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자신의 인생을 설계하고 그 목표를 향해 준비해 나가는 과정은 많은 인내를 필요로 합니다. 하지만 그 길이 아무리 힘들어도 자신의 인생이기에 참고 이겨낼 수 있는데요. 오늘은 탈북과 중국에서의 강제북송의 그리고 마침내 남한에서 인생을 다시 찾은 최지애 씨의 이야기 전해드립니다.
최지애: 저도 북한에서 고생을 많이 했거든요. 북송을 3번 당하고 힘들게 살아왔어요. 남한에 오기 까지 너무 고생을 많이 했어요. 12년동안 엄마하고 헤이지고는 지옥 같은 삶을 살고 왔어요.
모든이의 삶이 같을 수 없지만 유독 특별한 그것도 경험하고 싶지 않은 과거로 채워지는 인생이라면 어떻겠습니까? 그런데 최 씨가 바로 그런 아픈 시간들을 보내게 됩니다.
최지애: 1998년 9월 두만강을 건넜어요. 그때는 엄마와 같이 탈북해서 돈을 벌기 위해서 중국에 있는 아는 이모가 송이버섯을 가지고 오면 10배 이상 이문을 남긴다는 말을 듣고 두만강을 건넜거든요. 이모가 나오기로 돼있었는데 안나와서 가지고 온 주소를 보고 찾아갔는데 거기 다른 브로커가 있었던 거예요. 그 사람을 따라서 엄마는 가정 보모로 가고 저는 잘 사는 집에 잠깐 맡겨두는 것으로 하고 헤어진 것이 엄마와는 마지막이었어요.
상상도 못했던 탈북자 꼬리표를 달고 이젠 엄마와 헤어져 낮선 땅에서 긴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2010년 6월 한국에 도착합니다.
최지애: 처음 3국을 통해 한국에 왔을 때는 혼자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막막했어요. 그러던 중에 국정원 조사 때 남한에 엄마가 와 있다는 소릴 듣고 어리둥절 하고 눈물밖에 안나는 거예요. 12년만에 엄마 소식을 들었다는 자체가 거짓말 같은 거예요. 오후 2시에 엄마하고 전화통화를 하는데 목소리를 듣는 순간 아무말도 못하고 울기만 했어요. 엄마가 거기서 건강을 잘 회복하고 나오라, 나와서 우리가 얘기 하자. 그 말만 하고 끊었어요. 국정원 조사 받고 하나원에서 나와서는 며칠을 울면서 해후 했어요. 그동안 힘들었던 얘기 엄마하고 며칠동안 얘기를 한거예요.
다시는 볼 수 없다고 생각한 엄마를 남한에 만나게 됩니다. 남한에서의 생활에 대한 기대와 설렘 그리고 두려움도 있었지만 12년만의 모녀 상봉이라는 기적 같은 일은 최 씨에겐 희망이었습니다.
최지애: 남쪽에서 여기 정착하려면 우선 자격증도 있어야 하고 돈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직장을 먼저 들어갔어요. 저녁에는 학원 다니고 낮에는 직장 다니고요. 학원 다니면서 운전면허를 우선 따고 직장 생활을 했어요. 식품회사에서 일하다 보니까 너무 힘들었어요. 우리하고 말하는 투가 틀리고 생각하는 것도 틀린 거예요.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이 사람은 내뜻과 맞지 않게 얘기 하는 거예요. 이북 사람이 성격이 좀 급해요. 욱하는 성격에 한 마디 하는 거예요. 그러면 나를 이상하게 보는 거죠. 그러면 또 난 이 사람이 탈북자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날 보나 이렇게 생각하는 거죠. 내 말투가 이상해서 날 차별하나?
똑 같은 말도 어 하고 아가 다르다고 흔히들 말합니다. 작은 어감의 차이가 상대를 화나게 만들 수도 있지만 반대로 기분 좋게 할 수도 있는데요. 그런 작은 차이들을 최 씨는 도대체 알 수 없었던 겁니다. 그래서 혼자 속상한 적도 많았다고 하는데요. 이런 문제는 최 씨가 유별나서가 아니라 보통 탈북자가 남한에 가면 경험하는 정착의 과정입니다. 최 씨는 일자리를 찾았고 집 가까운 거리에 있는 약국에서 일하게 됩니다.
최지애: 제가 여기서 자격증도 따고 인터넷 공부도 많이 했어요. 인터넷에 들어가보니까 우리동네 약국에서 직원을 구한다고 했더라고요. 그래서 입사지원을 했어요. 난 이북사람이다 받아만 주면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했더니 다음날부터 출근하세요 이러는 거예요. 훗날 약사님이 그러는데 제가 손이 야무져 보여서 자기가 뿝았데요. 실제 일해보니까 남한친구는 자기 일을 찾아서 할줄을 몰라요. 저는 찾아서 일하니까 약사님이 그게 맘에 든다고…
약국에서 2년동안 일합니다. 서른살에 남한생활을 시작한 최지애 씨.
기자: 그때 당시에 왜 대학을 안가시고 일부터 시작 하셨나요?
최지애: 북한에서 돈없이 너무 고생을 많이 해서 남한에 와서는 돈 걱정 안 하고 살고 싶어서 일부터 시작했어요.
기자: 대학공부은 남한에서 전혀 안하고요?
최지애: 네, 대학공부는 안하고 인터넷으로 공부하고 자격증 따고 그랬어요. 한국 싸이버진흥원에 신청해서 아동심리상담사, 미술심리상담사, 방과후 교사 자격증 등을 땄어요.
기자: 대학가서 공부하고자 하는 생각은 없었군요.
최지애: 그런 생각은 있었지만 내 나이도 있고 대학공부하는데 돈도 많이 들 것이고 엄마를 고생시키고 싶지 않았고요. 물론 내가 공부하겠다면 엄마가 도와주시겠지만 엄마 연세에서는 노후 준비도 해야 되잖아요. 그래서 내가 돈을 벌어야 겠다. 그 생각에 공부할 생각은 접었어요.
기자: 남한생활이 7년이 되는데요. 초기에는 힘들었겠는데 남한생활에 대한 소감은 어떤가요?
최지애: 지금은 남의 밑에서 일하는 것보다는 내 기술을 배워서 정착하고 싶다. 나의 자그마한 가게를 열어서 애 키우는 데 지장 없이 살고 싶다는 거죠. 취직을 하면 시간대에 맞춰서 일해야 하고 상사의 말을 들어야 하고 그 사람 눈밖에 나면 왕따가 되기 쉽고 그만두기 쉽잖아요. 그런 것을 생각하니까 내가 기술이 있어야 겠다. 그리고 많이 배우질 못했으니까 기술 한가지는 꼿 필요하다. 그런 생각이 드는거예요.
제2의 고향 오늘은 최지애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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