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남부러울 것없이 생활하니 내가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이가 있습니다.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일하는 생활이지만 하나도 힘들지 않다면서요. 이제는 좀 여가생활도 하고 여행을 다닐 수 있게 됐다는 올해 63세의 노경미 씨의 이야기 전해드립니디.
-------------------------------------------------------------------------------------------
노경미: 아직까지 육체가 따라주는 것 같아요. 혹시 감기가 오는듯 하면 내가 알아서 찜질하고 병원가서 영양제도 맞고 내몸 관리를 함께 하거든요.
가사도우미 즉 일손을 필요로 하는 집에 가서 가정일을 대신해주는 겁니다. 남한생활 8년차가 되는 노경미 씨. 소위 말해서 눈 뜨면 나가서 해가 떨어져야 들어오니 일밖에 모르는 챗바퀴 생활이라 부를만 한데요.
노경미: 8년 동안 나는 하루에 6가지 일을 한 사람이예요. 아침에는 병원에서 환자 밥하는 일을 해요. 병실청소 하고 밥해 주고 나갈 때 상가 옆 수퍼 건물에는 세탁소, 미용실, 학원이 있는데 청소를 해요. 그리고 집에 와서 쉬다가 가정집에 가요. 갈 때는 시간이 아까워서 도시락을 가져가요. 그리고는 일하고 나올 때 아이들을 데리러 가요. 그러면 아줌마들이 일 끝나고 아이들을 데려가요. 그리고 다시 또 병원으로 가요. 병원에서 2시간 가량 청소를 하고 저녁에 오면서 또 상가 건물에 가서 청소를 해요. 우리 딸은 일을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해요. 그러면 내가 일을 안하면 안돼 나이 들수록 몸을 움직여야해 지금이 제일 행복한 때야 하고 그래요.
얼핏 생각하면 이렇게 일만 하려고 남한에 갔는가? 하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노 씨를 모르고 하는 소립니다. 직업에 귀천이 있는가? 자신이 하는 일에 만족하면 그것이 행복이지 라고 가볍게 받아 넘깁니다.
노경미: 사람이란 것이 돈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잖아요. 돈을 버니까 기쁨도 같이 올라가는 거예요. 손녀가 와도 내 돈으로 아낌없이 사주니까 기분이 아주 좋은 거예요. 일하러 가정집에 가서도 웃으면서 사람들과 소통하고 하니까 좋고 육체적으로 힘든 일도 아니니까 내 직업에 만족을 느껴서 그런지 내 직업이 좋다고 생각하고 일하고 있어요.
사실 남이 사는 집을 방문해 집안을 구경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런데 일 때문에 여러 집을 돌아다니면서 보니 그 집에 가전제품이나 가구 등 여러 가지 살림살이를 자연스럽게 보게 됩니다.
노경미: 북한에 비하면 너무도 모든 것이 고급이죠. 북한에서는 비누가 없어서 정어리 생선 기름에 양잿물을 섞어서 비누로 만들어서 머릴감고 나면 머리에서 비린내가 나지만 그런 것도 없어서 못 썼는데 여기는 향기로운 비누를 쓰게 돼서 한국을 선택한 것이 잘 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내가 가는 집들은 괜찮은 집들이예요. 집 꾸며놓은 것을 보고 나도 이렇게 살아야겠구나 …
남한생활에 적응하는 방법에는 여러 길이 있겠지만 이렇게 남의 사는 집을 보며 일상생활의 평범한 모습에서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됩니다.
노경미: 저는 잘사는 집에 다니다 보니까 나보다 수준이 다 높잖아요. 그 사람들만큼은 따라 못 가니까 언제 이 사람들만큼 살 수 있을까 하죠. 만족 하지만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더라고요. 전번에도 일하러 가니까 배추 씨레기를 씻어서 기계에 넣어서 돌려 물을 빼더라고요. 식품 탈수기가 너무 좋다며 어디서 샀는가 물어보니까 인터넷에서 샀다면서 선물로 그걸 주는 거예요. 만두 만들어 먹을 때 손으로 짜서 썼는데 이제는 기계에 넣어 하니까 얼마나 편한지 너무 좋아요.
