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무용가 출신 최신아 씨가 지난 2011년에 탈북해 3년여 동안 갖가지 허드렛일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남한정착의 기틀을 잡고, 어린 시절부터 해오던 자신의 무용 세계의 꿈의 나래를 한국에서 펼치게 됐다고 자유아시아방송과 회견에서 밝혔습니다. 북한의 서구식 근대무용을 도입한 최승희 선생의 춤사위를 사제자로 전수 받아 남한에서 인정받은 것이 꿈이 아닌 현실로 가장 기쁘다고 밝혔습니다.
RFA 초대석 오늘은 전설적인 무용가 최승희의 무용을 사제자로 전수받은 탈북 무용가 최신아 씨의 이야기로 함께 합니다.
질문: 북한에서 무용가로 유명세를 얻으셨다는데 최신아 씨 어떤 사람인지 자신의 소개를 부탁합니다.

최신아: 저는 북한에서 예술대학을 졸업하고 예술단에서 무용수로 한 26년간 활동하다가 남한에 온 지 9년이 됐어요. 그리고 최승희 선생님의 제자가 아니고 사제자(최승희 선생께 사사한 분께 교육받음)입니다. 북한의 무용이라고 하면 최승희 선생님의 무용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무용을 남한분들이 잘 모르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남북의 예술이라고 해서, 최신아 이름 세글자를 따서 현재 예술단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가령 북한에 계실 때 전설적인 최승희 선생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들을 수 있었습니까?
최신아: 저희 나이 때는 최승희 선생님에 대한 얘기를 선생님들이 막 노골적으로 내놓고 얘기하기가 힘들곤 했습니다. 그래서 저희 담임 선생님이 최승희 선생님의 제자다 보니까, 최승희 선생의 사당춤을 배워줄 때 한마디 한마디 할 때마다 최승희 선생님이 이런 표정을 짓고 이렇게 춤을 이런 형식으로 쳤다는 얘기를 많이 들려주셨어요. 그래서 북한에선 최승희 선생님에 대해 세 글자만 불러도, 그때 당시에는 김일성 김정일에 대한 세글자 외에는 그 누구의 이름을 부른다는 게 쉽지 않는 거였어요. 그래서 저희 때는 최승희 선생님이 활발하게 활약을 했다는 내용도 잘 몰랐어요. 남한에 와서 많이 알게 되었고 북한에서는 잘 모르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북한에서 무용수로만 활동하던 최신아 씨 남한에 적응하기 얼마나 어려웠을까 직접 들어봅니다.
최신아: 저는 남한에 와서 한 2-3년 동안은 활동을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아시다시피 북한에서 정말 어려서부터, 남한에 오기 전까지 예술 활동만 하다 나니까, 또 쉽게 남한분들하고 같이 언어 소통도 잘 안 되거니와 그래서 제가 활동 한다는 것 꿈도 못 꾸고, 여기서 태어난 사람들도 무대에 올라서기가 그렇게 힘들고 예술인으로 정착하기가 힘들다 하는데, 더군다나 북한에서 태어나서 북한에서 예술 활동을 하면서 남한에 와 예술 활동을 한다 이거는 꿈도 못 꾸는 일이었거든요.
남한 생활 시작하면서 어려운 일 어떤 것들이 있었을 까?
최신아: 솔직히 하나원 나와서 허드렛일 등을 하면서 정착해 보려고 노력해 봤지만, 직장 위해 전화해도 탈북민이라 하면 바로 전화 끊고 이런 여러 실례가 많았어요. 정말 못해본 일도 다 해보고 제가 예술만 하던 사람이 와서 정말 식당 등 밑바닥 일을 한 2-3년 동안, 지속적인 것보다 몇 달 몇 달씩 잠시 동안만 이라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해야 하니까 살았거든요.
이제 최신아 씨 탈북 2-3년 후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2015년 당시를 회고해 줍니다.
