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사람이 길을 갈 때 목적지를 모르고 무작정 걸어야 한다면 몰려오는 피곤함을 견딜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정확히 가야할 곳을 알고 가는 사람은 아무리 먼 거리를 간다해도 시간과 체력을 분배하며 편안한 여행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우리의 인생도 비슷하지 않나 싶어서 장황스레 말을 해봤는데요. 오늘은 남한정착 15년이 되면 그때는 꼭 자신의 개인주택을 장만하겠다는 김태희 씨의 이야기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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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희: 제가 드라마를 보면서 상상했던 그런 세상은 아니다란 생각을 두 달 됐을 때 했어요.
김 씨는 지난 2008년 남한에 도착했습니다. 그때 나이가 48살 이었는데요. 중국에 있는 친척에게 도움을 받으로 갔다가 그곳에서 남한 드라마를 처음 접하고는 북한으로 돌아가 탈북을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정착 남한에 가보니 상상했던 화려한 드라마가 아닌 차가운 현실과 마주하게 된 겁니다.
김태희: 여기도 치열한 경쟁 속에서 열심히 일해야만 사는 구나 했는데 6개월이 되면서 생각이 바뀌었어요. 자격증도 있어야 겠다. 그냥 식당에서 일하는 것보다는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2009년에는 대학입학을 했습니다. 3학년까지 공부를 했는데 내가 나이가 많은데 사회복지를 공부해서 어디에 써먹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던차에 초등학교 교사연수를 한국교육개발원에서 했습니다. 이것은 북한에서 교사였던 사람만 할 수 있었습니다. 그후에 계약직 교사로 해서 2013년에 경남 창원에 왔습니다.
북한에서 음악교사였던 김 씨는 남한에 가서도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자격증을 받았고 당당히 교단에 설 수 있었죠.
김태희: 창원에 있는 초등학교 수업을 하는데 아코디언이 13대가 있었는데 누구도 어떻게 하는지 몰랐어요. 그것을 내가 학생에게 가르치면서 학생의 할아버지, 작은 아버지, 엄마 등 어른을 가르치면서 학원을 하게됐죠. 처음에는 참 힘들었지만 지금은 정말 제가 한국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면서 너무 좋습니다.
처음 단순 노동일을 하면서 생활에서 재미를 못 느꼈는데 자신의 전공인 음악교사일을 하게 되면 생활도 안정이 됐고 인생이 잘 닦인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처럼 막힘이 없었다는 겁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다보니 힘든줄 모르고 살 수 있었습니다.
창원에서 김태희 음악학원을 운영하면서 주중 하루는 지역사회 복지관에 나가 성인을 대상으로 악기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김태희: 복지관은 화와일 오후 5시부터 밤 9시까지 합니다. 두개반을 가르치는 데 복지관 하는 일하는 것이 너무 재밌습니다.
기자: 남한에서는 누가 악기를 다루고 싶어하고 연령대는 어떻게 됩니까?
김태희: 복지관에서 하는 기타는 30대와 40대이고 학원엔 초등학교부터 대학생 그리고 40대부터 60대까지 있습니다.
기자: 학원에서는 뭘 가르칩니까?
김태희: 제일 인원이 많은 것이 기타와 아코디온, 드럼, 피아노입니다. 처음 학원에 아코디온 13대 있고요. 피아노 2대 등 악기가 있는 상태에서 학원을 열었습니다. 방이 10개인데 각자가 시간대별로 와서 방에서 연습합니다. 내방에서는 학생을 가르치지만 각자 연습을 합니다. 하루종일 방마다에서3시간씩 하는 사람도 있고요. 항상 음악 소리가 납니다. 계속 연습을 하니까…
기자: 북한에서도 음악교사셨는데 남한에서 지금 학생을 가르치는 것과는 어떻게 다른가요?
