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FA 초대석 오늘은 지난 2월 초 대안학교, 남북사랑학교를 졸업하고 올해 대학에서 간호학을 공부하는 정 모 씨의 이야기를 함께 들어봅니다. 정 모 씨는 10대에 해야 할 공부를 30대에 하면서 어려움을 잘 극복하고 대학에서 공부하기까지의 이야기입니다.
탈북 만학도 정 모 씨 대안학교 다닌 이야기
정 모: 저는 2019년도에 대한민국에 와서 처음으로 학교 공부를 시작했었거든요. 그때가 30대라서 공부하는 데 사실 너무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처음 시작하는 공부이다 보니까 기초도 안 됐고, 이걸 해야되나 말아야되나 하는 도중에 저희 남북사랑학교 선생님들께서 혹 포기할세라 진짜 세세하게 다 가르쳐 주셔서 졸업까지 하게 됐는데 공부를 하면서 제가 학교에서 느꼈던 것, 교장 선생님에 대한 건데, 학생들 공부뿐 아니고 생활에서 어려운 것까지 일일이 다 챙겨주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어려운 공부였지만 또 졸업까지 할 수 있도록 할 수 되었다고 생각하고요.
남한에 와 공부하면서 '배워서 남 주자!' 뜻은
정 모: 하나는 제가 공부하면서 느낀 것은, 예전에 생각했던 자본주의 사회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모습과는 달리 섬겨주시는 선생님들이 뭐라 해야 되지! 저희(북한) 사회에서는 볼 수 없었던 어떤 모습들, 댓가가 없이 배워 주시고, 섬겨주셨던 그런 것들이 너무 감사했었고요. 또 여기 와서 또 알게 된 그런 말이 있는데 항상 말씀해 주세요. '배워서 남 주자!'이런 말인데 저는 이 말을 한국에서 처음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정말 이해가 안 됐는데, 학교에서 배우다 보니까 선생님들의 행동 하나 또 가르쳐 주시는 그 정성 하나하나씩 이제 알아갈수록 이 말을 이해되었고, 그렇게 배우면서 저도 대학에 가서 꼭 '배워서 남 주는 사람이 되자!' 이런 생각을 하면서 대학까지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학교생활에서의 느낀 점들은
정 모: 앞으로 대학에 가서도 선생님들 생각하면서 저도 공부에 최선을 다해서 좋은 성적으로 졸업하고 또 졸업한 후에는 모교에 와서 우리 후배들과 배운 지식을 나누겠다는 마음으로 지금 출발을 시작했는데, 선생님들께 전하고 싶은 마음은 선생님들이 너무 마음이 착하셔서 학생들 눈치를 봐야되나! 그런 걸 엄청 살피세요. 우리가 뭘 불편해하지 않을까? 일단 학생들이 그렇게 다 착한 학생은 아니거든요. 그럴 때마다 선생님들께서 앞으로는 조금 섭섭하시거나 속 상하는 일이 있으면 좀 학생들한테 그냥 터놓고 얘기해주시고 그래서 그런 금신 같은 걸 마음에 세기지 않고, 그냥 학생들 가르쳐 주셨으면 좋겠고요. 마지막으로는 제가 학교 다니면서 가장 큰 감동을 받았던 것은 저희 학교에서 쓰는 교재 또 간식도 엄청 많이 나옵니다. 매일 그리고 또 우리가 가는 수학여행 또 직업 체험, 놀러도 많이 다녔는데, 사실 그때까진 다 몰랐지만 졸업하는 날까지 하나하나 깨달은 것은 이것이 후원이 없이는 저희가 진짜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학교거든요. 그래서 참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후원해 주시고, 기도로 섬겨주신 보이지 않은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북한에서 배운 것 회고
정 모: 저는 사실 북한에서는 학교를, 여기 초등학교 3학년 때쯤 중퇴했었습니다. 상황이 안 좋아서요. 그래서 지난 거기서 배웠을 당시는 제일 차이 났던 점이, 역사, 네 북한에서는 한국과 정반대로 역사를 다 가르쳐주거든요. 여기 와서 한국전쟁이라는 것을 처음 들었습니다. 북한에서는 한국이 먼저 북한을 침공했다 이렇게 배웠거든요. 사실 저희는 그걸 진짜로 다 믿었고, 또 조선 시대 거슬러 올라가면 이성계부터 내려오면서, 그런 것들을 한국하고 다 반대로, 아니 뭐 역적 이성계, 이런 식으로 배웠거든요. 그래서 한국사 배우면서 진짜 혼란스러웠던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었고, 또 그 관점을 바꾸기에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지금은 한국에서 배우다 보니까 사실 북한에서 배웠던 것들이 이렇게 허위가 너무 많았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 제가 한국사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고 해서, 배우면서 그런 것들에 대한 어떤 차이도 있었고, 또 하나는 영어에 대한 거부감, 북한에서 저는 영어를 못 배웠습니다. 처음 와서 배울 때 너무 어려웠고, 한국은 모든 과목이 예를 들면, 과학이라던가 진짜 너무 자세하게 다 배워주는데, 북한은 그렇게까지 깊게 안 들어가거든요. 그런 차이점이 되게 많았고, 교육 시스템도 역시 북한이랑 많은 차이가 나더라고요.
