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받는 당당 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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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남한에 간 탈북자는 대학공부를 하거나 또는 생활전선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는 등 자신이 원하는 생활을 하게 됩니다. 누가 무엇을 하라고 지시하거나 강요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해 하게 되는데요. 오늘은 북한식으로 표현하면 준박사 즉 대학원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는 함경북도 무산 출신의 김은서(가명)씨의 이야기 전해드립니다.

김은서: 나는 뭔가 그래도 욕망이 있고 욕심이 있고 뭔가 남다른 삶을 살고 싶은 마음이 강한 사람이에요.

탈북자이기에 빈손으로 시작한 남한생활이었지만 김 씨는 늘 현재생활에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미래 즉 내일을 준비하면서 애썼습니다. 이제는 세월이 꽤 흘렀지만 그래도 잊을 수 없는 것은 고향을 떠났던 그해 입니다.

김은서: 1998년 그때는 고난의 행군 시기었고 그때는 솔직히 탈북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나온 것은 아니었어요. 브로커분이 중국에 가서 2-3개월만 돈 벌어서 오면 괜찮을 것이다 해서 나왔는데 나오고 나서 그 다음날로 저는 북한에 가고 싶지 않더라고요. 중국이 저에게는 천국이었어요. 이런 세상이 있었구나. 중국에 나오기 전까지는 돈벌어서 집에 가야지 북한에 가족이 다 있으니까 돈만 벌어서 가야지 했는데 나오고 난 다음날 그런 세상이 있는지 진짜 저는 몰랐어요.

고등중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던 20살 때 벌어진 일입니다. 집에서 키우는 가축도 매끼 잘 먹는 것을 보고는 이렇게 풍요로운 세상이 있나 하고 기겁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중국에서 살다가 한국행을 했는데요.

김은서: 지금 한국 생활이 13년이 됐습니다. 나름데로 한국에 대해 잘 안다고 할 수도 있고 모른다고 볼 수도 있는데 솔직히 작년까지도 여기 생활에 내가 치열하게 산다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그런데 요즘 우리가 치열하게 살고 있구나 특히 탈북자가 여기서 산다는 것은 어찌보면 영웅같은 삶이기도 하고 대단하다.

기자: 이렇게 갑자기 변한 계기는 뭔가요?

김은서: 어떤 기관에서 일을 하게됐는데 조직생활이나 사회생활을 잘 모르는 상황에서 입사해 일을 하는데 내가 몰랐던 점을 보고 느끼게 된거예요. 이런 사회구조 속에서 우리 북한 사람들이 와서 말도 다르고 생각하는 것도 다르고 한데 열심히 살고 있잖아요. 이런 생각을 하니까 내 생활과 연결이 되면서 우리 북한 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사는 것은 참 대단한 것이구나. 이렇게 힘든 삶을 묵묵히 잘 견뎌내고 있구나. 끊임없이 이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에 맞춰가면서 사는 것이 대단한 것 같아요.

지금은 안정된 직장생활을 하고 있지만 오늘이 있기까지 김 씨는 많은 노력을 했고 스스로 자신이 대견하다는 말을 할 정도입니다.

김은서: 저는 한국에 왔던 것을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저는 해마다 한국 사람에 대해 깜짝 놀란 적이 많거든요. 매일 매일은 아니더라고 한국 사람들은 우리가 순간 판단하기 어려운 배울점이 많은데…

지금 모습과 달리 초기 정착 때에는 감사한 마음보다는 불만이 컸습니다.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터질 것같이 신경이 예민했고 경쟁에서 지지 않기 위해 심하게 도전적인 모습이었던 거죠. 그것이 어떤 상황에서 준비된 모습이었다면 좋겠지만 평소 그런 모습으로 남에게 비춰지고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김은서: 솔직히 저는 처음에는 몰랐어요. 내가 그렇게 애쓰고 노력하고 있는지 몰랐는데 요즘은 좀 느끼는 편이예요. 얼마전에 다른 분들하고 얘기를 하는데 내가 고학력을 가지고 나니까 여기 중산층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이해를 하는 단계가 된 것같거든요. 예전에는 왜 그렇게 말하지 하고 이해를 못했는데 지금은 왜 이사람들이 이렇게 말하고 이렇게 생각하는구나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됐거든요.

