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열차방송원의 남한 이야기] 2022년 새해를 맞으며

0:00 / 0:00

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함경남도 함흥 열차방송원이었던 정진화 씨는 지금 남한에 살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출발해 워싱턴을 거쳐 북한으로 들어가는 소식. 지금부터 열차방송 시작합니다.

기자: 정진화 씨 안녕하세요?

정진화: 네. 기자님. 안녕하세요?

기자: 새해를 축하합니다. 남한에서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렇게 말하는데 북한식으로 시작을 해봤습니다. 새해 어떻게 맞으셨나요?

정진화: 네. 2022년은 제가 대한민국에 입국한지 20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그 어떤 해보다 의미 있는 일들이 있을 것 같고요.

이번 설에는 북에서 온지 얼마 안 되는 분이랑, 친구들이랑 함께 북한과 가까운 강원도 고성 동해 바닷가에서 고향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특히 지난해 말 동해안 지역에 큰 눈이 내려 서울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고향의 설날 분위기를 오랜만에 느껴본 것 같습니다.

0104-2.jpg
강원도 고성군 화진포 대진항 전경. /사진제공-정진화

기자: 20년이면 강산이 두 번 바뀐 세월인데요. 탈북한 것이 겨울이었나요?

정진화: 맞습니다. 제가 북한을 떠난 때가 바로 1월 8일이었습니다. 두만강이 가까운 함북 회령의 한 지역에서 6명이 함께 떠났습니다. 전깃불은 없어도 눈이 하도 많이 와서 대지가 온통 하얀색인데 강인지 길인지 구분을 못하고 허둥지둥 걷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남한에서 와서는 한번도 고향의 겨울 같은 날을 경험하지 못했는데 이번에 강원도에서 눈이 쌓인 걸 보면서 탈북을 하던 그날의 숨막히던 광경을 다시 한번 떠올려 보았습니다.

기자: 운명적인 사건도 시간이 지나고 보면 그 당시 두려움이나 공포감이 많이 희석되는데요. 목숨 걸고 도강을 했다는 것을 남한 분들은 공감을 하기 힘들 것 같아요.

정진화: 그렇죠. 누구는 살기 위해서 넘고 누구는 자유를 찾아서 넘고 누구는 먼저 남한으로 간 부모형제나 지인을 따라 넘었다고 하지만 그 길은 목숨을 담보로 하는 위험한 길이었습니다. 국경봉쇄가 심해진 지금도 탈북하는 분들이 있다는데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고 그분들이 꼭 원하는 것을 무사히 이룰 수 있도록 기도하는 마음입니다.

기자: 모두 새해가 되면 결심하는 것이 있잖습니까? 정진화 씨는 올해 어떤 계획을 세우셨나요?

정진화: 네. 저는 몇 년 전에 시작했다가 마치지 못한 사회복지사 공부를 다시 시작하려고 합니다. 사회복지사 자격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실습까지 14과목이라는 수업을 들어야 하는데 7과목이 남아 지금 수업을 듣고 있습니다.

기자: 정진화 씨는 남한에 와서 대학을 다니지 않았나요?

정진화: 맞습니다. 북한에서는 전문학교를 졸업하다 보니 남한에서는 대학 3학년에 편입해서 교육 학사 자격을 취득했고요. 2020년에 대학원에 진학해서 지난해 12월에 석사 논문이 통과되었습니다.

기자: 올해도 계속 공부를 한다는 계획이군요.

정진화: 네, 그런데 공부는 저뿐만 아니라 남한 국민 거의 전부가 하는 것 같습니다. 정부에서도 평생교육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원하는 국민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기자: 직장 일을 하면서 공부를 병행 한다는 거죠?

정진화: 그렇습니다. 회사에서 일을 하고 휴식날이나 퇴근 후 그리고 시간이 될 때 하는 겁니다. 지난해에도 일하고 공부하면서 자원봉사 활동에도 87시간 참여했습니다. 올해도 봉사활동은 계속하려고 합니다.

기자: 일단은 바쁘게 생활하자 이렇게 들립니다.

정진화: 네. 남한에 오니까 사람들이 하는 말이 나이가 들수록 건강하고 즐겁게 생활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그 건강과 즐거움이란 것이 바로 내가 좋아하고 내가 원하는 일 그리고 주변의 어려운 이웃도 돌아보면서 일상을 보내는 겁니다. 일하고 공부하고 봉사하고, 말은 거창하게 했지만 남한의 많은 사람들이 평소에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기자: 남한생활 20년이라고 하셨는데 예전하고는 또 세상이 많이 달라졌죠? 어떤 때에 그런 느낌을 받습니까?

