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을 만나보는 RFA 초대석, 진행에 전수일 입니다.

지난 7월 중순 북한 군부 실세로 알려진 리영호 총참모장이 전격 해임되고 그 후임으로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현영철 대장이 임명되자 미국의 대표적인 신문 뉴욕타임스는 김정은의 권력체계 개편 배경에 관한 분석기사를 두 차례 잇따라 보도했습니다. 이 기사들에서 인용된 한국의 북한정보전문 민간단체가 있습니다. 바로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입니다. 탈북자 이윤걸씨가 2010년12월에 설립한 이 단체는 북한의 고위급 소식통의 정보를 인용해 북한 내부의 주요 동향을 보도하고 있는데요 작년 봄 한국 공공기관과 민간기업에 대한 사이버 공격이 북한의 소행이라고 밝힌 것을 한국 당국이 확인해 주목을 받기도 했습니다. 북한의 리과대학교에서 동물생명생리학으로 준박사를 따고 국가과학원 생물공학분원에서 박사과정을 공부한 이윤걸 대표는 김일성 김정일의 장수를 연구하는 청암산 연구소 연구원으로 일하다 2001년 탈북했습니다. 그는 올 2월 충남대학교에서 농생명공학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전수일: 김정은의 권부 개편, 특히 7월 중순 리영호 전 총참모장의 해임 배경과 이에 따른 김정은 체제가 지향하는 앞으로의 정치 외교 경제의 향방에 대해 한.미.일 관련국 정부는 물론 한반도 문제 전문가들 사이에서 견해가 분분합니다.
'김정은이 개혁에 걸림돌을 제거한 것이다.' '핵심 권력층 내부의 갈등의 소산이다.' '김정은 체제를 공고히 하는데 따른 희생양이다.' 등등 많은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윤걸 대표께서는 해임 배경을 어떻게 보십니까?
이윤걸: 김정일 시대의 소위 강경파 장성들 중에 이영호 김영철 김격식 등이 김정일의 유훈을 관철하는데 반대하는 경향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적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유훈은 계속 관철돼 왔습니다.
그런데 지난 3월 16일 미사일 공식발사를 발표한 이후 내부에서 2.29 합의 실천 문제를 놓고 논의가 많았습니다. 거기서 4월 갑자기 (내각 총리로) 부상한 최영림과 장기적으로 경제를 살리자는 소위 경제개혁파 사람들의 입김이 힘을 얻은 것 같습니다. 견해 차는 있었지만 갈등까지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 아마 김정은의 발언에 이영호가 일부 반대되는발언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않아도 최영림이 부상하기 전에 이미 내부적으로 김경희, 김정은이 최영림과 함께 김정일 때 처럼 김정은이 한 마디 하면 모두 통하는 그런 방식으로 군대를 바로 잡아야 겠다는 논의가 있었고 김정은 역시 이 기회를 이용해 군 통치권을 한 손에 틀어 쥐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도 무슨 일이 일어 나긴 하겠구나 했는데 이용호가 7월 둘째 주에 갑자기 교체된 것이죠. 우리는 그렇게까지 갑자기 교체될 줄로는 예상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렇게 될 잠재성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요.
해임 동기에 대해서 아직 확실한 건 알려지지 않았지만 저희들은 김정은과 이영호 사이에서 이영호가 빠져야겠다, 후진으로 물러서는게 좋겠다는 얘기가 있었다고 봅니다. 그 동기는 북한 경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과 중국의 북한 내 투자를 유인하기 위한 방편이 아니었겠나 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고 있습니다.
전: 리영호의 해임을 숙청이라고 한 보도도 있습니다. 해임과 숙청은 차이가 있을텐데, 이 대표는 어떻게 보십니까?
이: 숙청으로 보는 설도 있지만 이영호 아들까지 아는 사람에게 전화가 와서 직접 물어봤는데 아직까지 살았던 집에서 건재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북한에서 이영호 전격해임을 발표할 때 이영호 동지를 신병상 온갖 직무에서 해임시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전에 북한의 역사를 놓고 보면 박남기나 진짜 숙청됐던 여러 사람들은 공식적으로 발표도 하지 않고 조용히 제거했습니다. 하지만 김일철 같은 인물처럼 해임시킨다고 했던 사람들은 실제 모두 살아 있어요. 국방위원회 직위에서는 해임됐지만 아직 자기 자식들이랑 자리를 하고 있거든요. 물론 그 역할은 위축될 수 있겠지만요. 그런 면에서 이영호는 분명히 숙청보다는 북에서 말한 것처럼 해임조치를 취하지 않았겠나 저는 그렇게 봅니다.
