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거주 참전용사 강석희 옹의 전쟁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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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쟁 때 참전한 뉴욕 거주 참전용사 강석희옹은 올해 90세로 지난 1950년 11월에 제1사단 수색대에 소속돼 참전했다 중공군이 던진 수류탄에 맞아 전신이 쇳덩어리가 박혀서, 지금도 그때 빼내지 못한 조각이 거진 70년 가까운 해 동안 욱신욱신하다가 요새는 겉으로 삐죽삐죽 살에서 나오는 고통 속에 있다고 전쟁 당시를 회고해 줍니다. 그리고 메모리얼 데이가 오면은 먼저 간 그 전우들 생각도 하고, 새록새록 한 옛날 전투상황이 되살아난다고 증언했습니다.

RFA 초대석 오늘은 뉴욕 거주 참전용사 강석희 옹의 이야기 함께 듣습니다.

6.25 참전이야기

강석희 옹: 그러니까 숙명적으로 결국 김일성이가 일으킨 전쟁 때문에 다 전 국민들이 소용돌이 속에 쌓이게 되니까는 결국 군에 들어가게 된 거지요. 6.25가 발발해서 갈 데도 없고 결국 그래서 맨 처음에는 인민군에 붙들려서 의용군에 끼어들었다가 탈출해서 국군에 입대했지요. 그게 1950년 11월에 제1사단 수색대에 소속이 돼서 인민군과 싸우다가 주적이 중공군으로 바꿨어요. 그때 벌써 중공군이 개입해서 인해전술로 내려올 때, 전쟁에 소용돌이 속에서 그냥 길거리에서 자고, 산에서 자고, 들에서 자고, 가는 데마다 호를 파야 되고, 이를 닦을 사이도 없고, 밥을 제대로 먹지 못했는데 주먹밥에 무 조각 어쩌다가 고춧가루가 몇 개 묻은 무 조각을 반찬 삼아 먹고, 밤에는 노상 보초를 서야 하지, 그러니까 잠에 시달리고 아주 힘들지요. 그렇게 해서 싸우다 싸우다 춘계공격 1951년 4월 21, 22일 날 춘계공격을 해서 저는 1사단에 있었으니까는, 서부전선에서 적을 맞이 했는데 인해전술로 내려오는데, 개미 떼처럼 몰려와 죽여도 죽여도, 그냥 포를 쏘아붙여서 살상을 해도 산에 중공군들 시체가 늘비하게 널려 있었어요. 우리도 물론 희생자는 있었지만, 그에 비하면 그렇게 큰 피해는 없으면서 결국은 맞붙어서 백병전하면서….

6.25 전쟁 때 부상당한 이야기가 있으시죠.

강석희 옹: 결국은 중공군이 던진 수류탄에 맞아 전신이 그냥 쇳덩어리에 박혀서 지금도 현재는 그냥 거 그때의 파편이 속에 박혔던 것들이 조각이 많으니까 그걸 다 빼내지 못하고, 오랜동안 거진 70년 가까운 해 동안 육신에서 욱신욱신하다가 요새는 인제 겉으로 이렇게 삐죽삐죽 살에서 나와요. 그러니까는 이때가 되면은, 메모리얼 데이가 오면은 먼저 간 그 전우들 생각도 하고, 새록새록 한 옛날 전투상황이 되살아나지요. 하여간 그 처참했던 전쟁은 기억하게 쉽지는 않지만, 어쩔수 없이 그냥 이 생명이 다할 때까지는 기억에서 살아지지 않지요.

6.25 전쟁 때 미군이 참전하게 된 이야기도 들려주시지요.

강석희 옹: 김일성이가 결국 그 스탈린의 허가는 받아서 밀고 내려오지 않았어요. 그런데 결국 트루먼 대통령의 결단에 의해서 한국을 수호해 줘야겠다. 결국 그렇게 해서 미군들을 보냈는데, 미군들 아니었으면 우리는 나라를 뺏겼지요. 미군들 3만 7천 명가량이 전사자로서, 어느 누가 그야말로 모르는 어디인지도 모르는 이 땅에 멀쩡한 젊은 사람들이 와서 열심히 싸웠어요. 싸우면서도 보면 그야말로 우리가 뚫릴 것 같으면 또 와서 포 지원을 해주고, 보병들을 투입해서 같이 싸우고 했지요. 대강 군복이나 그런 물자가 미군들한테 지원을 받았기 때문에 미군이 없었으면은 우리 대한민국은 구제될 수가 없었지요. 미군들의 물자, 총에서부터 박격포 그리고 공군지원, 중공군 패퇴한 게 결국은 내가 볼 때는 로켓포 공격과 기관총 사격으로 나오니까는 견제 내지 못하지요.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주는 충언