김태희: 북한에서는 아무리 많은 학생을 가르쳐도 나라에서 받는 월급밖에는 없잖아요. 늘 모자라고 배고프고 힘들고 가정도 나에게 무거운 짐이었지만 학교생활도 짐이었던 것 같아요. 80년대는 사는 것이 괜찮았는데 고난의 행군 들어가면서는 참 어려웠거든요. 지금은 이 큰집에서 혼자 살면서 뭐가 부러운지 모르겠어요. 좋은 사람까지 있으면 참 더 좋겠지만 아직은…자유로운 속에서도 나의 일을 하느라고 항상 분주하죠. 일을 그만두면 여유롭게 여행도 다니고 편히 쉬면서 놀것 같아요. 편곡하고 책 쓰면서 놀 것 같아요.
아직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푹 빠져 사느라 일상에서 느끼는 소소한 행복은 잠시 뒤로 미루고 있습니다. 사는 것이 빠듯해서 돈을 벌기 위해 이런 것이 분명 아닌 겁니다.
김태희: 저는 제 삶이 너무 행복하고 좋아요. 자리메김을 잘했다고 생각해요. 어느 정도까지 일할 수 있을 때까지는 일을 하겠지만 70살이 되면 그 전에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될지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때는 많이 다니면서 제주도가 어떤지도 보고 싶고 강원도 맑은 계곡물에 발도 담구고 싶고 북한에서부터 들었던 춘향이 마을인 남원도 내차로 운전을 해서 남원도 가보고 할 것 같아요.
기자: 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못하고 있는 이유는 뭔가요?
김태희: 저는 다 편곡을 해서 수업합니다. 1대 1 수업을 하다보니까 모두 자기반에 필요한 곡이 있어요. 그런 곡의 제목을 가져오면 일요일에는 하루종일 편곡을 합니다. 힘들면 좀 누었다고 아니면 동네에서 15분 정도 산책하고요. 조금 걸어갔다 와서는 편곡하고 합니다. 일은 늘 있습니다. 다해놓고 여유 있을 때가 별로 없거든요. 또 하면 오늘은 몇 곡을 만들었다 하는 기쁨이 있고요. 평일에도 9시까지 일하고 보통 11시까지는 편곡을 하다가 잡니다. 너무 재밌어요. 젊어서 한국에 왔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끝도 없이 좋았을 겁니다.
평양에서 태어났고 아버지가 공군 조종사였기 때문에 먹고 사는 문제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됐습니다. 어릴 때 영양분을 충분히 섭취한 탓인지는 몰라도 어찌보면 강행군처럼 보이는 일상을 건강상 아무런 문제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조금 피곤하다 싶다가도 잠을 자고 나면 씻은듯 재충전이 된다고 하는데요. 안정된 남한정착에 아쉬움이 있다면 아직 혼자라는 겁니다. 김 씨가 생각하는 남성을 못 만난 것까요?
김태희: 그런 일은 아마 여러 번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요 제가 사귀고 싶었던 사람은 7년전에 만났던 사람밖에는 없었어요. 나는 그분이 좋았는데 그분은 나보다 17년 연하를 택하더라고요. 그 다음부터는 없었어요. 일찍이 혼자돼서 그런지 결혼은 하고 싶은데 상대를 못 만났어요.
기다리는 남성에 대한 김 씨의 생각과 미래에 대한 준비는 분명해 보입니다.
김태희: 그냥 저처럼 열심히 살고 성실하고 건강한 사람이 좋아요. 내가 눈이 높은 것도 아닌데… 좋은 사람이 있으면 진짜 오늘 저녁에 봐도 내일부터 친할 것 같아요.
기자: 계획이 있잖습니까? 어떠세요?
김태희: 저는 하나원 나올 때 5년 안에 무조건 대학공부를 하고 내 차를 살 것이다. 하나원에 있을 때 선생님이 10년 계획을 쓰라고 해서 그렇게 썼어요. 그리고 현실이 됐어요. 그리고 다음 내 영원한 직업을 가질 것이다 했는데 진짜 김태희 음악학원을 했어요. 10년 되면 내집을 장만할 것이다 했는데 그건 못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한국생활 15년이면 내집을 살것이다 계획하고 있어요. 15년 안에 서울에 작은 집이라도 사고 싶습니다.
제2의 고향 오늘은 남한에서 음악학원을 운영하는 김태희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