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문을 열어라. 적응이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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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남한에 간 탈북자들은 정착초기에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경험합니다. 남한사람과 소통이 잘 안 되기 때문입니다. 북한에서 익숙했던 말과 몸에 베어버린 습관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익히는 것이 쉽지 않은데요. 어려움을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가 마음의 문을 열고 솔직해지는 것입니다. 오늘은 남한생활 4년차 함경북도 출신의 탈북여성 김성란(가명) 씨의 이야기 전해드립니다.

김성란: 저희는 577군부대 519연락소 남자들은 1과 우리는 2과 해서 초대소에서 훈련을 받았으니까…

김 씨가 15살에 군에 입대해 8년간 교육받은 것은 남한생활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남한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남한말을 배워서 남쪽에 침투하는 것이었죠. 특수부대에 있었던 만큼 대우도 좋았는데요. 제대를 하고 본 북한 현실은 너무도 가혹했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조차 해결할 수 없었으니까요. 김 씨는 2011년 탈북해 2년을 중국에 있다 자신이 원했던 한국행에 성공합니다. 남한에 가서는 일자리부터 찾습니다.

김성란: 처음에 구청에서 현대호텔에서 직원을 모집하니 가보라고 했습니다. 제가 인사과에 전화를 해서 언제 가겠다고 했어야 했는데 그냥 갔습니다. 구청에서 가라 해서 왔다고 했더니 연락을 하고 와야지 갑자기 이렇게 오시면 어떻게 해요. 이러는 겁니다. 며칠 후에 다시 부지배인 면접을 받았는데 다음날 오라 했서 가서 일했는데 진짜 거기에 있는 분들은 탈북자를 한 번도 만난적이 없는 분들이더라고요. 저는 출근시간 1시간 전에 나가서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몸은 비록 남한에 있지만 생각은 여전히 북한식이었고 말투 역시 쉽게 남한사람을 흉내내기 힘들었습니다. 이런 김씨가 직장내에서는 유별나게 보였을 수도 있겠는데요. 하지만 사소한 오해는 시간이 해결해 줬습니다.

김성란: 언니들이 3개월이 지나니까 하는 말이 부지배인이 면접을 봤는데 탈북자인데 엄청 쎄보이더라고 했다는 겁니다. 자기들도 북한에서 왔다고 해서 엄청 공격적일 것이다 생각을 했는데 보니까 정말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고 자기들도 안타까웠다 하는 겁니다. 그리고 가끔씩 휴식 시간에 탈북 이야기도 하고 하니까 다른 주방장님들과 얘기를 하면서 친해진 겁니다. 그런데 사고를 친겁니다.

직장에 갓 들어온 신입사원에게 앞으로의 각오를 물으면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는 답변이 있습니다. 바로 열심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란 말입니다. 관리자가 들었을 때 이것처럼 무서운 말이 없죠. 의욕에 차있어 듣기는 좋지만 뭘 해야 하는지 자신의 임무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무조건 열심히 하겠다는 말이 자칫 엉뚱한 사고를 칠수도 있으니 조심하세요 이렇게 들리기 때문이죠. 김 씨가 어떤 사고를 쳤냐구요?

김성란: 선배들이 문을 8시 조금 넘으면 문을 닫아서 저도 그랬는데 부지배인한테 딱 걸립겁니다. 원래는 8시 반에 닫거든요. 그래서 제가 정말 죄송합니다. 정착과정에 모든 것을 배우려고 낮은 자세로 일했는데 잘못했습니다. 그리고 이틀 쉬고 나왔는데 언니들이 뭐라고 하는 겁니다. 어떻게 했기에 부지배인이 돌아다니면서 그런 말을 하는가 하는 겁니다. 그말을 듣고 제가 부지배인을 찾아갔습니다. 반갑게 맞아주는데 제가 막 북한식으로 막 따졌습니다. 정말 열심히 했다 그리고 진짜 반성도 해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커피 타오라고 하면 타오고 나이가 나보다 어려도 시키는 일을 했다 내가 잘못했다고 머리 숙이고 사과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출근해보니 사람들이 말하는데 잘못된 것 아닌가 따졌더니 가만히 듣는 겁니다.

일하면서 소통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오해가 생겼습니다. 그런데 일단 마음의 문을 열어놓고 속에 담아둔 말을 심하다 싶을 정도로 하고 나니 맘이 후련했습니다. 물론 그 결과도 좋았죠.