강석희 옹: 지금의 현재의 젊은이들은 전쟁의 참화를 모릅니다. 그리고 북한의 공산주의자라는 게 공산주의자도 아니고 사회주의도 아니고 이게 전체주의(全體主義)에요. 그러니까 몇 사람만 잘 먹고, 몇 사람만 권력을 가지고 호의호식하고, 딴 사람들은 무슨 사회주의 공산주의라고서 그냥 독재 계급주의인데 이걸 맛을 못 본 젊은이들이 그런 경험이 없으니까는 아주 환상에 젖어 있어요. 전쟁이라는 거는 그냥 때도 없이 돌발적으로 오늘 거니까는 정신무장을 해서 우리가 누리는 자유를 얼마나 고귀한 건가! 이 전쟁이 결국 6.25전쟁 때 그 당시 나이가 17세 18세 19세 20세 청년들이 나가서 수 없이 그 목숨을 그냥 꽃잎처럼 날려 버려서 지킨 자유라고요.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 너무도 모르는데 정말 피로써 지켜준 자유를 누릴 줄 모르고, 오늘날 이렇게 잘살고 자유가 넘치니까는 고마움을 모르는데, 언제나 전쟁은, 김정은이가 자기 나라 국민들을 먹이지도 못하고 그냥 독재로 누르고, 죽이고, 조금만 말을 잘못하면 정치범 수용소에 보내가지고 가족을 전부 다 추방해서 고생시키는 그런 나라를 배격하고, 정신 똑바로 차려서 그야말로 우리 자유를,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를 지켜야지, 그렇지 않으면 아주 북한에 불쌍한 우리 국민 반쪽을 살려내야 한다고, 그러니까 책임이 있다고요. 자유민주주의는 거저 얻어지는 게 아니고 피로써, 젊은 피로써 지켜진 것이니까 소중하다는 걸 꼭 생각해야 합니다.

한국전쟁에 참여한 미군들에 감사해야 한다고요.

강석희 옹: 미국은 은인입니다. 또 우리가 미국까지 와서 지금 잘살고 있고, 그야말로 자유를 누리고 있는 것도, 다 미국의 군인들 특히 나라를 위해서 지킨 것, 미국은 재향군인들 특히 부상 당한 사람들을 중히 여깁니다. 그래서 이 나라는 국가보훈으로서 이뤄진 나라에요. 그래서 성조기 밑에서 그동안 나라를 지킨, 국가를 지키다가 생명을 잃은 영령들을 기리는 행사가 벌어지고 있고, 또 길이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똑같이 대한민국도 미국에 고마움을 표시해야 되고, 또한 우리 같은 젊은이들은 우리나라를 위해서 생명을 바친 사람들, 6.25 때, 월남 전쟁 때, 그리고 천안함 사건에서 폭침으로 인해 젊은 목숨을 잃은 장병들의 넋을 위로하고 경건하게 사람들에게 명복을 비는 그런 자리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일단은 명심해야 합니다. 젊은 사람들 중요한 것은 자유입니다. 자유를 지키려면 힘이 있어야 하고, 또 먼저 나라를 지키다 간 사람들의 고마움을 알아야 합니다.

한국을 자유 민주주의로 잘 지키길 당부합니다.

강석희 옹: 6.25전쟁이 일어난 지 71년, 이제 그래도 그 후로 어려움은 있었지만, 우리 대한민국이 탄탄한 발전을 해서, 다 대한민국의 이승만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 같은 그런 산업적 아픔이 있었지만, 고통 기간이 있었지만, 그분들의 그런 건국 정신이 없었으면 우리나라가 오늘과 같은 영화와 영광을 누릴 수 없었으리라 생각하는데 그런 거를 잘 지키려면 그야말로 공산주의나 악랄한 북한의 김정은 정권과 좌파들의 그런 노림수에 넘어가지 말고 한국을 지켜야 합니다. 하여간, 젊은 사람들에게 잘 부탁을 해서 한국을 잘 지켜주기를 젊은이들에게 부탁하고, 그다음에 우리 노인들은 벌써, 이번에도 6.25 참전 할아버지들이 뉴욕 지회에도 한 6분이 돌아가시기도 했는데, 우리는 얼마 남지 않는 생이지만, 고국의 자유를 지키는 데 일익이라도 담당하려고 하니까? 정신들 바짝 차려서 나라를 지키기 바랍니다.

RFA 초대석 오늘은 뉴욕 거주 참전용사 강석희 옹의 이야기 함께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