간호사가 되겠다는 소망의 꿈 이야기
정 모: 저는 대학에 가서 간호사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간호학과에 진학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간호학과를 선택한 것은 제가 북한에서부터 한국까지 오는 길에 되게 아픈 사람들을 많은 봤었는데 참 안타깝게도 그 어떤 아프다는 이유로 대한민국 입국이 어떻게 승인이 안 돼서 계속 그 제 삼국에 남아서 살아야 했던 사람들도 제가 보면서 참 안타까운 마음에, 그때부터또 한국에 왔는데, 저희는 사실 여기서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취직, 학업에서 조금은 차별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했을 때 그래도 다른 사람이 다들 하는 것보다는 조금 어렵더라도 어떤 다른 사람이 가질 수 없는 그런 기술, 전문기술을 배워서 취직하는데도 좀 안정적이고, 내가 안정적이 되야 또 다른 사람도 내가 도울 수 있겠다. 내 이런 생각 들어서 간호학과를 선택하게 됐습니다.
앞으로 봉사자가 되겠다는 다짐
정 모: 네. 저는 졸업해서 취직하고, 그 취직한 그 직장 외에, 제가 어떤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활동은 한국에서, 한국에 와 보니까 한국에도 사각지대에 놓인 청소년들이 엄청 많더라고요. 제가 몇 년 전, 와서부터 영상이나 어떤 기사를 보면서 거기에 조금 관심 있었는데, 제가 이제 안정적인 어떤 취업 또 생활이 안정적인 된다면 저는 사각지대에 놓인 청소년들을 돕고 싶고, 그들에게 직접 찾아다니면서 활동을 하려고 지금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통일되면 할 일
정 모: 당연히 있지요. 지금 갈 수 있으면 너무 좋지만, 진짜 통일이 된다면 북한에 가서 저는 당연히 병원 세우는 거 제가 할 일이 아니지만, 일단 한다면 거기 가서 같이 하고 싶고, 친구들도 데려오고 싶고, 또 설사 그렇게 하지 못하더라도 제가 있는, 제가 사는 그 지역에 가서 아픈 사람들, 허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제가 알고 있는, 제가 배운 대한민국, 제가 알고 있는 그런 지식들을 같이 공유하면서 사는 것이 내 꿈이기도 합니다.
한국 생활 회고
정 모: 네. 가장 좋았던 게 어디에나 마음대로 갈 수 있는 겁니다. 북한 같은 경우는 진짜 내 집 밖에 나서면서부터 어떤 내가 모르는 감시의 눈들이 따라다니거든요. 사실 그 누구를 불문하고, 한국에 오면 사실 내가 원하는 시간에, 내가 원하는 장소에 아무 때나 갈 수 있다는 것이 저는 가장 좋았고, 지금도 그 자유에 대해서 너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 왔을 때 교통이 너무 잘돼서 제가 깜짝 놀랐는데. 네 지금도 늘 놀라고 있지만, 하루빨리 그래서 통일되면 저는 제일 먼저 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네 교통이 빨리 풀리고, 그래서 누구나 하루에도 한국도 외국도 나갈 수 있는 그런 자유가 하루빨리 오기를 소망합니다.
RFA 초대석 오늘은 지난 2월 초 대안학교, 남북사랑학교를졸업하고 올해 대학에서 간호학을 공부하는 정 모 씨의 이야기를 함께 들었습니다.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기자 이현기, 에디터 이진서,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