전: 김정은의 경제 개혁문제가 가장 중요한 화두로 다뤄지고 있는데요 뭐니뭐니해도 경제개혁이라면 먹고 사는 문제만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김정은의 농업개혁부터 진단해 보고 싶습니다.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은 북한 당국이 지난 달 주민 한 명 당 하루 식량 배급량이 370그람에서 300그람으로 70그람이나 줄었다고 밝혔습니다. 또 북한소식을 전문으로 전하는 한국 매체 보도에 따르면 '북한 군 장교 가족들 조차 요즘 먹을 게 부족해 생활고를 겪고 있고, 평양에서는 식당 손님들이 먹다 남은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는 소위 '신사거지'들이 늘고 있다고 합니다. 그만큼 북한의 식량난은 심각하단 얘기인데요. 김정은 제1비서가 최근 내 놓은 이른바 농업개혁을 보면 협동농장 분조를 기존의 절반 이하인 4∼6명 수준으로 축소하고 국가가 생산물을 시장 가격으로 매입하는 조치를 각 시도에 내렸다고 합니다. 또 최근 양강도에서는 국가 계획량을 초과한 생산물을 농장원들에게 전량 분배하는시범사업도 추진하고 있다는데요, 이대표께서는 농업생명공학 박사인 전문가로서 이런 농업개혁조치로 보이는 것이 얼마나 김정은의 진정한 개혁의지를 담고 있다고 보십니까?
이: 김정은의 개혁의지는 김정일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높다고 봅니다. 하지만 모든건 상대적 개념으로 봐야하는 만큼 그렇다고 북한이 전면적인 농지개혁을 실현할 상황은 절대 아니라고 봅니다. 지금 하고 있는 게 일종의 개혁이라고는 하지만 이건 (2002) 7.1 경제개혁조치에서도 이미 나온 항목입니다. 지금 북한이 근본적으로 해야할 것은 중국수준처럼 토지를 마음대로 임대할 수있는 임대권을 사고팔 수있는 다시말해 생산수단을 마음대로 거래할 수 있는 그런 수준까지 개혁하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그걸 통해 나오는 잉여생산물을 농민들이 마음대로 처분하고 농산물 생산을 위해 필요한 여러가지 자원들, 예를 들어 트랙터 비료 등을 필요할 때 사고팔 수 있는 그런 시장이 형성되지 않으면 지금 같은 개혁은 형식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걸 봐서는 이번 개혁이라는 게 북한주민들의 생산의욕을 고취하고 잉여생산물로 먹고 사는데 불편이 없도록 하겠다는 게 아니라 아직도 북한 중앙 정권이 북한주민들의 여러가지 먹고 사는 문제를 통제하겠다는 의미로 저는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단지 개혁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줌으로써 북한 주민들이 '김정은이 김정일보다는 낫구나'라는 생각을 하도록 해서 좀더 참고 기다리게 하려는 대안이 아니겠냐는 생각입니다.
전: 그러니까 단순히 전시적, 혹은 정치적인 효과 정도 밖에는 없지 않겠냐는 얘기군요?
이: 네.
전: 북한전략정보센터가 지난 6월 보도에서 ‘농사문제 해결의 고리는 결국 비료인데 비료가 부족하다... 비료생산 마비의 주요 원인은 전력의 부족이라서 북한 농업의 미래가 걱정된다’고 지적했습니다. 전력부족이 주요 원인이라면 비료문제는 만성적인 것이 아닙니까?
