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어릴 때 나는 커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됩니다. 그런데 커가면서 그런 꿈이 있었다는 것조차 잊고 사는 경우가 있는데요. 오늘 소개할 탈북여성은 남한에 가서 어릴적 꿈인 교수가 된 분입니다. 남한생활 17년차 사회복지학 박사 김정원 씨의 이야기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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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원: 정신 건강론이라고 사회복지학 3학점짜리를 가르치고 있어요.
올 봄학기부터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김 씨는 자신이 자랑스럽기만 합니다.
김정원: 아무래도 제가 남한에서 처음부터 살지 않고 북한에서 고등교육을 받고 한국에 왔잖아요. 그런데 그 속에서 제가 박사학위까지 받았다는 것은 일반인들보다는 조금 더 감개무량하지 않았을까? 남한에 탈북자가 3만 5천명 정도 사는데 그 중에서 제가 열심히 노력해서 사회복지학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사회복지 차원에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그런 쪽으로 제가 학위를 받았다는 것이 자랑스럽죠.

기자: 박사 학위 수여식 때 많이 울었겠어요.
김정원: 눈물 나죠. 논문 쓰는 데서 지도교수님들도 고생을 하신 것이 논문 쓰는 것을 제가 한국에서 나서 자랐으면 경험도 많을 텐데 저는 그게 아니다 보니 글 쓰는데도 북한 말투가 나오고 논문의 문맥이 매끄럽지 못하고 해서 다른 분들과는 차이가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좋은 결과로 나타나니까 눈물 나오죠. 눈물과 함께 심정이 소리를 지르고 싶고 그런 기쁨도 같이 있었고요
대학원을 졸업하고 박사학위를 받는데 다시 4년이 걸렸습니다. 지난 2014년 기자와 전화통화를 했을 때 자신의 꿈을 밝힌 적이 있는데요. 그 당시 방송 잠시 들어보시죠.
김정원: 지금 하는 일은 상담일이지만 앞으로 꿈은 교수가 되는 것이 꿈이에요. 통일이 되면 교수로서 고향에 가서 교육하는 것이 꿈이라서 그쪽으로 학교를 다니고 있어요.
지난해 박사학위를 받았고 논문의 주제는 탈북자의 남한정착에 관한 내용입니다. 제목은 ‘북한이탈주민의 진로신념이 한국 사회 정착에 미치는 영향’입니다. 이런 논문이 나온 것은 8년동안 탈북자들과 5천 여건의 남한적응에 관한 상담을 한 결과입니다.
김정원: 저는 탈북자가 남한사회에 정착할 때 제일 어려움을 겪는 것이 진로라고 생각했거든요. 저도 상담사로 일하면서 탈북자가 진로를 선택하는데 있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많이 봐왔기 때문에 탈북자의 진로 신념이 사회 정착하는데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것에 대해 연구했고요. 우리 탈북자를 보면 자기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어요. 설문조사를 해보면 내가 북한 사람이라고 해야 하는지 아니면 한국에 왔으니까 남한 사람이라고 해야 하는지 아니면 북에서 온 남한사람이다 라고 말해야 하는지 자기 정체성에 대해 혼란을 많이 겪고 있어요. 그런 것들이 진로 신념과 한국에 정착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 했어요.
함흥 출신의 김정원 씨는 고난의 행군 시기인 1997년 중국에 있는 고모에게 경제적으로 도움을 받기 위해 갔다가 그곳에 눌러앉게 됐고 2003년 남한에 입국합니다. 김 씨가 남한생활을 시작했을 당시엔 탈북자가 대거 입국할 무렵으로 지금처럼 체계적으로 사회정착을 돕는 기관이나 또는 민간단체 구성이 안됐을 때입니다. 그래서 자본주의 사회에 대해 모르는 김 씨는 정말 처음부터 하나하나 배워나가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고 회상합니다.