정진화: 네. 처음 남한에 도착했을 때보다 살기 너무 편해졌다는 것을 문득문득 많이 느낍니다. 솔직히 지금 사는 게 얼마나 편하나요? 전기밥가마 있죠. 전기주전자에 냉동기, 세탁기 또 요즘은 빨래를 말리는 건조기, 설거지를 대신하는 그릇세척기, 음식물 쓰레기를 밖에다 버리지 않고 집에서 분쇄해 물에 흘러 보내는 음식물 쓰레기 분쇄기도 등장해서 정말 세상 살기가 편해졌습니다. 그리고 요즘은 혼자 사는 사람이나 식구가 적은 집들이 많아서 음식 포장 배달도 1인분, 2인분 이렇게 만들어 팔다 보니까 사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돈도 절약하고 버릴 것도 없어서 너무 좋은 세상입니다.

기자: 아는 지인들에게 새해 인사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정진화: 네, 예전에는 직접 손편지를 보내거나 했는데 요즘은 새해라고 해서 연하장을 보내진 않았습니다. 이젠 누구나 손전화기나 컴퓨터를 이용하여 좋은 글귀나 그림을 넣어 보내는데 이것을 남한에서는 모바일 연하장이라고 합니다.

올해는 호랑이 해라고 해서 전자 이 메일이나 연하장을 보면 호랑이 그림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래서 저도 친구들과 아는 분에게 모바일 연하장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저는 지난해 대통령직속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위원이 되었는데 대통령의 신년장을 받았습니다.

기자: 대통령이 보내는 연하장을 받는 사람이 많지는 않을 텐데 기분이 어떠셨습니까?

정진화: 솔직히 기분이 묘했습니다. 북한에서는 중앙기관 명의로 표창을 주는 일은 있지만 개별적인 기관 책임자나 일개 간부가 자신의 이름으로 표창을 주는 일은 없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는 북한의 구역행정위원장이나 지배인 직급에 해당하는 사람들도 자신의 이름으로 표창장도 줄 수 있고 연하장도 보낼 수 있고 심지어 신년사도 합니다. 이런 연하장을 받고 내가 남한에 사는 구나 하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기자: 새해 설날 하면 떠오르는 것이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모습인데요. 변한 것도 많죠?

정진화: 네, 처음에 제가 한국에 왔을 때는 한복을 입고 그 위에 겨울 옷을 입은 사람이 많았는데 지금은 겨울용 한복으로 개량한복이 나온 겁니다. 그리고

전통명절을 맞아 찾는 곳이 있는데 그 가운데 한 곳이 경복궁입니다. 그런 고궁을 갈 때는 한복을 입고 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모이는 것은 자제하라고는 하지만 명절에 부모님을 찾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부모님이 시골에 가서 살고 젊은 사람이 도시에 살았다면 지금은 부모님이 병원시설이 잘된 도시에 사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시골로 내려가는 사람보다는 서울이나 도시로 거꾸로 올라오는 사람이 많은 것이 설날 변한 모습이고요.

탈북민 경우에도 예전에는 갈 곳이 없다고 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때는 북한에서 온 지인들도 많이 없었고 친구도 적었는데 이제는 20년이 지나다 보니까 탈북민 사회가 굉장히 커졌습니다. 그래서 탈북민들끼리 명절이 되면 북한 고향 음식을 만들어 먹는 사람도 많습니다. 저도 이번에 순대를 잘 만드는 언니가 있어서 맛있게 먹었습니다.

기자: 새해 어른들 찾아 뵙고 세배하고 아이들은 용돈을 받고 하는데 이런 모습은 여전하죠?

정진화: 네, 있죠. 아까도 모바일 연하장이란 말을 잠깐 하지 않았습니까?

직접 만나지 못할 때는 손전화기에 있는 기능을 이용해서 돈을 보내는 겁니다. 그런데 돈을 보낼 때도 그냥 계좌이체를 시키는 것이 아니고 봉투에 담기 이런 것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할머니가 손주에게 돈을 줄 때는” 옜다 받아라 용돈” 이런 재미난 문구도 있고요. 축하금, 경조사비 이런 각각의 문구가 쓰여진 봉투에 감사한 마음을 전하는 것이 있어서 정말 참 편리한 세상이란 생각을 합니다.

기자: 이제 마칠 시간이 됐습니다. 정리를 해 주시죠.

정진화: 네. 2022년은 제가 남한에 온 지 20년이 되는 해입니다. 지금까지도 늘 바쁘게 살아왔고 또 열심히 노력해왔습니다. 올해는 사회복지사자격을 따는 걸 첫번째 목표로 삼았으니 우선 공부에 전념해야 할 것 같고요. 코로나19때문에 건강관리도 잘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북한에 있는 저의 동생과 가족들, 친구들, 마을사람들 새해에도 부디 건강하게 살아계십사, 날마다 간절히 기도하겠습니다.

기자: 정진화 씨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정진화: 네, 고맙습니다.

북 열차방송원의 남한 이야기. 오늘은 2022년 새해 첫 주에 관한 이야기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

참여자 정진화, 진행 이진서 에디터,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