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외면하거나 포기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부모자식 간 천륜입니다. 아무리 처지가 힘들어도 가진 것을 모두 자식에게 주고픈 것이 부모의 마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자녀를 북한에 남겨둔 남한정착 탈북자는 자식 생각에 한시도 마음 편히 살 수가 없답니다. 오늘은 함경북도 온성 출신의 한호영(가명)씨의 이야기 전해드립니다.
한호영: 목표를 향하여 매순간 최선을 다하자. 남한에서 내 마음 속에 정했어요.
2012년부터 남한생활을 시작한 호영 씨는 오늘도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합니다. 늘 치열하게 전투적으로 살고 있는데요.
한호영: 내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 최선을 다한다. 경제활동을 하든 봉사를 하든 어떤 친구와 교재를 하든 내가 정말 최선을 다하면 결과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순간도 게을리 하지 말고 무엇을 하든 최선을 다하자.
열심히 사는 것이 자신만을 위한 것은 아닙니다. 주위에 도움을 필요하는 이웃을 찾아 함께 더불어 사는 일에도 앞장서고 있습니다.
한호영: 겨울에는 주로 김장 봉사 하고요. 이번에 설명절 맞아서 북향민들에게 떡국도 나눠주고요. 여기 탈북자가 300여명 넘게 있는데 이런 분들 다는 드리지 못하고 60여명 정도 어려우신분들이나 금방 정착하신분들 위주로 해서 나눠드리죠. 물론 떡국이나 계란을 가게에서 사먹을 수 있지만 우리가 나눠드리면 정을 느끼고 사랑을 느끼고 누군가 나에게 관심을 갖고 있구나 하는 것을 느끼시니까 다들 좋아하시더라고요.
한 씨가 사는 곳은 경기도 수원입니다. 이 지역에는 탈북민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신이 처음 지역사회에 정착했을 당시를 떠올리며 집을 방문해 위로해 주고 있답니다. 이런 한 씨가 올해는 좀 특별한 마음을 먹고 있는데요. 매년 반복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싶은 겁니다.
한호영: 저의 목표는 올해 경제적으로 자립하는 겁니다. 제가 혼자 회사생활을 해서 사는게 너무 힘들어요. 부부가 맞벌이 해도 한집에서 살면 나가는 세금은 혼자 사나 같이 사나 나가는 세금은 같거든요. 그런데 저는 내가 일을 안하면 수입이 없거든요. 혼자 벌어서 세금내고 저금해서 북한에 있는 아이들에게 조금 보내다 보니까 남는 것이 없어요. 그래서 항상 경제적으로 목말라 있어서 올해 목표는 경제적으로 완벽하게 일어나보자. 이런 목표를 가지고 있어요.
얼핏 여기까지 들어보면 한 씨의 남한생활이 무척이나 힘들구나 하고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한 씨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북한에서의 생활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경제생활을 누리고 있습니다.
한호영: 저는 회사생활을 열심히 해서 회장품 제조업체 이사입니다. 소기업이다 보니 직접 공장을 가지고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공장에 주문을 해서 생산해 판매를 해서 수입이 나면 그것으로 먹고 살죠. 예를 들어 북한에서는 아무리 일해도 쌀을 사려면 너무 비싸서 사먹지 못하잖아요. 그런데 여기서는 하루 벌어도 한 달 먹을 쌀 걱정은 없잖아요. 전체적으로 여기 온 탈북자들이 입는 것 먹는 것 걱정은 하나도 없죠.