김성란: 풀렸죠. 그 후부터 지배인님이 저를 보는 눈이 달라진 겁니다. 4년 전에 탈북자가 자기 회사에 와서 한 주도 못하고 나갔다는 겁니다. 그래서 회사에 탈북자 인식이 별로 안 좋다 이러는 겁니다 그런데 내가 두 번째로 와서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고 달라졌고 이젠 많은 사람들이 빨리 북한에서 자식도 데려오라고 응원하고 있다 이러더라고요.

지나고 보니 남들은 생각도 않고 있었는데 혼자 탈북자니까 무시하는 구나 하고 자격지심에 화를 낼때도 있었습니다. 그러고 나면 언제나 상처를 받는 것은 자신이었죠.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의 안정도 찾게 되고 사람사는 세상 어디나 같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김 씨가 직장에서 겪었던 예를 하나 더 들어보죠.

김성란: 푸드코트라고 1층에 있는데 거기서 계산원을 했습니다. 계선원을 하면서 안 좋았던 것이 한 번은 손님이 마스크를 쓰고 왔습니다. 음식 주문을 했는데 제가 못 알아들었습니다. 몇 번을 듣고도 못 알아들어서 손님 죄송합니다. 한 번 더 말씀해 주십시요 했더니 마스크를 벗더니 막 쌍말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부끄럽기도 하지만 고객님 제가 사실은 북한에서 와서 사투리를 잘 모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했더니 뒤에 서있던 손님들이 다 그 사람을 꾸찢는 겁니다. 이런데 와서 마스크 쓰고 말하면 누구든 다 못 알아듣지 하면서 저를 응원하는 겁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몇 달동안 와서 주문하면서 탈북자인 것을 몰랐네요. 그래서 저도 웃으면서도 눈물이 짠하더라고요.

남한생활이 이제 햇수로 4년차가 됩니다. 여러 가지 아직은 서툴고 미숙하지만 마음을 문을 열고 세상을 대할 때 어려움은 충분히 해쳐갈 수 있다는 자신감은 쌓았습니다.

김성란: 저는 행복했던 순간이란 것이 사실 평양에서 군복무 8년 했고 정찰국에 있는 사람과 정략결혼을 해서 닫힌구역에 살았습니다. 그리고 우리 신랑이 전역을 해서 연사의 자기 집으로 갔지만 그때부터는 완전 귀를 닫고 살은 것과 같죠. 연사가 시골이었으니까요. 그런데 남한에 와보니까 정말 꺼질줄 모르는 불빛, 교통카드 하나 가지고 어디든 갈 수 있고 모든 것이 좋았지만 내 스스로 열심히 노력 하면 뭔가 자격증도 취득할 수 있고 공부해서 자기 가치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이 가장 좋았습니다. 아는 것이 힘이다. 모르면 어디 가서도 자신감이 없고 자존감이 없고 당당할 수 없기 때문에 열심히 학원 다니면서 컴퓨터도 배우고 요리도 배우고 했습니다. 그것이 너무 좋더라고요. 북한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것 아닙니까.

북한에서 자녀를 데려와서 이제 마음이 한결 편합니다. 북한에서 누리지 못했던 자유를 아이들은 부족함 없이 누릴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아는 것이 힘이라고 그동안 모르고 지내면서도 당연히 여겼던 것들을 더 늦기 전에 알고자 애쓸 것이라 했습니다. 새롭게 꾸린 남한 가정에서 남편에겐 사랑스런 아내가 그리고 아이들에겐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서 말입니다.

김성란: 사실 40대 중반이 지나면 저희 탈북자 친구들의 인식이 제가 공부를 해야해 알아야 해 하면 무슨 이 나이에 책가방 메고 대학에 가나 이럽니다. 북한 사람은 가방 메고 학교 다니는 것을 공부한다고 생각하는데 여기 오니까 믹서기, 전기밥솥 이런 것을 북한에서는 다 만져보지 못했던 것 않습니까. 그것을 공부라고 생각 안하는 겁니다. 물론 내가 북한에서 남한에 왔을 때는 돈이 없었기 때문에 그리고 와서도 돈이 첫째다라고 생각했는데 지내고 보니까 먹고 살정도만 돈이 있으면 된다 이렇게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인성 인품이다란 것을 신랑과 많은 곳을 다니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내가 지금껏 잘못 생각했구나 하는 것을 알고는 올해 전문대에 입학을 한 거죠.

제2의 고향 오늘은 함경북도 출신의 김성란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