이: 그렇죠. 북한 전력부족의 근본원인은 북한 현 경제시스템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석탄에 의존한 편중된 전기 전력 생산체제와 전력 생산을 고취하기 위해 여러가지 사회주의적 중앙집권체제적 시스템의 불결한 점이 기본적으로 잘못돼 있습니다. 그걸 바꾼다는 건 쉽지않고 그걸 바꾸려면 전력생산의 다변화가 필요합니다. 물론 북한에서는 그걸 꾀하고 있었지만 효율면에서는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현 시점에서 북한이 폐쇄적인 정책과 자립적인 경제발전 방식으로는 그 효과가 국부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전: 그렇다면 비료생산이 국내에서 조달이 안될 경우 결국 한국이나 중국에서 계속 얻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이: 네. 수입을 해야 하는데 수입을 하려면 현금을 주고 사든지 혹은 그 대가를 치러야 하는데 현재 북한은 물물교환을 할 것도 없는 상태라고 봅니다. 석탄을 생산하는 북한에서 들어가는 원가 대 시장가가, 즉 생산물 가격이 원가보다 높지 못하고 또 전기를 생산해도 전기가 효율적으로 쓰이지 못한다는 데서 공업 전반의 효율성에 문제가 있습니다. 생산을 많이 해도 생산자들에게 차려지는 게 없기 때문에 북한은 2중3중의 체제적 위협에 도달해 있다고 봅니다. 이제는 정치 하부구조인 경제분야의 위협이 더욱 가중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전: 한 나라가 밥만 먹고는 살수가 없는 것인데, 외국자재와 물품을 수입하려면 그리고 북한처럼 무기개발에 매진하려면 외화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그 외화벌이 전략의 하나로 북한이 인력수출을 대대적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합니다. 7월 초순 홍콩의 주간지는 ‘올 연말께부터 조-중 국경지역의 중국 내 공단에서 일하게 될 북한 노동자가 2만 명’ 정도가 일하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고 또 저희 방송에서도 북한당국이 외화벌이를 목적으로 해외에 파견할 여성 노동인력을 대대적으로 모집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북한의 인력수출은 새로운 게 아니고 중동건설현장에도 여러해 전부터 인력을 보냈었는데, 이런 인력수출이 김정은 집권 이후에 대거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 원래 인력수출과 관련해서는 2010년부터 북한 내부 소식통에 의해 계속 나오던 소식입니다. 외부에 인력이 나가서 생산하고 관리하고 그 대가로 외화를 받는 건 좋지만 생산자들의 해외망명이나 한국으로 넘어가는 걸 관리하는 문제가 있어 이에 대한 논의가 많았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와서 노동자 수출이 많아지고 있는 것은 그런 위험에도 불구하고 외화를 벌어야 하겠다는 배경이 있습니다. 남한 식으로 얘기하면 60년대 경제발전을 위해 독일 등에 노동자들을 많이 보낸 것과 같습니다. 특히 중국시장이 동북3성을 중심으로 부상하면서 그쪽으로 인력 수출이 많습니다.
특히 김정은은 핵보유국 또는 미사일을 완성시켜서 전략무기의 우위를 선점해서 통일을 해야한다는 전략적 목표를 완성하려면 결국 돈이 필요하다고 결론지어 비록 노동력 외부 수출이 민감한 문제이긴 하지만 외화벌이를 위해서는 그 문제를 양보해야 하지 않나하는 전략을 쓴 것으로 생각합니다.
결국 북한쪽에서는 실제로 돈을 벌기위해서는 이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상황이에요.
전: 그러면 이번엔 김정은의 문화전략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최근 모란봉악단의 공연 보셨죠? 미국의 대중문화를 대표하는 디즈니의 미키마우스, 백성공주, 그리고 미국영화 ‘로키’라고 있는데 러시아 권투선수를 무찌르는 미국 권투선수 ‘로키’의 영상을 배경으로 주제곡 연주하고 춤을 추는 등등 이런 파격적인 공연을 비데오로 봤습니다.
