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북한에 있을 때 총살당했고, 어머니가 만삭일 때 아버지가 총살 당하다니까 평생 아버지를 못 보고 태어난 자식이 있고, 자식을 앞에 앉혀놓고 아버지를 총살하는 것을 본 자식도 있고. 정치범 수용소에 잡혀간 자식도 있고, 이런 자식들의 탈북한 세대가 112세대가 된다고 국군포로가족회 손명화 대표가 자유아시아방송과 회견에서 밝혔습니다. RFA 초대석 오늘은 손명화 대표와 이야기 나눕니다.
질문 1) 국군포로 자녀로서 2022년 새해에 꼭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손명화: 6.25 전쟁이 잊혀가고, 6.25전쟁이 70년 분단인데, 평화라는 게 거저 오지 않습니까? 미국에 가니까 거기에는 '평화는 공짜가 아니다' 이런 글이 있더라고요. 정말 평화가 공짜가 아니듯이, 이 6.25 전쟁의 아품이 6.25 국군포로 우리 아버지들이 10대에 책가방을 던지고 전쟁에 나갔는데 대한민국이 국군 포로를 버렸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자식이 와가지고 그렇게 발버둥 치며 방방곡곡 헤매면서 내 아버지 명예를 회복해 달라고, 그렇게 해도 언론이 귀하고 눈 다 감고 있고, 정치인들이 눈과 귀를 다 닫고 있으니까? 우리는 어디 가서 하소연할 데도 없습니다. 북한에서 국군포로 자녀로 태어나 가지고 우리가 북한에서 억울하게 살았는데, 대한민국에 와서도 사람 취급을 못 받으니까? 우리는 어디 가서 '아프다'하고 이야기할 데가 없지 않습니까? 그것이 너무나 억울합니다.
질문 2) 국군포로가족회 회원들 올해 어떤 바람이 있습니까?
손명화: 새해에는 여, 야를 막론하고 국군포로 문제를 국가의 문제이지 않습니까? 이제는 70년 분단에서 앞으로 100년을 내다보는 이 시점에서 우리 국군포로도 행정적인 처우 문제와 국군포로 자녀들을 국가 유족으로 인정하고, 차별을 없애는 그런 나라가 돼 가지고, 국군포로 문제는 국군포로를 버리는 게 아니고, 국군포로 자녀들이 이제 더 이상 눈물을 흘리지 않는 그런 나라가 되어져 가지고, 국군포로들이 나라를 찾은 그 피땀을 권력자들이 누리고 있잖습니까? 권력을 잡으면 자기가 그저 먹고 살기 위한데 목숨을 걸고, 우리 이야기를 들어본 대통령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렇지마는 지금이라도 이제는 70년 분단에서 인제는 국군포로 문제를, 국군포로 아픔을 좀 멈춰 달라! 우린 두 번 다시 눈물을 흘리게 하지 마라!, 세계 역사에 국군포로 연좌제, 이산가족 연좌제, 두 개의 연좌제에 사는 사람은 우리 국군포로 유족들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그 아픔을 정말 이제는 멈춰달라! 그렇게 호소하고 싶습니다.
질문 3) 작년 12월 유엔북한인권결의안에 '미송환 전쟁 포로와 후손에 관련해 계속되는 인권 침해 의혹 우려' 문구가 처음으로 포함된 것에 관한 소감은!
손명화: 북한인권법이 이번에 통과된 거는 제가 재작년부터 6.25전쟁 70년 분단이라는 그런 아픔이 있기 때문에 유엔에다, 제가 진정을 다섯 번 했습니다. 그래 다섯 번 진정하고, 그다음에는 비정부 단체들하고 협력을 했고, 제가 미국에 가서 국제회의에 참여해서 '국군포로 아프다' 하는 국군포로 문제에 대해서 국군포로가 유린을 당한 이 문제에 대해서 제가 전 세계에 알렸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해 가지고 이번에 북한인권법에 국군포로 유족, 미귀환포로와 국군포로 유족들에 대한 언급이 딱 됐을 때 저는 뉴스를 보며 팡팡 울었습니다. 아 이제 시작이구나. 10년 동안 울어보고, 정말 발품을 팔면서 방방곡곡 헤맸지만 이제 첫 시작을 알리는 시작이라고 저는 생각했지, 이제부터 더 많은 걸 알리고 국군포로가 아프다는 걸 더 많이 호소해야 되겠다는 걸 생각하며 새로운 희망을 가졌습니다.
