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일해 살맛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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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많은 사람이 말하길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제일 힘들다고들 합니다. 조금만 더 자야지 했다가는 지각하기 일수인데요. 매일 아침 일터로 출근하는 것은 직장이 없어 일자리를 찾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부러움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건강상의 이유로 2년동안 쉬다가 최근 일터를 찾은 이순희(가명) 씨입니다.

이순희: 일은 하던 업무라 신경을 쓰지 않는데 원래 사회 생활이란 것이 사람들 속에서 하는 일이라 사람들 파악하기가 좀 어려운 것 같아요.

함경북도 출신의 이 씨는 남한에 도착해서 바로 간호 조무사 학원을 다녔고 자격증을 취득한 후 첫 직장이 노인 요양원이었습니다. 이 씨는 아프거나 스스로 자신을 돌보지 못하는 사람에게 의료혜택을 주는 시설에서 일합니다.

이순희: 간호조무 업무는 어르신들 바이탈, 투약 일상에서 어르신들의 건강상태를 확인하고 아프면 병원에 모시고 가고 보호자와 연계해 치료 대책을 세우는 것이 간호 조무사의 일입니다.

기자: 혼자 어르신들을 돌보는 것은 아니겠는데요. 어떤 분들과 일하는 건가요.

이순희: 요양 보호사들과 일하는 거죠. 요양 보호사들 지도 감독 통제하고 협력해서 일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 어르신들 어떤 것을 신경 써야 하는지 욕창이 있는 분은 어떻게 관리를 잘하고 또 음식으로 죽을 드려야 할 때는 어떤 것을 주의하는지 요양 보호사들에게 알려주면서 함께 일을 해야 하는 거죠.

남한에서 처음부터 했던 일이라서 일에 대한 생소함은 전혀 없습니다. 그 동안 직장 일이 끝나면 퇴근하고 야간대학에도 다녔습니다. 사회복지학과에서 국민의 생활안정과 공중위생 그리고 모든 사람의 행복과 이익을 총괄하는 그런 학문을 공부한 겁니다. 그러다가 대학 졸업을 할 무렵 고통을 참아왔던 고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수술을 받았습니다.

이순희: 2년 동안 제가 무릎 연골이 아파서 걸을 수가 없어서 4번을 수술을 받다 보니 일을 못하는 공백이 있었어요. 처음에는 일하고 싶다가 다리 수술이 잘 안 돼서 아플 때는 거기에 신경을 쓰느라 일 하는 것이 관심을 안 가졌는데 재활을 하고 상태가 좋아지니까 다시 일하고 싶은 거예요. 사람은 일을 해야 사는 맛도 나도 남한테 할 소리도 하고 떳떳하더라고요.

기자: 거동이 불편할 때는 속도 많이 상했는데 이제 건강을 되찾으니까 또 일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기신 거군요.

이순희: 네, 그 다음에는 어느 정도 건강이 회복 되니까 내 자신을 보고 미래를 생각하니 아침에 출근하려고 서두르는 사람이 부럽고 내가 초라해 보이는 거예요. 그때 마침 7년전에 같이 간호 조무사로 2년동안 일을 했던 친구가 자기 일하는 데 빈자리가 났다고 바로 전화를 준거예요.

물론 누군가의 소개로 취업 면접을 보면 도움은 되겠지만 평소 준비를 하지 않았다면 자신에게 찾아온 기회를 잡을 수 없을 겁니다. 이 씨는 예전에 요양원에서 일했던 경험 그리고 대학 졸업장과 심리상담사 자격증, 요양보호사 자격증, 사회복지사 자격증 등 자신이 소지한 각종 자격증을 챙겨서 소개 받은 곳으로 향합니다.

이순희: 이력서 쓴 것이 한 통 있었고 또 각종 자격증 딴 것이 있었어요. 그것을 가지고 갔더니 원장님이 열심히 사셨네요. 자격증도 많고 하면서 좋아하시더라고요. 그러면서 당장 내일 건강검진 코로나 검사 받고 출근 하세요 이러시는데 정말 좋았어요.

