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살 수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북한에서 중고등학교 교사였고 남한에서도 그 꿈을 이어가는 여성이 있습니다. 오늘은 남한생활 1년차 김지은 씨의 이야기 전해드립니다.
김지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즐거움을 찾는 것이 멋진 인생 행복한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양강도가 고향인 김 씨가 고향을 떠난 것은 지난 2008년입니다. 그리고 중국을 거쳐 남한에 살고 있는데요. 그는 살면서 아이들을 가르쳤던 교사로서의 인생이 제일 행복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남한에서도 교사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얼마전에는 남한에서 지역 일꾼을 뽑는 선거에도 참여했습니다.
김지은: 저 오늘 도장을 5개 찍고 왔습니다. 북한에선 다 정해진 대상을 놓고 그냥 내가 반대하는 입장이어도 그걸 표현하지 않고 다 찬성을 해주는 그런 투표였는데 여기는 내가 내 의지대로 반대 투표를 할수도 있고 찬성하는 대상을 내가 선택해서 할 수 있다는 그런 점에서 달랐습니다.
지난 6월 13일 남한에서 지방선거가 있었던 날 기자와 전화통화를 했는데요. 김 씨는 시도 교육감, 도시자, 구,시.군의 장을 뽑는 선거에서 자신이 원하는 인물에게 각각 투표를 하고 왔다고 말하는 겁니다. 한자리를 놓고 각정당의 후보들이 선거유세를 하기 때문에 선거공약을 잘 살펴본 후에 정해진 임기 동안 일을 잘할 것 같은 사람에게 투표를 하는 거죠. 김 씨는 출퇴근 시간에 거리유세를 하는 정치인들의 공약들을 보면서 자신의 마음을 정했답니다.
김지은: 먼 거리를 출퇴근하면서 보면 6월 1일부터 후보들이 길에 나와서 했는데 그런 것을 보면서 여자분들이 많이 출마를 했더라고요. 여자들이 이런 정치에 나와서 뭔가를 한다는 것을 보면 남녀차별을 두지 않고 나라를 위해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좋은 것 같아요.
기자: 최근 취업을 했는데 본인이 많이 달라진 것을 느끼십니까?
김지은: 직장을 잡기 전에는 그냥 공부를 하면서 자격증을 땄는데 내가 컴퓨터 시험을 치러 갔는데 거기서 엄청난 충격을 받았어요. 9살 된 아이가 시험을 치러 온 거예요. 저 아이가 벌써 저 나이에 시험을 치러 왔는데 내가 지금 이것을 하고 있으니 얼마나 뒤떨어진 세계에서 살아왔나 지금 내가 이것을 해서 뭘 할 수 있을까? 정말 앞이 안보이는 느낌이었어요. 그런데 그동안 쉬지 않고 시험을 치고 면접 보고 해서 취직이 되고나니까 너무 기뻤어요.
김 씨는 남한정착 1년만에 자신이 원했던 교사직에 채용이 됐습니다. 보통은 시간제 일을 하면서 우선 생활을 돌보고 학원이나 학교를 다니는 데요. 김 씬 그냥 공부만 했습니다. 먹고 사는 것이 조금은 여유가 없더라도 다른 데 시간을 쓰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김지은: 그래도 한국에 와서는 한 달 기초생계비 지원을 받지만 중국에서는 뭐 한푼 안 받고도 살았다. 그래서 이 땅에 와서는 돈에 쫒기는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즐거움을 찾으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행복을 찾는 인생을 살려고 한달 주는 생계비를 쪼개쓰면서 공부한 것이라고 했거든요.
기자: 정부 지원으로 1년을 살았다는 얘기네요?
김지은: 솔직히 말하면 생활이 안되죠. 옷도 사입고 뭔가 하려면 힘든데 전 중국에서 입던 옷 신발 다 가져왔거든요. 한국에 와서는 산게 없어요. 취직을 하고도 옷을 안사고 지내요. 남들처럼 다 쓰고 살려면 안되죠.
기자: 생활비 지원 받은 것으로 아파트 관리비 내고 공과금 내고 그래서 생활이 가능 했던 것이군요.
북한에서 중고등학교 교사였던 경력이 이번에 통일전담교육사를 뽑는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현재 김 씨가 하는 일은 탈북민 가정 학생의 진로지도 입니다. 그리고 탈북민 가정에 정부가 하고 있는 지원정책 등을 설명하고 안내하는 일입니다. 이제 김 씨는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게 됐으니 차근차근 경력을 쌓는 일만 남았습니다.
김지은: 취직해서 5월에 첫 월급을 탔는데 그러니까 학교 선생님들이 첫 월급을 타면 뭔가 사야한다고 농담을 하셔요. 나도 생각이 많았어요. 그때 드는 생각이 처음 중국에 갔을 때 저축하느라고 200위안을 가지고 한달을 생활했거든요. 회사 사정이 어려우면 몇 달씩 월급을 밀려 줬거든요. 그 생각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아직은 남들처럼 펑펑 쓰면 안되겠다 생각했어요. 또 방학이 다가오니까 선생님들이 어디 놀러 안가는가 해외여행 안가는지 물어봐요. 그래서 내가 방학 때 공부도 더 하고 대학원 준비도 하려고 한다고 여행은 내가 좀 더 여유가 있을 때 갈 것이라고 얘기 했습니다.
기자: 두번째 월급을 타면 뭘 하시겠습니까.
김지은: 두 번째 월급을 타면 제가 한국에 와서 진짜 고맙게 생각하는 어르신이 한 분 있는데 그분에게 뭔가 선물을 하려고 해요.
지금은 집과 일터가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매일 아침 5시 반에 일어나 출근하는데요. 직장인이 된 후에는 의미없이 바라보던 세상도 달라보였답니다.
김지은: 새벽 시간에 출근하면서 그 시간에 출근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을 줄 몰랐는데 다 어르신들인 거예요. 솔직히 저는 먼 곳으로 출근 하면서 좀 힘드네 이렇게 생각했는데 그분들을 보면서 매일 일찍 일어나서 장으로 가는 분, 남새를 팔러 가는 분들을 보면서 내가 남한생활을 어떻게 해야 할까 다시 생각하는 변화도 경험하고 있어요.
김 씨가 좀 이르다 싶은 시각에 집을 떠나 일터로 가는 이유가 있습니다. 때로는 잠이 좀 부족하다 싶은 때도 있는데요. 그럴 때면 차안에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긴 답니다. 몸은 좀 피곤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기 때문에 마음은 새털처럼 가볍습니다.
김지은: 북한에 있을 때 대학 졸업하고 배치 받은 학교가 걸어서 왕복 4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속으로 그랬어요. 처음에 기차 타고 버스 타고 5시간 출퇴근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북한에서는 걸어서 4시간을 다녔는데 이것은 아무것도 아니야 행복한 거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북한 고향을 떠나 중국에서의 생활 그리고 이제 또 다른 남한에서의 생활이 낯설고 어설프기만 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의 순진한 눈을 보면서 좀 더 배우고 알아서 좋은 교사가 돼야겠다는 생각을 한답니다. 그것이 자신이 원하는 인생이니까요.
김지은: 저는 한국으로 오면서 중국에서 살았던 9년 세월을 다시 한 번 돌이켜 보고 느낀 것이 있었어요. 그래도 북한에서 교사를 하면서 살았던 기억이 제일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있더라고요. 그래서 한국에 와서 보람있었던 그 일을 하기 위해 노력하려고 합니다.
제2의 고향 오늘은 탈북민 교사 김지은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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