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맺어 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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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가끔은 세월을 거꾸로 돌려서 시간을 벌 수 있다면 좀 더 나은 위치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곤 합니다. 현재 상황에 아쉬움이 남을 때 특히 그런데요. 오늘은 남한에서 결혼정보 회사를 운영하는 50대 초반의 김유정(가명)씨의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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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 그때 당시는 경제적인 어려움과 그 사회 자체가 장사를 하지 말라는 시스템이다 보니까 하지 말라는 장사를 해야 했었고 그게 불법이 된 거죠.

김씨는 지난 2006년 자연산 송이버섯을 중국에 내다 팔다가 문제가 돼서 도강을 합니다. 청진 출신의 김 씨는 탈북해 바로 남한행을 했는데요. 30대 후반에 남한에 도착했을 때는 쉬운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마치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가 한글을 배우듯 모든 것이 어색하기만 했습니다.

김유정: 말로 다 표현은 못 하겠지만 우선 말투가 교정이 안됐잖아요. 지금도 많이 서툴지만 5년까지는 너무 힘든 상황을 여러 가지 겪었고 그 후에는 뭔가 조금 보이기 시작했고 10년이 되니까 안정이 되는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나면서 주위의 것들이 익숙해 졌고 더 늦기 전에 뭔가 하려면 공부를 해야겠다고 결심 합니다. 그리고 남한생활 5년이 지나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공부하고 대학졸업 후에는 북한으로 치면 준박사 과정인 대학원까지 마치게 됩니다.

김유정: 저는 복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있었어요. 나중에 통일이 됐을 때 복지에 사각지대에 있는 그 사회에서 뭔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지 해서 사회복지 공부해서 졸업을 했어요. 그리고 결혼정보 회사를 운영하다 보니까 주먹구구식으로 할 수는 없잖아요. 대학원도 복지쪽을 하려고 했는데 경영 쪽에서 기회가 와서 석사는 경영학과를 졸업하게 된 거죠.

2018년 석사모를 쓰고 대학원을 졸업했을 때는 정말 자신이 자랑스러웠는데요.

김유정: 그 땅에서는 생각지도 못했던 거잖아요. 거기는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 이동의 자유가 없는데 비행기를 타고 원하는 곳을 어디든 갈 수 있다는 것이 저에게는 충격이었던 것 같아요. 저렇게 하고 싶다. 저렇게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데 우리는 어쩌다가 이렇게 됐을까 하는 생각을 저는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기자: 조금 더 빨리 남한에 왔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많으시군요?

김유정: 그렇죠. 당연히…봄에 보면 환한 불빛 아래서 청춘남녀들이 걸어다니고 또 찻집에서 차를 마시면서 대화를 주고 받고 하는 모습이 저에게는 저의 젊은 시절을 떠올리면서 슬프기도 하고 정말 어쩌다 이런 삶을 살게 됐나?

남한에서 공부만 한 것은 아니고 결혼정보회사 대표로 배우자를 찾는 사람들을 연결해 주는 중매 사업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결혼을 앞둔 청춘남녀가 유난히 눈이 띄게 되는데요. 이성이 만나서 자연스럽게 교재를 나누고 사랑을 꽃피워가는 모습이 가슴을 설레게 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그럴 때마다 자신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이 겹쳐지는 것은 막을 수가 없답니다.

김유정: 처음에는 그런 것을 행복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북에 남아 있는 가족도 있고 해서 행복을 못 느꼈는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시점에서 생각해 보니까 모든 것은 제 생각 하기 나름이다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마냥 계속해서 무겁게 살아가야 하는 이유는 못 느꼈던 같아요. 못 느꼈다기 보다 안 느끼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남한에 살면서 가끔 해외여행을 할 때면 비행기를 타게 되는데요. 물론 해외여행이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급하게 먼 길을 갈 때면 비행기를 타는데요. 그때마다 여자 승무원들 한참 넋을 놓고 바라보게 됩니다.