미국을 원쑤의 나라라고 어릴적부터 교육시키고 곳곳의 구호간판에 미국 제국주의를 무찌르자고 하면서 어떻게 미국의 가장 대표적인 대중문화를 조선중앙텔리비존을 통해 방영할 수 있는지. 대내적 대외적으로 계산된 목적이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네. 분명히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제는 북한정권도 실리를 따져야 되는 거를 알 겁니다. 이미 북한의 권력 상층부는 미국 대중문화를 알고 있지 않았습니까? 단지 주민들에게는 이걸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가 부각되고 논의되어 왔었습니다. 지금까지는 미국과 그 괴뢰도당인 한국과는 거래는 가지되 그건 순전히 이익을 챙기기 위한 것이고 그들이 위대한 김정일에게 갖다 바치는것이라고 왜곡 보도해왔습니다. 하지만 북한 일반인들도 사실을 다 알고 있는 일입니다. 근데 김정은에 와서는 그걸 뭐하러 숨기겠는가 어차피 가야할 길인데 라고 생각한 측면이 있습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 정권이 외부세계의 북한 내 투자나 국제시장에서의 금융제재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는 촉박함 때문에 외부에 보내는 일정한 제스처라고 봅니다. 지금 급박한 미국과의, 중국과의 관계를 유연하게 처리하기위한 술수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전: 북한의 인권문제로 주제를 바꾸지요. 개천 14호 정치범수용소 출신의 탈북자 신동혁씨의 수용소 경험을 영문책으로 펴낸 블레인 하든, 전 워싱턴포스트 신문 기자가 최근 foreign policy (7월 26일 목요일) 기고한 글에서 “김정은 집권 이후 경비군 2만명을 국경에 증파하는 등 조중 국경 통제를 강화해 탈북자 수가 크게 줄면서 자유를 찾기도 힘들어 졌고 식량 구하기도 더 어렵게 됐다. 그리고 근래 탈북한 주민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보고서에 따르면 정치범수용소의 수용자 수도 줄지 않았다” 면서 북한 일반 인민들의 인권은 아버지 김정일 때 보다 더 악화됐다고 주장했습니다. 김정은 집권 이후 지난 7개월여 동안 북한 인권에 대해서는 어떤 정보가 들어오고 있습니까?
이: 실제로 인권문제가 더 악화된 건 사실입니다. 특히 북한의 현 체제가 골머리를 앓는 것은 북한을 탈출해 한국에 입국하는 사람들이 급진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김정은이 공식적으로 등장하면서부터 국경에 대한 통제가 훨씬 강화된 건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북한 현 체제가 주민들에게 먹고사는 것을 더 어렵게 했다는 건 상대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시장에서 사고팔고하는 행위에 대해 너무 강하게 단속하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간 것 같습니다. 때문에 북한 주민들은 김정일 때보다는 지금이 낫다는 말이 도는 게 사실입니다. 장마당을 통해서 먹고사는 경제활동은 조금 풀어주는 대신 정치적인 반체제적인 활동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나가는 방향이거든요. 이건 결국 북한 체제가 앞으로 인권과 자유화 민주화를 위한 의식적인 북한주민들의 활동은 더욱 제한하리라는 얘깁니다.
개방으로 보이는 그런 일정한 전술적인 수단은 이용하되 결코 전략적으로 북한주민들과 북한을 자유화 민주화하는 방향으로는 경제개혁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반증으로 보고 있습니다.
전: 이번에는 대남전략문제로 돌아가서 북한의 사이버 테러 전략을 알아보겠습니다. 2009년 7월과 작년 3월 초 그리고 4월에 잇따라 남한의 공공기관과 민간기업을 겨냥한 북한의 디도스 공격 있었고 같은 4월에는 GPS 교란 공격으로 서해 5도 지역 운항 선박과 미국 한국 중국 일본 항공기 650여대의 안전운행을 위협했습니다. 금융이나 발전소 같은 사회 기반 시설 혹은 정부 기관이 사이버 공격을 받을 경우 경제적 피해뿐아니라 안보적인 피해가 우려된다는 점에서 사이버 테러는 심각한 문제로 인식해야 할 것 같습니다. 북한의 사이버테러 조직의 정체와 규모 능력에 대해 아시는 바가 많으실텐데요?
