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듣고 탈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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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남한 속담에 말은 나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출세하려면 좋은 환경에서 경쟁할 수 있는 곳에 가야 한다는 얘깁니다. 하지만 반대로 농촌으로 가서 노후를 준비하겠다는 탈북자도 있습니다. 오늘은 함경남도 함흥 출신의 이유성(가명) 씨의 이야기 전해드립니다.

이유성: 저희 아버지가 고지식해서 못 보게 했어요. 온 집안식구가 잡혀간다고 못 보게 해서 가만가만 봤죠.

여러분은 무슨 예긴지 짐작이 가실 겁니다. 탈북 동기와 관련해 2003년 당시 상황을 설명한 겁니다. 집에서 남한방송을 보고는 결심했다는 거죠.

이유성: 그때 북한에서는 한국 KBS가 잡혔어요. 텔레비전 뉴스도 보고 여러 가지 드라마도 보고 다큐멘터리도 보고 하면서 세계에서 대해서 알게됐어요. 그때 뉴스에서 탈북자들이 중국 영사관에 진입하는 것을 봤어요. 그것을 보면서 저런 방법이 가능하겠구나…

북한에서 태어나 남한 방송을 보고는 부모형제를 떠나 탈북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사회적 불만과 미래에 대한 불안 심리가 작용했던 겁니다.

이유성: 부모 토대가 안 좋아요. 아이 할아버지는 6.25때 국군을 도와줘서 북한군에게 처단됐어요. 어릴때부터 나는 이 사회에서 아무리 일을 잘하고 아무리 충성을 다해도 나는 이 사회에서는 발전을 못하겠구나 이런 생각했고 항상 하고 있었어요. 성정하면서 언젠가는 이 사회를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는데 한국 텔레비전 방송을 보고는 결심을 굳혔어요.

이 씨는 2008년 탈북해서 잠시 중국에 숨어살다가 2011년 남한 땅을 밟게 됩니다.

기자: 남한에 가서 제일 먼저 했던 일이 뭔가요?

이유성: 처음에는 식당일을 했어요. 식당에서 주방일도 하고 써빙도 하고 하다가 이런 식으로는 안되겠다 해서 1년짜리 직업학교에 가서 기술을 배워서 회사에 취직해서 지금까지 일하고 있습니다.

기자: 지금은 어떤 일을 하고 계십니까?

이유성: 지금은 건설일을 하고 있습니다.

기자: 6년 정도 생활을 해보니까 이제 정착이 좀 됐습니까?

이유성: 네, 먹고 사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 북한하고는 비교가 안 되고요. 지상낙원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심적으로는 힘들 때도 있어요. 부모형제 떠나서 마치 어떤 때는 내가 외국 생활하는 기분도 들고요 외로움도 많지만 힘든 것은 순간이더라고요. 내가 목숨걸고 왔는데 이런 것도 못견디겠는가 그러면 아무것도 아니더라고요.

남한정부가 정착금을 주고 탈북자 지원정책을 국가차원에서 한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일하지 않아도 모든 것을 부족함없이 책임져 준다는 것은 아닙니다. 일을 해야 하고 경쟁을 해야 하고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만들어가야 하는 자신의 몫이 분명히 있습니다. 이런 것이 자유일 수 있는데요. 북한에서는 늘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다시말해 영원히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는데 이런 것이 무엇이었는지는 남한에 가서 확실하게 알게 됩니다.

이유성: 그것은 북한에서부터 느꼈어요. 보지도 못한 할아버지 때문에 왜 피해를 봐야 하는가? 말로는 본인만 충성다하면 과거를 묻지 않고 받아준다고 횡설수설 하는데 실제는 연자좌를 묻고 해서 사회에 대한 반감이 많았어요. 여기 와서도 북한에서 속고 살았다는 것을 알았어요. 자본주의는 남을 도와주는 것도 없고 6.25전쟁도 한국이 침략한 줄 알았는데 다 거짓말이더라고요. 너무 황당했어요. 북한에서 나는 목줄을 메지 않았을 뿐이지 노예였구나. 그때는 사회에 대한 불만은 있었어도 노예라는 생각은 못했었거든요.

기자: 선생님이 살아본 자본주의 사회는 어떤 곳이던가요?

이유성: 내가 살아본 자본주의는 정말 살만한 세상입니다. 사회주의에 비하면 개성을 존중해주고요. 사회주의는 집단주의 잖아요. 모든 것을 집단주의 울타리 안에서 규정하고 충성심도 평가하고 됨됨이도 평가하는데 자본주의에서는 나라의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으면 내 마음껏 살수 있고 누릴 수 있는 것이 너무 좋더라고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북한에서 알던 것과 무엇이 달랐기 때문에 자본주의가 살만한 세상이라고 말하는 것인지 예를 들어볼까요?

이유성: 북한에서는 자본주의에 비교해서 사회주의 우월성을 주장했는데 비교를 하면서도 자본주의 장점은 말을 안해요. 자본주의는 세금을 너무 내는데 우리는 세금이 없다 이러는데 여기와서 보니까 세금을 내는 것이 나를 위하고 나라를 위한 거잖아요. 와서 보니까 엉터리 비유더라고요.

남한에 가서는 일을 안하면 원하는 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쉽게 말해 공짜가 없기 때문에 값을 치루자면 돈을 벌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매일 일할 수밖에 없다는 말인데요. 그러다 보니 이 씨도 습관적으로 다람쥐 챗바퀴 돌 듯 아침이면 건설현장으로 그리고 날이 저물면 집으로 가는 단순한 일상을 보냅니다. 그래서인지 소위 말하는 골아프다 즉 스트레스 받는다. 이런 것은 딱히 생각해 본적이 없네요.

이유성: 저는 일로 모든 것을 풉니다. 힘들고 어렵고 하면 그저 일을 하면 극복이 되더라고요. 저는 운동도 별로 좋아 안하고 어디 놀러 다니는 것도 안좋아 해서 심적인 고독이나 외로움은 일하면 없어지더라고요.

기자: 하지만 남들이 하는 것을 보면 하고 싶고 부러울 때도 있을 텐데 선생님이 생각하는 행복은 어떤 것일까요?

이유성: 저는 물론 가족이 함께 왔으면 더 말할 것이 없겠죠. 가족과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인데 일단 가족을 데려오지 못했으니까 내가 아무리 좋고 해도 행복하다는 생각이 안들어요. 그런데 이 사회에 와서 적응을 잘 해가고 이만하면 정착을 괜찮게 하고 있네 그리고 같은 탈북자와 이번 주말에는 놀러가자 그러면서 한국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북한에 있었으면 이런 것을 꿈도 못 꾸겠는데 내가 오길 잘했다 이런 생각도 하고요. 행복이란 것이 주중에는 일하고 주말에는 친구들과 술한잔 하고 밥 먹고 이런 것이 행복이라고 보지 깊이 그것에 대해 생각해본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이 씨는 앞으로 노후대책 즉 체력이 떨어져 경제력을 잃게 된 후까지 착실히 준비하면서 현재 사는 도시가 아닌 농촌으로 가서 딸기농사를 짓고 살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유성: 네, 제가 6년 생활해 보니까 지금은 100세 시대인데 시내에서는 물부터 남새까지 전부 사먹어야 하거든요. 앞으로 30년 정도 벌어 놓은 것으로 살아야 하는데 이런 방법으로는 노후 준비가 안되더라고요. 그래서 여기서 회사 다니는 것보다는 농촌에 가서 노후준비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고 귀농준비를 하고 있어요.

제2의 고향 오늘은 농촌에서 살겠다는 이유성(가명) 씨의 이야기 전해드립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