질문 4) 손명화 씨는 어떤 동기로 탈북하게 됐는지
손명화: 저는 공부를 잘해서 대학에 가고 싶었지만, 대학에 못 갔습니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아이큐가 높게 태어나면 국가에서 총알받이로 쓴다는 것을 저는 몰랐습니다. 그렇게 하다 나니까 김정일의 비자금 하는데 양귀비 마약을 제조하는 데 들어가서 일을 하다가 결과적으로는 다른 사람의 범죄를 국군포로 자녀인 네가 안고 너는 죽어야 된다는 그걸 제가 직접 내가 몸으로 느꼈고, 그래서 저는 그 이후로 이 세상에 살곳이 없구나! 아버지 고향에 가야 되겠구나! 하고 제가 탈북을 했고요. 제가 아버지 유해를 또 북한에서 모셔 오면서 오빠 한 분, 동생 한 명, 조카 27살짜리, 군대간 조카 등 3명을 정치범 수용소에 보내고 아버지를 모셔 왔습니다. 그러니까 결과적으로 아버지 유해하고 살아있는 사람 3명과 바꾼 게 됩니다.
질문 5) 탈북해 남한에서 사는 국군포로들 이야기해 주시죠.
손명화: 지금 한국에 온 국군포로는 생환 살아서 돌아온 국군포로는 80분이 왔는데요. 그 어르신들이 인제는 다 돌아가시고 15분이 살아 계십니다. 그런데 그분들이 돌아가시면 사실은 안장할 때, 장례식장 가면 사람이 없어서 썰렁합니다. 그런데 국군포로가 돌아가시면 뉴스가 안 나옵니다. 위안부가 사망하면 뉴스가 나오지만, 국군포로가 돌아가시면 뉴스가 안 나옵니다.
질문 6) 북한에 있을 때 국군포로들 가족들 이야기
손명화: 아버지가 북한에 있을 때 총살당했고, 어머니가 만삭일 때 아버지가 총살 당하다니까 평생 아버지를 못 보고 태어난 자식이 있고, 자식을 앞에 앉혀놓고 아버지를 총살하는 것을 본 자식도 있고. 정치범 수용소에 잡혀간 자식도 있고, 국군포로가 이처럼 총상 당하고, 정치범 수용소 가고, 죽고 즉 이런 자식이 온 세대가 112세대가 왔습니다. 유공의 대우란 하나도 없습니다. 한국에 와서도 인권유린을 당하고, 인권 차별을 당하기 때문에, 그런 슬픔이 이게 과연 내 아버지가 나라를 위해서 총을 가지고 나가서 이 나라를 지켜줬는데, 나는 대한민국에 오면 정말 고맙다. 너의 아버지가 나라를 지켜줘서 고맙다고 따뜻하게 안아줄 줄 알았어요. 그런데 우리는 한국에 와서도 산악지대에 내몰린 그런 사람으로 된 것이 우리는 너무나 슬픕니다.
질문 7) 새해 들어 활동한 이야기
손명화: 2022년도에는 범 해지 않습니까? 저도 범띠입니다. 제 띠를 가진 이 범해에서는 제발 국군포로의 아픔과 그 국군포로들의 명예와 국군포로들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그런 해로 장식했으면 좋겠다. 지난 6일 오세훈 시장님과 면담을 갖고 국군포로 송환촉구 및 귀환 국군포로 처우 개선에 대해 건의했는데, 오세훈 시장님께서도 국군포로의 문제는 국가의 문제이기 때문에 여야를 막론하고 이 문제에 우리가 그동안 이 문제를 소홀히 한 데 대해서 시장으로서 미안하다고 저를 손잡아 줬고, 힘내라고 손잡아줬어요. 그러니까 오세훈 시장님도 시장을 하는 기간까지 국군포로를 이제부터는 이름을 부르면서 함께 가겠다. 이렇게 했기 때문에 저는 큰 기대를 걸고, 그다음에 국회에서도 제가 이번에 1월 5일에 공청회를 했습니다. 국군포로 유족들도 그 아픔을 우리가 함께 나누자 하는 공청회를 제가 참석해서 들었는데 조금이나마 희망을 가질수 있는 그런 것이 보이니까 저는 그 희망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하고 저는 기도하고 싶습니다.
질문 8) 북한에 남아 있는 국군포로 가족들에게 한마디 해 주시죠.
손명화: 북한에서 언 땅에, 남모른 산속에, 산에서 돌아가신 국군포로들이 언제면 고향 땅에 묻히겠다고 누구마다 소원을 남기고 눈을 감았지만, 눈을 감긴 그 자식들도 언제 가는 거기서 버림받고 있었지만, 통일되면 아버지 고향에 꼭 찾아오겠다는 그 희망을 가지고 있으리라 생각 합니다. 우리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저는 북한에 있던 국군포로들과 우리는 그래도 대한민국에 와서 쌀밥이라도 배부르게 먹는데 북한에 남아 있는 국군포로와 그 자녀들은 쌀밥 한 번 먹어보지도 못하고 그 살아온 삶이 어려운데 그 사람들을 위해서 저는 최선을 다하고 그 사람들의 몫까지, 그 사람들이 통일돼서 와서 국군포로 사람들이 자기네들을 위해서 이렇게 활동한 것에 대해 감사할 거라는 기대를 걸고 더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합니다.
초대석 오늘은 국군포로가족회 손명화 대표와 이야기 나눴습니다.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기자 이현기, 에디터 이진서,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