니까 자기는 처음에 그게 인사인줄 모르고 왜 저 사람이 나한테 밥을 사겠다고 하고 다시 만나자고 했는데 약속을 안 지키지? 거짓말쟁이 아냐?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아무래도 약속은 지키는 약속을 해야 하지 않나 저는 아직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기자: 이제 마칠 시간이 됐습니다. 정리를 해 주시죠.
정진화: 네. 오늘은 만남과 인연이라는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정말 힘들 때 그리고 정말 필요할 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던 사람들은 은인입니다. 그런데 그 동안 잊고 지낸 시간이 너무 길었던 것 같습니다. 작은 인연이 쌓여 현재 내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인데 말입니다. 가끔은 뒤도 돌아보고 나에게 도움을 준 사람을 찾아 보답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자: 정진화 씨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정진화: 네, 고맙습니다.
북 열차방송원의 남한 이야기. 오늘은 만남과 인연에 관한 이야기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
참여자 정진화, 진행 이진서 에디터,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