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동포 워싱턴 거주 해군 예비역 제독 정규섭 옹의 6.25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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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수도 워싱턴 인근 거주 6.25 참전용사 정규섭 옹은 올해 96 세로 한국전쟁이 발발한 이후 서울이 북한군에 의해 점령되기 바로 전 한국은행에 지금(地金) 즉 금괴를 안전한 진해로 후송하는 일과 대전 농협 창고에 많은 쌀들을 부산으로 내려보내는 일, 경주박물관 국보를 진해로 이송하는 일들을 수행했으며 그 외에도 전쟁을 지원하는 병참 업무를 많이 수행 등 지금도 당시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자유아시아방송과 회견에서 밝혔습니다.

RFA 초대석 오늘은 워싱턴 인근 거주 해군 예비역 제독 정규섭 옹의 6.25 증언 함께 듣습니다.

1950년 6.25 동족상잔의 전쟁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신다고요.

정규섭 옹: 금년은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남침으로 시작되어 3년 1개월 동안 전쟁을 치루고 휴전한 한국전쟁의 71주년을 맞이하는 해가 됩니다. 그래서 매해 6월이 되면 그때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북한군의 기습 남침으로 시작된 한국전쟁은 대한민국이 미국을 위시한 유엔 참전 16개국을 함께 싸워서 공산 세력의, 세계적화 야욕을 막아낸 세계 자유민주주의가 승리한 한국전쟁이라고 생각합니다.

6.25 전쟁 71주년을 맞는다며, 6월이면 그 당시가 더 생각난다고 했습니다.

정규섭 옹: 저는 당시 해군 소령으로 국방부 제3국 1과장 대리 직책을 맡고 있으면서 전쟁을 치뤘는데, 우리가 서울을 후퇴하면서 치룬 일들을 생각해보면, 첫째로 한국은행에 지금(地金)을 안전한 진해로 후송하는 일과 대전 농협 창고에 많은 쌀들을 부산으로 내려보는 일과 경주박물관 국보를 진해로 이송하는 일들을 수행했고 그 외에도 전쟁을 뒤에서 지원하는 병참 업무를 많이 수행했습니다.

정규섭 옹은 한국은행에서 금괴를 자동차에 실어서 진해로 옮긴 일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들려줍니다.

정규섭 옹: 6월 27일 우리 서울이 완전히 공산군에 의해서 점령되기 바로 전에 한국은행에 가서 한국은행 총재와 재무장관 그리고 국방부 상무국장과 저도 가서 지금(地金)을 전부, 헌병 1개 소대를 보내서 자동차에 실어서 진해로 내려보냈어요. 그 일을 한 것이 그때를 생각하면은, 순식간에 그 일을 했는데 옮기지 못했다면은 그 우리 국고, 재산을 모두 다 북한에게 뺏길번 했습니다.

정규섭 옹은 6.25때 미군이 도와준 것을 감사하며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정규섭 옹: 6.25전쟁에서 초토화가 된 나라를 오늘과 같이 세계의 10위권에 들어가는 경제 대국으로 발전하고 참 여러 가지로 자랑할만한 나라가 된 것은 한미 동맹을 기준으로 해서, 미국으로부터 음으로 양으로 많은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발전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해서 우리가 한미동맹을 굳건하게 해서 나라를 지켜야지 중국과 북한과 손을 잡고서 난국을 개척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디까지나 한미 동맹을 주축으로 하는 그런 정신으로 나라를 지켜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국민들에게 자유민주주의 나라를 지켜 달라고 당부합니다.