김유정: 여러 가지로 참 부럽고 후회되고 그 삶이 어떻게 되돌려 진다면 승무원이 되고 싶어요. 나도 남한사회에서 태어났고 자랐다면 나도 저런 일을 하면서…

한참 배울 나이를 지나 50가까운 나이에 석사를 끝낸 김 씨. 일하면서 대학원 공부를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닌데요. 지식을 많이 쌓고 학위를 받았다는 것보다 시작한 일을 무사히 마무리 지었다는 생각에 흐믓하기만 합니다.

김유정: 참 좋은 세상에 왔다. 남들은 교수를 한다고 할 나이에 졸업하는구나 했죠. 이 사회가 빠르면 30대 중반이면 박사까지 마치는 사람도 많잖아요. 내가 석사를 받고 나니까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이제 석사를 했으니까 박사까지 공부할 수 있으면 해서 통일이 됐을 때 가서 그 땅에서 뭔가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과 자신감…

남한생활 14년차. 결혼정보 회사는 벌써 10년정도 운영을 하다 보니 북한여성과 남한남성을 짝지어 주는 것에는 그냥 딱 봐도 어떤 사람을 누구에게 소개해주면 좋겠다는 느낌이 올 정도가 됐답니다.

김유정: 이 사업을 시작할 때는 마음이 아픈 상담도 많이 했었고요. 우리가 너무 오래 떨어져 있었다 보니까 여성분을 선택하는데 있어서 이방인이라는 감정을 가지고 만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말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최근에는 이만갑 등 탈북자가 나오는 프로그램을 통해 탈북자들이 어떤 사회에서 살았고 어떤 환경 속에서 고생을 하다 왔는지 알다 보니까 10명 중에 9명은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상담을 하게 되죠. 북한 여성을 선택하는데 있어서도 북한여성이 어떤 측면에서 강점이 있고 단점이 있구나 하는 것을 알고 상대하는 것을 보면 많이 변했구나 하는 것을 느끼죠.

이제는 얼핏 겉모습만 보면 탈북자인 것을 모를 정도가 됐는데요. 남한생활이 편해질수록 한편으로 조금 더 빨리 남한생활을 했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숨길 수가 없답니다.

김유정: 그것은 매일 같이 하죠. 나이가 조금만 젊었으면 새로운 것이 도전을 할 수 있을 텐데 5년 정도만 젊었으면 아니면 조금만 더 빨리 왔었으면 하는 생각을 매일 하는 것 같아요. 아쉬움이 많이 남죠.

기자: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왜 그런 생각을 하시는 거죠?

김유정: 사람이 나이가 50이 넘어가면 뭔가 자신감이 떨어진다고 봐야 할까요? 어떤 측면에서는 석사 학위를 받으면서 자신감이 많았는데 몸이 좀 아프다 보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좀더 하고 싶은데 마음뿐이죠. 그래서 매일 아쉬움이 남고 하는 것 같아요.

요즘은 본의 아니게 중매 사업이 주춤합니다. 그래서 여러모로 생각이 복잡한데요.

김유정: 직업병인 것 같아요. 코로나 때문에 재난이라면 재난인 상황에서 제가 만남의 자리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어요. 우리 남성회원과 여성회원이 빨리 만나면 더 좋은 인연들이 빨리 나올 수 있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니까 마음이 아프고 언제쯤 코로나가 정상화 될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고요. 가정적인 것은 아이가 고학년에 올라갔는데 나이에 맞게 행동하고 해야 하는데 집에서 수업을 받고 하니까 엄마 입장에서는 속상하고…

늦었다고 생각들 때가 결코 늦은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 마음 먹기에 달렸다고 말하는 김 씨. 코로나 19로 아들이 학교에 등교하지 못하고 집에서 온라인 수업을 받는 것이 안타깝고 사업도 진척이 없어 속상하지만 오늘도 새로운 내일을 맞이할 생각에 여러 가지를 구상 중이랍니다.

김유정: 저는 개인적으로 아이가 공부를 잘해서 바람직하게 커가는 것 하고 몸이 안 아프면 올해 박사과정에 도전해 보고 싶은 것이 있어요.

제 2의 고향 오늘은 청진 출신의 김유정(가명)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