이: 북한의 사이버전쟁은 원래 컴퓨터가 개발되어 윈도우 식으로 상용화 되는80년대 말, 90년대 초부터 그런 방향으로 연구가 진행됐고 또 관련 부대들이 만들어 진 걸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확실한 자료에 의하면 북한에 사이버 테러를 처음 배워준 나라는 대만입니다. 사이버 테러 고수들이 북한과 교류했습니다. 그 배경은 90년대 초반에 한중교류가 시작되자 북한에서는 그 대안으로 대만과 비공식적인 라인을 구축한 걸로 압니다. 당시 대만은 북한에 대해 일정한 기여를 해주겠다며 북한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물은 결과 북한은 몇 가지를 요구했는데 그 중 하나가 컴퓨터 교육을 시켜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교육을 받으러 갔던 요원 중에 제 친구 한 명이 있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시작되어 지금 그네들이 하고 있는 것은 앞으로 유사시 다시말해 남북한 간 전쟁 발발시 또는 관계가 험악해질 때를 대비해 남한의 여러가지 사이버 제어시스템을 공략할 수 있는 그런 시스템을 장기적으로 준비한 것 같습니다. 우리가 확인한 바로는 김정은이 내부적으로 등장했다는 2009년때부터 더욱 활발하게 된 것 같습니다. 김정은이 2006년 말, 2007년초부터 후계자 수업을 받은 걸로 봐서는 김정은시대에 북한의 사이버 전력은 더욱 강화됐다고 봐야합니다. 북쪽 관련자 몇 명을 직접 접촉해 본 적이 있는데 북한은 최종적으로 우리의 GPS 교란과 우리가 보유하고 잇는 많은 전자제어시스템들을 마비시키고 북한의 물리적 공격의 효과를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군작전 방식이 달라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안밧침하기 위해서 북한은 제가 알고 있는 것만 해도 핵심 고수들만 1000명은 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고수가 아닌 일반적으로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은 3천여명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북한의 각 경제 민간분야에서도 해킹 프로그램을 개발해 우리 한국이나 중국 기업, 그리고 서방세계의 금융기관과 거래해 여러가지 이익을 나눠먹는 것 같습니다.
지금도 북한 내부에서는 해킹에 대한 수요가 높은 것 같습니다. 그들이 실제 외부에 나가서 몇 명씩 조를 이루는 걸 직접 취재한 적이 있는데 그 사람들 수준은 낮은 수준이 아닙니다. 우리의 전문가들은 자기 분야의 프로그램 밖에 모르는 사람이 많지만 북한 프로그래머들은 응용수학을 한 기초가 튼튼한 전문가들이라는 면에서 그들의 위협은 보통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전: 그렇다면 북한의 사이버테러가 점증하고 그에 대한 서방사회, 남한이든 미국이든 일본이든 그런 서방국가의 피해가 커질 경우의 후과, 즉 서방세계의 반응, 대응, 응징이 있지 않겠습니까?
이: 우리가 그렇게 하긴 어려울 겁니다. 왜냐면 북한내의 컴퓨터는 인트라넷으로 외부세계와는 단절된 시스템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식으로는 대응하긴 어렵고 다만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북한 사람들의 활동을 제약하기 위한 국제적인 공동 대응은 필요하겠죠. 북쪽도 결국 인터넷을 통해 필요한 여러가지 사이버 장비들을 장만해야 할텐데 그걸 누가 돕느냐면 중국 정부입니다. 중국정부는 북측의 행태를 알고 있지만 묵인하고 있고 중국 내 북한 고정 스파이들은 북쪽 사이버팀을 후원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외부에서 그들을 완벽하게 제재할 방법은 없습니다. 다만 거기에 동원된 사람들이나 장비와 수단을 막기위한 방법 밖에는 없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전: 2011년 6월 워싱턴을 방문해 한인사회 기자회견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북한 주민, 과반수가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의 3대세습체제가 잘못 된 것은 잘 안다. 하지만 엘리트 계층이 문제의식을 갖고 사회변화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북한의 변화는 오기 어렵다."
또 근래 한국의 대학생 젊은이들을 상대로 한 강연에서는 '북한 대학생들이 개혁개방을 이끌 대안세력'이라고 언급하셨습니다. 어째서 그들이 북한 변화를 이끌 세력이라고 생각 하십니까? 보통 민중혁명이나 아랍혁명은 일반 대중 민중 민초에서 시작됐는데요.
이: 물론 북한에서도 민초에 의해 결정적으로 판결이 나겠죠. 그러나 민중들의 운동을 조직하고 뒤에서 끝까지 밀고 나갈수 있는 핵심세력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핵심세력은 결국 북한내에서도 외부세계를 잘 알고 북한 내부에서 자기의 권력과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노력할 수 있는 의식적인 계층 다시 말해 중하위층 엘리트층을 중심으로 일어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인가? 제가 10년 전 한국에 오기 전에 그런 활동을 시도해 본 데 따르면-북한의 민초를 모두 싸잡아 하는 얘기는 아니지만-그분들에게는 먹고 사는 문제, 배고픈 문제가 더 중요하다는 겁니다. 따라서 사회적 정치적인 활동에 대해 생각할 상황은 아니더군요. 북한은 더욱이 내부적으로 민초들에 대해 사회적 의식적인 교육을 엄청나게 강화하고 있습니다. 다시말해 충실성 교육을 강하게 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그들에 대한 당국의 통제역량은 확실히 작동하고 있습니다. 그 통제역량을 이겨낼 수 있는 민초는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외부적인 영향과 함께 북한 내부적인 개혁 또는 혁명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노력하지 않는 한 개혁을 할 수 없다고 보는 거죠.