정규섭 옹: 전쟁이 끝나고 70여 년이라는 긴 세월이 지나가는 동안 대한민국은 하나님께서 도우셔서 박정희 대통령의 군사혁명으로, 전쟁으로 초토화된 나라를 산업화하여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으로 발전시켜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신봉하는 애국 보수 진영과 집권 좌익 세력 간에 대립으로 인해서 우리나라가 지금 국가적 위기에 처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현재 우리 대한민국은 차기 대통령 선거에서 누가 선출되느냐에 따라서 우리 국운이 결정되는 위기에 처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이 모두 발기해서 자랑스런 대한민국에 무궁한 발전을 선도할 수 있는 자유민주주의의 애국 지도자를 선출해서 국력을 통합해야 되겠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2010년 6월 한국전쟁 60년을 맞으면서 정규섭 해군 예비역 제독과 인터뷰를 한 바 있습니다. 6.25전쟁이 나기 전 공산주의가 싫어 북한에서 남한으로 내려간 정규섭 옹은 한국 해군사관학교 1기생이 됐으며, 6.25 동란 중 한국은행에 있던 금괴를 안전지역으로 옮기는 일등을 해냈습니다. 바로 군인으로서 전쟁 중에 금성을지훈장 등을 받은 이야기 당시 들려줍니다.

정규섭 옹: 금성을지훈장을 전쟁 때 받았는데 그것은 대전에서 우리가 미곡 수만 석을 부산으로 내려보낼 때 제가 1과장 대리로서 그 일을 전적으로 맡아서 한 것에 대해서 저는 그때 뭐 이런 보상이 있다는 것은 생각도 못 하고, 정말 내 힘을 다해서 그 일을 했는데 우리 국장 김일환 장군께서 특별히 제 공로를 인정해서 국방부 장관에게 상신해서 이 훈장이 저에게 내려졌습니다. 그리고 유엔군 사령부 일을 끝마치고 돌아왔는데 사령부에서 BRONZE STAR(동성 훈장)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미국 정부에서는 워싱톤에서 해군 무관 3년을 마치고 난 후 LEGION OF MERIT(수훈 무공 훈장)을 받았습니다. 이 훈장 받은 것을 명예롭게 생각합니다.

정규섭 옹으로부터 당시 들었던 군인정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정규섭 옹: 나라의 국토를 방위하는 그런 임무를 목숨을 걸고 수행하는 것이 군인의 임무가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 해군에서는 손원일 제독께서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이 몸을 삼가 바치나이다.' 하는 교훈을 주셨어요. 당시 교훈으로 삼고 내가 해군 장교로 근무하는 동안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내 몸을 바쳐서라도 우리 국가를 수호해야겠다. 그런 정신으로 장교 생활을 해 왔습니다.

정규섭 옹은 당시 1953년에 북한에서 미그 15기를 몰고 온 귀순 용사 노금석 씨를 만난 얘기도 들려줬습니다.

정규섭 옹: 제가 동경 유엔군 사령부에 한국 군사사절단 해군 대표로 나가 있을 때 노금석(귀순 용사 1호는 1953년 9월 21일 미그15기를 타고 온 당시 21세의 노금석 북한군 소위) 씨가 북한에서 미그기를 타고 한국으로 망명했는데 그 비행기를 오키나와 공군기지로 가져왔기 때문에 그리고 거기에 노금석 씨가 있었기 때문에 동경에서 대북 방송을 맡고 있던 홍양보 기자하고 함께 오키나와로 가서 노금석 씨를 만나 인터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 일은 우리가 동경에 있으면서 전쟁 중인데 흔한 일이 아니지요.

정규섭 제독은 전쟁을 모르는 세대에게 6.25전쟁은 김일성의 적화통일 야욕의 전쟁이라고 설명해 줍니다.

정규섭 옹: 제가 보는 한국전쟁은 그 당시 김일성이가 한반도를 적화통일 하겠다는 야욕을 가지고 시작한 무모한 전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국가의 백년대계를 생각해서 한국 젊은이들이 좀 더 앞을 내다보는 해안이 있어야겠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RFA 초대석 오늘은 워싱턴 인근 거주 해군 예비역 제독 정규섭 옹의 6.25 증언이었습니다.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