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요리 명인, 도시락공장 사장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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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누구나 뭔가 자신있게 내세울 수 있고 또 그것으로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다면 성공한 인생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북한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남한에 가서는 북한요리 전문가가 돼어 자신의 사업을 하는 탈북여성이 있습니다. 북한요리 명인 이은희(가명) 씨의 이야기 전해드립니다.

이은희: 내가 처음에는 식당을 안하겠다고 했지만 지금은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지금은 너무 즐겁게 하고 있어요.

함흥 출신으로 북한에서 2009년 화폐개혁 직후 탈북한 이 씨는 지금 남한에서 도시락 공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전재산을 한순간 잃고 허망해 하던 때와 비교 한다면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데요. 북한에 있을 때 요리학원을 2년 다닌 것 그리고 자신의 식당을 운영한 것이 남한에서 인생을 바꾸는데 귀한 경험이 됐습니다. 어떻게 도움이 됐냐구요. 남한에서 북한요리를 연구하는 곳에서 같이 일해보자는 요청이 왔고 이 씨가 바로 승락을 했던 겁니다.

이은희: 처음에 와서 주말에는 우리 원장님이 소개를 해서 주말에도 강의를 다녔어요. 나는 부산으로 대전으로 대구로 강의비는 처음에 얼마 안됐지만 열심히 다녔습니다. 좋더라고요. 힘든줄도 모르고 빨리 돈을 벌어서 북한에 보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어요.

기자: 전국을 다녀 보시니 어떻던가요?

이은희: 골고루..서울이라고 해서 잘살고 지방이라 못살고 그런 차이가 없었어요. 지방은 지방대로 편안하고 아늑한 그런 느낌을 받고 서울에서 붐비는 곳에 있다가 지방에 가면 공기도 좋고 안정되고 좋더라고요. 그때는 왠지 하나도 힘든 줄 몰랐어요. 나가면 좋고 또 출근하고 싶고 처음에는 회사 출근하는 것도 재밌고요.

기자: 남한생활의 고비는 어떤 것입니까?

이은희: 있었죠. 사람에게 상처 받은 것도 있고 1년 반을 회사생활해서 모은 돈으로 조그만 백숙집을 차렸는데 처음에 그 동네에 가니까 자기내도 장사가 안되는데 여기 좁아터진 골목에 또 문을 열었다고 난리를 치는 일도 있었고요. 나중에는 우리집 장사가 너무 잘되니까 어떻게 맛을 내는가 물어보기도 하고 아줌마들이 와서 수다를 떠는 공간이 되기도 하고요. 사람이 고비 없이 여기까지 왔다는 것은 거짓말이겠죠?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을 요리사라고 합니다. 그런데 북한요리 명인이 됐다고 하는 말을 청취자 여러분은 무슨 말인지 이해 하시겠습니까? 쉽게 말하자면 공식 전문가로 인정 받았다는 말인데요.

이 씨는 그에 만족하지 않고 요리 기능장이 되고자 노력 중입니다. 이 씨가 국제대회에서 수상을 하고 명인이 되기 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들어봅니다.

이은희: 명인된 계기가 연구원에 다닐 때 대표님이 이 요리실력이면 세계 요리대회에 나가도 되겠다 하고 나 모르게 접수를 한 거예요. 요리 대회에 나갔는데 처음에는 1천명에서 500명 뽑고 거기서 나중에 140명을 뽑았어요. 시험을 두 번 쳤어요. 두 번 다 통과를 했어요. 그때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국제요리 대회에 나갔는데 캐나다에서 주최를 한 대회였는데 쟁쟁한 요리사 140명이 한식 조리를 했는데 거기서 6등을 했어요. 그것이 탈북자 사회에서 큰 파문을 일으켰죠.

기자: 남한에서는 배우지 않고 북한에서 2년 배운 것이 전부였는데…

이은희: 순수하게 북한에서 요리학원에서 배우고 식당하면서 터득한 요리를 북한요리라고 했는데 140명 쟁쟁한 호텔 주방장이 나간 대회에서 6등한 것이 내 인생에서 그날이 제일 기뻤던 것 같아요.

기자: 그때 요리 과제가 뭐였습니까?

이은희: 내가 했던 요리가 닭요리 하고 찹살 후식을 했는데 1시간 40분 동안 7가지 요리를 하라는 것이 기본 문제였어요. 한상 상차림이었어요. 술안주로도 먹을 수 있고 밥으로 먹을 수 있는 한상차림을 하라는 것이었어요. 거기에 있는 재료를 가지고 똑 같은 시간에 누가 난이도 높게하는가 하는 것을 보는데 내가 봐도 너무 좋았고 북한음식이 좋았구나 했죠. 냉면이나 순대 뿐만 아니라 이렇게 북한음식이 좋다 하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기자: 일반인들은 명인이란 말 자체가 생소하게 들리는데 요리 명인은 뭘 말하는 겁니까?

이은희: 명인은 한 분야에 오랬동안 북한식으로 말한다면 공훈 요리사 고급 요리사쯤 되는데 남한에선 명인 수여를 하는데 어떤 분야에서 한 가지를 오래 하고 사람들 사이에 평가가 높고 한 사람이 되는거죠. 명인심사 과정이 엄청 까다로워요.

현재는 국제심사원 자격으로 요리경연 대회 심사위원으로도 활동 중입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본업은 자신의 사업인데요.

이은희: 배달도 하고 행사 음식을 차려주고 원하면 음식을 주문하면 해주고요.

기자: 일반 식당에 손님이 와서 주문 하면 해주는 식이 아니네요.

이은희: 아니예요. 우리는 공장에 주문하면 배달해주는 도시락이예요. 한 두개가 아니고 대량으로 나가요.

기자: 이렇게 설명을 해야겠군요. 음식공장이군요

이은희: 우리가 제조업이예요. 음식 제조업 공장.

기자: 그런 생각은 어떻게 하셨어요?

이은희: 냉면집을 하면서 조금 큰 곳으로 옮겨야겠다는 생각을 한 순간 도시락 사업에 마음이 너무 끌렸어요. 그런데 내가 하고 싶은 사업이 내 앞에 나타나더라고요.

식당이 아니라 한끼 식사를 만들어 포장을 해서 병원이나 큰 회의가 열리는 곳 또는 행사처에 납품하는 음식 사업을 한다고 생각을 하시면 좀 이해가 빠를 겁니다. 바쁘게 돌아가는 사회에서 짧은 점심 시간에 식당에서 사먹는 것 보다 저렴한 비용을 들여 간단히 먹을 수 있다. 이런 것이 큰 장점이 있는 사업이기도 한데요. 요리 명인이 하는 도시락이니 그 맛은 물어볼 필요도 없겠죠?

이은희: 음식 맛이 나는 최상의 재료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신선하고 비싼 재료를 써서 맛이 없는 음식이 안나와요. 이윤은 적게 남아도 앞으로 멀리 보고 좋은 재료를 써서 정직하게 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배가 고플 때 정성들여 만든 도시락을 먹고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며 자신도 행복을 느끼는 이은희씨. 나날이 성정하는 사업만큼이나 책임감도 커진다고 말하는 이 씨.

이은희: 모르는 사람이 다시 전화를 하고 주문할 때 행복해요. 도시락이 정말 맛있었다고 말하면 너무 행복하고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다시 주문을 한다는 것은 맛이 있었다는 것인데 그것에 보답을 해야겠죠?

제2의 고향 오늘은 북한요리 명인 이은희(가명) 씨의 이야기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