그래서 우리는 여기 와 있는 탈북자 대학생들이 지금 그 시대를 준비하고 그세력과 합세 할 수 있는 세력이라는 것입니다. 북한 내부에서 남쪽 세력과 함께 일어날 사람들이 누구냐면 10년 내지 15년 후에 북한사회의 중심계층이 되는 40대 되는 세대입니다. 이들은 고난의 행군 시대에 국가가 배고픔을 해결해 주거나 생명을 유지시켜 주지 않았던 세대입니다. 오히려 자신들의 부모들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시장에 나가 식량과 생필품을 얻어 키운 세대입니다. 그때 10대들은 지금 30대 정도가 됐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30대가 10년정도 지나 40대가 되면 자기의 이익을 위해 자신들의 요구를 확실히 할 수 있습니다. 왜냐면 현 정권이나 국가에 대해 빚을 지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김씨 정권이 먹여 살린 게 아니라는 것이죠. 지금 한국에 와 있는 20대의 공부하고 있는 세력이 아마 그들과 힘을 합칠 수 있는 핵심세력이 될 거라는 말입니다.
북한 내에 있는 사람들은 혁명이나 민중혁명을 필요에 의해 할 수는 있어도 통일을 통해 북한사회를 올바르게 발전시킬 수있는 역량에는 여러 제약이 있습니다. 자본주의와 민주화와 자유화를 실제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 와서 공부한 세력은 자유화와 민주화가 얼마나 좋은지 알고 또 그것의 효과를 아는 사람들입니다.
전: 어려서부터 부모님이 기독교 신앙에 대해 옛날 얘기처럼 들려 줬다는 얘기를 보도에서 봤습니다. 북한에 살 때 부모님께서 기독교 신앙을 갖고 계셨습니까?
이: 네. 확실하게 가지고 계셨습니다. 저는 어렸을 적부터 그런 얘기를 듣고 자랐습니다.
전: 근데 북한에서는 종교의 자유가 없고 기독교 신앙을 드러 내놓고 가질 수는 없는 일인데 부모님들이 김일성 이전부터 기독교 신앙을 갖고 계셨던 겁니까?
이: 네. 제가 여기와서 친척들을 만나 들어 봤더니 저희 집안이 신앙 5대 째라고 그러시더라구요. 북한에서도 아버지 어머니가 항상 말씀하시던 것이 지금 생각해보니까 자본주의 가치관이었고 기독교관이었어요. 어렵고 힘든 사람들 도와주어야 하고 이들을 착취하는 북한 행정부는 나쁜 것이고 그런 북한정권은 결국 망할 것이고 그러기 때문에 네가 북한 내부에서 올바른 가치관을 지니면서 정치는 배우지 말고 사이언스(과학)을 배우는 게 좋겠다라는 말까지 하셨습니다.
충실성 교육이 북한의 유일지배체제 교육인 반면에 저희 가정적으로는 그와 다른 교육을 받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10대후반 20대 초반에는 정체성과 가치관에 혼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직접 북한사회를 겪어보고 특히 고등교육을 받으면서 나름대로 객관적인 판단이 생겼습니다.
거기다가 제가 생각지 않게 북한 호위사령부까지 올라가서 북한 최고위층들이 어떻게 살고 있고 그들이 진실로 북한내 인민들, 민초들을 위해 일하는 지배계층이 아니란 것을 더 확실히 알고 난 다음부터는 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그 때문에 다행스럽게도 지금과 같이 살고 있는 것이고요.
전: 지금 한국에 와서는 기독교인으로 생활하시겠죠?
이: 네.
RFA 초대석, 이 시간에는 북한 내부의 핵심 정보를 수집 분석해 이를 한국과 국제사회에 전하고 있는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의 이윤걸 대표와 얘기를 나눠 봤습니다. 북한의 리과대학교를 졸업해 국가과학원 생물공학분원에서 박사과정을 마친 이윤걸 대표는 김일성 김정일의 장수를 연구하는 청암산 연구소 연구원으로 일하다 2001년 탈북했습니다.
저는 전수일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