기본적으로 아무리 돈을 많이 버는 사람도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을 못합니다. 더 벌고 싶은 것이죠. 부는 상대적인 것 같습니다. 못 버는 사람과 비교하면 부자지만 나보다 수입이 많은 사람을 보면 자신이 가난하다고 느껴집니다. 한 씨는 남한정부의 탈북자 지원정책이나 생활에는 만족하지만 가끔씩 자신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한호영: 그렇죠. 왜냐하면 한국에 가족을 떠나 나 혼자 왔으니까 항상 외로움이 있고 그리고 북한의 현실을 뻔히 알고 자식들에게 항상 도움을 줘야 하니까 항상 의무감이 있고 그리고 내가 벌어 보내는 돈 쓰는 돈 이렇게 정리를 해보면 혼자 능력이 힘에 부치죠. 내가 먹고 사는 문제는 완벽하게 해결이 됐지만 개인적으로는 항상 아쉽고 안타깝죠. 그리고 노후에 대해 아직 확실한 준비가 안돼있으니까 열심히 살고 매순간 최선을 다해 살지만 항상 머리속에는 근심이 있는 거죠.
사실 북한에서 의사였던 한 씨는 탈북하기 전까지 그리 힘든줄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살길이 힘들어 지고 탈북과 강제북송 후 보위원들의 감시가 심해지자 더 이상 고향에 살수가 없었던 겁니다. 그렇게 2008년 탈북이란 운명의 순간을 맞습니다.
한호영: 저는 정말 나라에서 부모님부터 시작해서 체계적으로 교육도 다 받고 가정도 화목하고 살았는데 1980년대 나라 경제가 나빠지면서 다니던 직장을 못하게 됐어요. 그래서 개인 장사를 했는데 경기가 회복되면 직장에 돌아가려고 했는데 초기에 장사가 잘돼서 직원도 두명을 두고 했는데 장사가 잘되니까 나라에서 차단을 시켜서 문을 닫았어요. 먹고 살기도 힘든데 나라에서 장사를 못하게 해서 중국에 가서 돈을 벌어서 돌아가자고 했고… 사연이 많죠. 다시 북송돼서 가서 고생 엄청 하고 …
남한에서 혼자 살지만 한 씨는 현재 두 집 살림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남쪽에 살면서 북한가족까지 챙기며 산다는 말입니다. 빈손으로 시작해 혼자 벌어 노후를 생각해 저축을 해야하지만 그렇다고 당장 먹을 끼니 걱정을 하는 자녀의 하소연을 외면할 수도 없는 문제죠.
한호영: 그러니까요. 그게 약간 불투명 하니까 마음을 힘들게 하는 것 같아요. 나는 노후를 어떻게 해야할까 이 생각이 많은 것 같아요.
기자: 북한의 가족이 방조해 달라는 전화가 1년이면 몇 번이나 옵니까?
한호영: 저는 약속을 했죠. 한 두 번 정도 전화를 해라 내가 전화 못하니까 해라 이랬어요.
해마다 다르지만 수입이 많으면 번만큼 보내고 적으면 적은데로 보냅니다. 많게는 500 만원 아무리 적어도 한 번에 200만원은 보낸다는 겁니다.
한호영: 엄마로서 뭔가 했다. 이것은 좋은데 모아놓으면 없어요.
기자: 진짜 힘이 빠지죠.
한호영: 통장에 돈이 하나도 없는 것을 보면 어깨 힘이 하나도 안들어와요.
어깨 힘이 쭉빠질 때 한 씨가 듣는 노래가 있는데요. 마이웨이라는 제목의 노래입니다.
윤태규 마이웨이: …. 누구나 한번쯤은 넘어질 수 있어 이제와 주저앉아 있을수는 없어 내가 가야하는 이 길에 지쳐 쓰러지는 날까지 일어나 한번 더 부딪혀 보는거야…
한호영: 사랑하는 우리 아들, 딸 엄마가 비록 떨어져 살지만 항상 너희 곁에 같이 있고 너희들을 엄마가 지켜주고 있으니까 당당하고 떳떳하고 항상 어디가서도 슬픈 모습 보이지 말고 힘내서 살길 바란다. 엄마도 너희들을 위해 더 열심히 살면 언젠가는 다시 만날 수 있는 있을 테니까 엄마 만날때까지 힘내고 파이팅, 사랑해!.
제2의 고향 오늘은 함경북도 온성 출신의 한호영(가명)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