김정원: 네 면이 벽만 있는 집에 들어와서 먹을 것을 사려면 슈퍼에 가야 한다는 것 자체를 몰랐어요. 그리고 먹고 살려면 일자리를 찾아야 하고 이런 것들을 인터넷으로 알아봐야 한다는 것은 하나원에서 배워서 알았지만 컴퓨터를 어디 가서 사야 하는지도 몰랐고 해서 처음부터 힘들었죠. 삼겹살 집에 가서 3개월 알바도 했는데 제 말투가 이상하다고 손님으로 온 젊은 친구들이 간첩이라고 수근 거리서 상처도 받고 또 섬유공장 염색하는 데서도 1년 정도 일했는데 같이 일하시는 분이 저한테 다정한체 하니까 그것을 나를 보고 업신여겨서 그런다고 막 속상해 하고 정말 철없던 기간이었죠.
낯선 곳에 뿌릴 내리고 정착한다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자격지심에 남이 조금만 뭐라고 해도 민감하게 반응 하고 했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마음이 단단해졌다고 하는데요. 현재는 오래 일하던 탈북자 상담사 일을 그만두고 대학 교수로 활동하며 사단법인 ‘남북하나개발원’ 상임이사를 겸하고 있습니다.
김정원: 통일이 왔을 때 떳떳하게 고향에 가야 하니까 탈북민들이 여기서 겪었던 아니면 했었던 일을 가지고 가면 고향에 가서 도움을 줄 수도 있고 그래서 고향 개발을 최종목표로 하는데 이런 것을 대비해서 탈북자 전문가 양성과 탈북자들이 제일 힘들어하는 건강문제에 관한 것을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기자: 어느 대학에서 강의를 하시나요?
김정원: 사회복지학 박사 학위를 받고는 부천대학에서 지난 학기부터 강의를 하고 있어요.
기자: 그럼 이제 꿈을 이루신 거네요?
김정원: 아직까지 완전한 꿈을 이뤘다고는 보기 힘들고요. 왜냐하면 정교수가 꿈이니까요 하지만 정교수로 가는 첫걸음을 내디뎠다고 생각해요.
김정원 씨의 북한에서의 직업은 무엇일까 그리고 북한에서도 대학을 다녔을까?
김정원: 저는 북한에서는 노동자였고 대학도 북한에서는 못 갔어요. 한국에 와보니까 탈북자들이 대학졸업생이 많은데 저는 대학을 못 갔어요. 한국에 와서 대학교부터 시작한 거죠.
30대 중반에 남한에 도착해 대학 공부를 시작했던 김정원 씨.
김정원: 학교만 다닌 것은 아니고 일하면서 공부했어요. 북한에 가족이 있어서 돈을 좀 보내줘야 하니까 상담사 일을 하면서 저녁이나 주말에 대학원도 다닌 거죠.
기자: 일하면서 다니셨는데 전공은 뭐였나요?
김정원: 대학은 사회복지 전공하고 상담을 복수전공 했어요.
기자: 그러니까 일하면서도 계속 공부를 하신거네요?
김정원: 이번에 신학 대학원도 나왔잖아요.
김 씨가 남한에서 얻은 학력은 대학 학사, 대학원 석사 2개 그리고 박사학위 입니다. 참 학문에 대한 열정이 남달라 보이는데요.
김정원: 친구들이 공부하는 것이 재미있냐고 하는데 저는 공부하는 게 재미있다기 보다 즐거워요. 학생들하고 같이 11시까지 공부하고 집에 오면 자정이고 1시쯤 자서 아침에 출근 하려면 일찍 일어나야 하고 했는데 힘든 줄 몰랐어요. 그냥 즐거웠어요. 지금도 한 과목만 맡아서 학생을 가르치고 있는데 일단 교수라는 꿈을 이뤄서 행복하고……
남한에 가서 세운 10년전 꿈을 이뤘고 이제 또 다시 앞으로 10년을 설계하고 있는 김정원 씨는 새로운 학문에 대한 연구에 오늘도 열정을 불사르고 있습니다.
김정원: 우리나라에 신학대학교들을 보면 사회복지 신학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올해 사회복지 신학을 연구해서 이것을 교재로 만들어서 사회복지 신학론을 제가 개척해 보려고요. 그리고 10년 후에는 학자로서 또 신학이나 사회복지 그리고 한반도 교육 이런 쪽에 꼭 필요한 학자가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제2의 고향 오늘은 남한에 가서 교수가 된 김정원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