탈북과 중국에서의 강제북송 끝에 지난 2009년 말부터 시작한 남한생활. 초기 정착에는 어려움도 있었는데요. 지금은 아니랍니다.
노경미: 내가 북한에서 어렵게 살고 여기 와서 행복하다고 생각하니까 매일 일하는 것이 행복하다고 생각하지 절망이란 것은 모르겠어요. 처음에 와서 조금 힘들었지 지금까지 8년을 한 직종에서 일했잖아요. 직업은 귀천이 없는데 내가 힘닫는데까지 하자 이런 생각이고 내 고객들은 다 괜찮은 사람들이어서 행복한 날만 있었어요. 슬픈날이나 좌절했던 날은 없었어요.
가정도우미를 하면 큰 돈을 벌 수 있겠구나 하고 오해를 하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는데요. 일에 대한 보수가 높아서가 아니라 절약하는 생활이 노 씨가 8년만에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한 비결입니다.
노경미: 차를 사라는 말을 많이 들어요. 지금까지도 자전거 타고 다니냐 차를 사라 그런데 차 사면 기름 넣고 고치고 보험들고 해야 하는데 자전거는 고장이 나도 내가 수리를 해요. 그러니까 돈 쓸일이 별로 없어요. 병원에서 일하니까 거기서 먹고 들어오고 낮에는 가정집 일나가면 거기서도 수고 했다고 같이 먹자고 하고요. 올때는 수고 했다고 또 뭘 싸줘요. 1년동안 20kg짜리 쌀을 사둔 것이 아직도 남았어요. 그져 관리비 나가고 핸드폰비 나가고 보험료밖에 나가는 것이 없어요.
기자: 앞으로 어떻게 돈을 값지게 쓰고 싶으세요?
노경미: 북한에 아직 혈육이 있어요. 저번에 몇번 보내줬는데 보내준 돈으로 새끼를 쳐야 하는데 먹고 살기 힘드니까 먹고 나면 없으니까 또 돈을 보내달라고 손을 내미는 거예요. 밑빠진 독에 물 붓기구나 그래서 당분간 안 보내겠다고 했어요. 보내주니까 내가 한국에 사니까 엄청 잘 사는 것으로 아는 것 같아요. 그래서 브로커한테 내가 아프고 해서 일을 못한다. 전화번호도 바뀌었다고 전하라고 했어요. 지금 탈북자 단체 동포사랑에 후원금도 한 달에 1만원씩 보내고 있거든요. 많은 돈은 아니지만 이웃을 돕는데도 쓰고 혈육도 도와주고 항상 내가 일하는 성취감이 좋은 거지 돈을 많이 벌어서 부자 되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이제 일에 대한 보상을 받았고 힘든 세월은 끝났다라고 말하는 노경미 씨. 앞으로는 주어진 시간을 좀 더 자신을 위해 쓸 계획이랍니다.
노경미: 그런 생각이 나도 들었어요. 지금까지 일밖에 모르고 집에도 비싼 것을 못 갖추고 살았는데 이제부터는 여행도 다니고요. 여기 에버랜드도 있고 민속촌도 있고 한데 일하느라 거기도 못 가봤아요. 우리 같은 고향에서 온 사람이 제주도에 있는데 날 보고 언니야, 제주도 한 번 놀러오라 해서 내가 이제 연금도 나오고 하니까 여행도 다니고 한 번 갈께 이렇게 말했어요. 이제부터는 여가생활을 누리겠어요. 내가 그만한 능력을 갖췄다고 했어요. 이제부터는 내가 일도 좀 줄이고 여가생활도 하고 그렇게 하려고 계획하고 있어요.
제2의 고향 오늘은 직업에 만족하고 사는 것이 행복하다는 노경미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