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매일 자고 일어나면 똑 같은 일상이고 어제와 다른 것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이 된다면 뭔가 변화가 있어야 할 겁니다. 그런 차원에서 도전하는 인생,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사람을 소개하려고 하는데요. 오늘은 함경남도 함흥 출신으로 10년만에 헤어진 동생을 만날 수 있었던 홍은혜 씨의 이야기입니다.
홍은혜: 사람이 꿈이 있으면 그 목표가 이뤄지더라고요. 제가 꿈을 꾼데로 그것이 지금 이뤄지고 있어요.
2003년 탈북해 중국을 거져 2006년부터 남한생활을 한 홍 씨는 짧은 기간에 정착에 성공하고 지금은 음식가게 사장이 됐습니다. 탈북한다는 생각보다는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집을 떠났습니다.
홍은혜: 탈북동기는 북한에서 장사를 했습니다. 그러다가 여기로 말하면 사기를 당해 부도가 났어요. 아버지가 중국 문화대혁명 때 북한에 나오셔서 엄마를 만나 결혼한 분이거든요. 아빠의 큰 누나는 중국에 살았는데 그 고모님에게 방조를 받으려고 갔다가 제가 한국행을 했습니다.
두만강을 건넜습니다. 중국 땅을 밟았을 때는 살았다는 안도의 한숨도 나왔지만 뜻밖의 사람을 만나 당황스럽기도 했답니다.
홍은혜: 중국에 건너올 때 연결하고 건넌 것이 아니고 무작정 고모님 도움을 받고 싶어서 건넜는데 국경 연선에서 탈북자라는 것을 알아보고 브로커가 따라오더라고요. 제가 그 사람에게 주소하고 연락처를 주면서 고모님을 찾아달라고 했는데 찾아주지 않고 저를 시골로 팔아먹었어요.
최대의 고비와 절망을 견디고 나면 새로운 기회가 찾아오는가 봅니다. 운명의 장난이랄까요? 중국친척 도움을 받으러 갔다가 졸지에 생각지도 않던 결혼을 하게 됐습니다. 북한에서처럼 먹는 걱정만 덜었다 뿐이지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납니다.
홍은혜: 중국에서 남편이 사고로 사망했어요. 사고 당시 한 달전에 제가 출산을 했는데 그 전에는 계속 울고 살았어요. 중국에 고모님이 있는데 못찾고 있다는 억울함 그리고 고향 부모님에게도 돈을 가지고 가고 싶은데 못가고 잡혀 있는 상황 때문에 울고 있었는데 출산을 하고 나니까 남편이 중국에 친척이 있다는데 한 번 찾아보자 하고 말도 없이 남편이 찾아서 고모하고 연락을 하게됐어요. 알고 보니 이미 동생들이 한국에 왔었어요. 저는 모르고 있었는데 고모와 전화를 통해서 알게됐죠. 남편이 죽고는 동생들이 찾아와서 한국의 동생들이 저를 데리러 왔죠.
탈북의 이유가 됐던 고모님도 만나고 고등학교 졸업하고는 고모님 찾아 중국 갔던 남동생 그리고 집을 떠나 소식이 끊긴 형을 찾겠다고 뒤따라 집을 나갔던 막내동생을 모두 만나게 됐습니다. 정말 그동안 고생하며 목숨을 이어왔던 세월을 동생들과 상봉하고는 모두 보상 받는 심정이었습니다.
홍은혜: 10년 가까이 동생들과 헤어져 있었어요. 연락을 주고받을 수 없었어요. 중국에 고모님께 편지를 보내도 동생들이 잘있다는 글을 못쓰는 거예요. 보위부에서 조사를 하니까 말을 못했던 거예요. 그래서 간단하게 한마디로 조카들은 잘있어 그랬어요. 내가 사촌들을 보지도 못했는데 조카들이 잘있어, 할머니께 전달해 그래서 이말은 동생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생각했죠. 내가 중국에 와서 찾으니까 동생들이 한국에 간 것을 알게됐죠. 그전에는 살아있는지 조차 몰랐어요.
동생은 고난의 행군이 들어서기 전에 집을 떠났고 황 씨는 길거리에 굶어죽은 사람들이 보일 때 건너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제3국을 거쳐 2006년 1월 한국에 입국했던 순간을 이렇게 기억합니다.
홍은혜: 국정원 조사에서 이미 알았어요. 먼저 동생들이 와있으니까 제가 조서를 쓸 때 태어난 곳부터 시작해서 내가 살아온 이력을 다 쓰거든요. 부모 형제 이름을 다 쓰다보니까 여기에 동생이 있다 이렇게 해서 조사과정이 좀 빨랐던 것 같아요.
기자: 동생들은 언제 만났습니까?
홍은혜: 국정원에 있을 때 20일 지나서 동생과 만나게 해주시더라고요.
10년이 지난 세월 남동생들은 성인이 돼있었고 보기에도 그 모습니 좋았습니다.
홍은혜: 큰 동생은 졸업을 했어도 키도 안컸었는데 너무 키가 크고 몰라보게 달라졌고 막내는 애기라고 생각했는데 결혼해 애 아빠가 돼서 왔고 10년이란 그 시간동안 너무 놀라운 변화가 생겨서… 콧털도 생기고 해서 깜짝 놀랐는데 그런데 보면 동생이 맞고 해서 그냥 붙잡고 펑펑 울기만 했죠.
기자: 모습이 많이 좋아졌던가요?
홍은혜: 북한에서 올 때는 영양실조 상태였는데 한국에 와서 국정원에서 만나니까 살도 찌고 키고 크고 완전히 딴 사람이 돼서 왔더라고요.
새롭게 펼쳐진 제2의 인생, 이제 남한에서 어떻게 살아갈까 고민하게 됐는데요.
홍은혜: 정착금은 분할해서 줬고 북한에서부터 내 노력으로 살아야 된다는 정신으로 살아서 남한에 와서도 도움 받겠다는 생각보다는 내 스스로 자립이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무조건 돈 벌자고 죽도록 일만 했던 것같아요. 한국에 와서는 대학에 가려고 입학원서를 내서 합격됐어요. 그런데 그중간에 학원에 다니면서 직장을 다녔죠. 하나원 나와서 3일만에 일을 했는데 대학에는 합격했지만 나중에 다녀도 된다고 해서 안갔어요. 그런데 그어간에 결혼을 해서 대학을 포기하고 그냥 학원만 다니면서 자격증 따서 장사할 준비를 많이 했죠.
황 씨는 꿈을 가지게 됐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미래를 설계하고 목표를 정했습니다. 원하는 목표가 생긴만큼 그에게는 앞만보고 신나게 달리는 일만 남았던 거죠.
홍은혜: 남의 밑에서 일하는데 사실 언어도 교정이 안되다 보니까 지금도 사투리를 좀 쓰는데 그당시에는 더 안됐죠. 그러다 보니까 사람들이 보는 시선도 부담스러웠고 사장님도 북한사람이라 월급에서도 조금 차별을 주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서 나는 무조건 장사를 해야겠다 생각했죠. 식당을 차려서 운영하는 사장님들을 보면서 나도 언젠가는 사업을 할 것이다 하는 각오로 목표를 세워 열심히 돈을 모았어요. 2년을 모았는데 또 결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한국 사람하고 살아야만 언어교정도 하고 한국문화를 더 빨리 배울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앞뒤 가리지 않고 결혼을 해서 아이 낳고 사업을 구상해서 일을 했는데 되더라고요. 그래서 사업장을 열었죠.
제2의 고향 오늘은 함경남도 함흥 출신의 홍은혜 씨의 남한도착 과정과 소감을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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