현재 이 씨가 일하는 곳에는 직원이 전부 여성입니다. 작지 않은 규모의 건물을 통째 쓰고 있는데요. 간호 조무사가 각각 한 층을 맡아 어르신들의 건강을 책임지고 요양 보호사와 짝을 이뤄 식사와 목욕 그리고 일상 생활에 필요한 수발을 들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같이 일하는 요양 보호사와 호흡이 잘 맞아야 하는데요. 어떤 측면에서 보면 일보다는 그 이외 것에 더 민감한 일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이순희: 네, 아무래도 북한보다는 남한이 텃세가 좀 있는 것 같아요. 특히 여기는 여성들이 많이 일하고 오래 일한 요양 보호사 선생님들이 많아요. 나이도 많고요. 좀 텃새를 부린다고 할까요? 그러나 내가 직위가 위라서 뭐라고는 안 하지만 묘한 감정을 느낄 수가 있더라고요. 어느 정도 경계하는 것을 느꼈어요. 이것도 누구나 직장생활을 하게 되면 겪게 되는 사회생활의 한 부분이다 하고 스스로 감당해 나가려고 하고 있어요.

기자: 혹시 직장에서 북한 출신인 것을 숨기셨나요?

이순희: 아니요. 그런 것은 전혀 없었어요. 제 성격이 개방적이라 숨김없이 소개할 때부터 북한에서 왔다고 하고 실제 나이는 좀 되지만 남한에 온 나이는 10년밖에 안되니까 잘 부탁 드립니다. 하니까 사람들이 출렁출렁 대면서 웃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보고 느낀 것을 그 자리에서 바로 말하니까 대찬 여자다 보통이 아니겠다 하는 인상을 줬죠. 그게 오히려 사회생활 하는 데는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일할 때는 몸도 지치고 좀 쉬고 싶다는 마음 간절했는데 다리 수술을 받고 2년 동안 쉬다 보니 일하는 사람이 부럽기만 했습니다. 사람은 항상 현재 내가 무엇을 갖고 어떤 행복을 누리고 사는지 보다는 갖지 못한 것에 대한 부러움이 큰가 봅니다. 남한생활 10년, 얼마 전에 조금 더 큰 차로 바꾼 것이 걱정거리가 될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새로 출근한 직장에 주차장이 없어서 무척 애를 먹고 있기 때문이죠.

이순희: 출퇴근이 문제죠.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1시간 10분 걸리는데 내 차로 가면 20분 이면 도착하더라고요. 좋은 것이 있으면 나쁜 것도 있다고 50분 빨리 가는 대신 여긴 차가 많고 주택이 밀집돼 있다 보니까 주차장이 없는 것이 문제에요. 이전에 아무 것도 없을 때는 그냥 열심히 일하자 했는데 하나씩 갖춰놓고 보니까 그보다 더 좋은 것을 가지고 싶고 차를 사니까 차를 세울 곳도 없고 조건이 맞지 않으니까 차라리 차를 안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부럽기도 하고 그런데 직장이 머니까 대중교통을 타면서 길에서 50분을 낭비하는 것도 아깝고 하니까 직장하고 집이 가까워서 차를 안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이럴 때는 부럽기도 하고 그래요.

직접 그의 입을 통해 듣지 않았다면 태어나서 50년 가까이 살던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남한 사람들은 상상하기 조차 힘들었을 겁니다.

이순희: 생각하면 오히려 그것이 나라에서 나를 그것을 봤다고 통제를 한 것이 나를 남한으로 오게 한 좋은 계기라고 생각하죠. 나를 남한으로 보낸 게 이북이에요. 그들이 남조선 영화를 봤다고 통제 하고 잡아가서 때리지 안으면 내가 여기 올 이유가 뭐 있겠어요. 결국 자국민들 자기들이 쫓아 내는 거예요. 탈북하게끔 만든 것이 북한 정부인 거죠.

새로운 것에 대한 배움에 목말라 50대에 직장 생활을 하면서 대학공부 4년을 끝냈습니다. 그리고 수술 후 재활을 마치고는 매일 아침 차를 몰로 출근하는 이순희 씨. 사회생활을 갓 시작한 새내기처럼 일터는 이 씨의 마음을 설레게 합니다.

이순희: 다시 직장 생활을 하니까 좀 더 긴장을 해야겠고 업무 파악한 후에는 일에서 혁신을 일으켜야겠죠. 그리고 일상 제가 남한에 와서 하고 싶었던 외국 여행도 직장 연차를 이용하면 가까운 동남아는 3일 정도면 다녀올 수 있고 한데 코로나가 끝나야겠죠. 요양기관은 백신을 제일 먼저 맞춰준다고 하니까 백신 맞으면 어디든 갈 수 있으니까 그날을 기다려 봅니다.

제2의 고향 오늘은 간호 조무사로 일하는 이순희(가명)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