최신아: 최신아 예술단은 2015년 11월에 창립됐습니다. 그 당시 청와대에서 국악방송국에 있는 모 간부에게 이야기가 돼서 북한에서 예술 활동을 한 분이다. 이분에 대해서 좀 알아보고 활동하게 했으면 좋겠다고 해서, 제가 2012년 4월에 하나원 나왔는데, 그러니까 3년 있다가 청와대에서 국악방송 쪽에 저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 같습니다. 그때 2015년 7월 중순경 전화를 받고 국악방송국에 가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런 활동을 했고, 북한 경력에 대해 이야기를 했습니다. 8월부터는 국민 대통합 아리랑에서 “장구춤”을 선보이면서 공연하니까, 아 이분은 정말 너무 잘하고 해 보니까 정말 검증된 사람이다.
최신아 씨는 자신의 무용 세계의 꿈을 접으려 할 때도 있었지만 한명희 선생을 만나면서 변화됐다고도 전합니다.
최신아: 대한민국에 비목을 작사하신 한명희 교수님이 계시는데 그 선생님을 우연히 알게 돼서, 그분에게 가서 북한에서 무용 활동을 해 가지고 와서 지금 3년간 아무 일도 못 하고 진짜 허드렛일도 하면서, 정말 무용을 안 하겠다 이렇게 할 정도로 얘기가 나왔더니만, 한 교수님이 북한에서 정말 좋은 기술과 지식을 가지고 왔는데, 대한민국에서 이걸 써먹지 못한다면 너무 안타깝다는 이야길 하시더라고요. 그래도 힘내고 한번 해보라는 조언도 받았고, 국악방송국과 연계가 되다 보니까? 그러면 내가 최신아 예술단 가지고 우리가 비록 통일은 안 돼도 내가 남한에서 할 수 있는 게, 북한에서 배웠던 이 무용을 남북평화에 춤사위를 해, 창작해서 내가 국내와 전 세계 다니면서 공연하면 어떨까? 생각하고 예술단을 2015년 11월에 창립했습니다.
최신아 씨는 남한에서 자신의 온 혼을 바쳐 춤으로 보여 줌으로써 꿈의 나래를 펼치게 됩니다.
최신아: 멤버들 같은 경우는 대한민국에서 어려서부터 자라나서 대학을 졸업한 분들로 누가(어떤 분) 또 이렇게 후원해줘서 그분들한테 월급을 주면서, 80명 오디션 봐서 5명을 뽑아 예술단을 운영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저희가 뭐 명칭만 있고, 단원들만 있었지 공연을 할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제가 바로 3개를 창작하고, 나머지는 북한의 전통무용으로, 창작품도 저는 춤 가락 자체가 남한의 아름다우면서도 우아한 살풀이, 이렇게 부드러움의 대한 춤 가락과 북한의 역동적이면서 격동적인 활발한 무용을 섞어서 3개의 작품을, 그걸 바로 홍보를 해서, 유튜브와 각 지역에 배포했습니다. 그러다 나니까 공연도 들어오고, 저희가 국악 한마당에 나가게 됐고, 그리고 국악방송 15주년 기념 때, 무용이라면 전통 하시는 분들 예술단도 많지만, 저희 최신아 예술단이 명예를 걸고 나가서 공연도 하고, 그리고 KBS와 MBC, 전주 얼쑤 우리 가락과 부산 KBS 공연, 남도 국립국악원공연, 등 현재까지 활동해 오고 있습니다. 또한 저희가 2016년에는 괌에 초청돼서 공연했고, 2018년에는 인도에 가서 ‘남북의 아리랑’ 주제로 투어공연한 바 있습니다.
RFA 초대석 오늘은 전설적인 무용가 최승희의 무용을 사제자로 전수한 탈북 무용가 최신아 씨의 이야기로 함께 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어떻게 남한에 오게 됐는지에 대한 이야기 계속됩니다. 지금까지 인터뷰에 RFA 이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