남한의 젊은이들은 20대 초에 대학공부를 하지만 김 씨가 대학에 입학한 것은 30대 초였습니다. 남한학생보다 10년은 늦은 나이에 대학을 다닌 겁니다. 학부에서는 중국어를 전공했습니다. 그리고 졸업하고는 바로 배운 것을 써먹을 수 있는 일을 하게 됩니다. 김 씨는 남한생활을 스스로 참 치열하게 살았다고 고백했는데요.

김은서: 제가 관광통역안내사 자격증을 따게 됐고 사회복지사 자격증 그리고 컴퓨터 관련해서 또 상담심리, 한국어 문예교육사 등등 굉장히 많은 거 같아요. 솔직히 얼마전에 이력서를 넣었는데 그때 놀랐어요. 내가 10년전에 이력서를 낼 때는 한줄도 적을 것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10년 지나고 나니까 어떤 것은 이제 필요없어 적지말자. 자격증 원본을 복사 하려고 해도 꽤 많은 거예요. 쓸데없이 정말 열심히 했구나 그런 생각도 했고

대학에서 전공한 중국어를 살려 중국 관광객을 안내하는 통역안내사 일을 합니다. 졸업과 함께 취업을 한 셈이니 경제생활은 별 문제가 없었죠. 매일 바쁘게 생활하다보니 특별히 어떤 일에 대해 고민할 필요도 없었고요.

김은서: 대단하구나 이사람은 어떻게 저렇게 했을까 나는 어떻게 하면 저렇게 할 수 있을까 하고 저희가 내세울 것도 없고 아는 것도 없고 하지만 지금은 일반 한국분들하고 비교해봐도 저는 고학력이고 지금 일도 처음 하는 일이지만 해결하는 능력이 옆사람들도 인정을 해주거든요. 내가 스스로 생각을 해도 그동안 헛살지 않았구나 하고 자존감이 강해졌어요. 예전에는 많이 불안하고 떨리는 시선이었다면 지금은 어떤 것에도 흔들림이 없는 사람이 된 것 같아요.

졸업과 함께 시작한 통역 안내일. 한 3년을 일하다보니 어느날 내가 하는 일이 과연 진정 내가 원하던 일인하고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매번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많은 곳을 다니고 또 일을 통해 뭔가 배우는 것은 좋았지만 마음이 허전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또 새로운 것에 도전 합니다.

김은서: 인생의 전환점은 대학원을 가는 것이었어요. 4년 대학 때는 내가 젊은 나이에 공부를 한 것도 아니고 대학원은 40대에 가야 하는데 내가 과연 해야 하나 생각을 했죠. 그런데 대학원에서 인간에 대한 가치관 신념에 대해 공부를 하고 성장을 이뤘죠. 대학원 동기들이 보통 중소기업 사장 부장급이었어요. 대학원가기 전까지만 해도 탈북자로 항상 기가 죽어있었어요. 사람들이 바라보는 시선을 의식했었죠. 내 자신 피해의식이 많았었어요. 그런데 동기분들이 나를 이끌어 준거예요. 대학원2년동안 내가 많이 성장을 했죠.

준박사 과정 즉 석사과정은 경영대학원에 갑니다. 조금 더 높은 차원의 학문을 접하고 경제를 움직이는 실무자들을 만나고 대화를 나누다 보니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은 넓어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런 배움을 통해 내가 일하는 직장동료를 대한 답니다.

김은서: 저는 사람이 살면서 인정을 받으면서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봐요. 인정을 받기 위해 지금까지 그렇게 열심히 살아오지 않았나. 시간이 흐르고 나니까 뿌듯하고 행복해요. 나도 점점 한국 국민이 되어가고 있구나 이 사회의 당당한 일원이 되어가고 있구나 하는 것이 날마다 커지는 것이 보여요.

제2의 고향 오늘은 남한생활 10년을 훌쩍 넘긴 직장인 김은서(가명) 씨의 이야기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