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반려묘라고 들어보셨습니까? 함께 사는 개는 '반려견' 그리고 고양이를 '반려묘'라고 합니다. 평생을 함께 하는 동물이란 뜻으로 '반려동물' 이라 하는데요. 고양이는 반려 뒤에 한자 묘를 합해 구성된 단어입니다. 반려란 짝이 되는 동무라는 의미인데요. 늘 함께 하는 동물을 가족처럼 생각해서 이쁜이란 이름을 붙인 한현정(가명)씨의 이야기 전해드립니다.
한현정: 마취 주사를 놓고 애 입안을 보더니 염증이 생겼다고 소독약을 발라주고 소염제, 항생제 주사를 주고 약 처방 하고는 9만원 달래요.
함경북도 김책이 고향인 한 씨는 지난 1998년 4월 탈북합니다. 그리고 중국에서 살다가 2007년 남한행을 했는데요. 얼마전 고양이가 아파서 동물병원에 갔더니 미화로 환산해서 치료비로 80달러 정도 지불했다는 말입니다. 자기는 어디 아파서 병원가면 항생제 하고 약 처방 받아도 1만원 그러니까 10달러를 안 넘는데 고양이 치료비 청구액이 너무 커 놀랐다는 설명입니다. 그런데 하나도 아까운 생각이 안들었답니다.
한현정: 새 새명을 키우겠다고 안고 집에 왔잖아요. 그러면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마음으로 데려 왔는데 이불에 쉬하고 옷에 쉬하고 그럴때가 있어요. 고양이 오줌냄새가 굉장히 역하거든요. 하루에 빨래를 여러 번 할 때도 있는데 내가 이뻐서 데려온 애니까 화가 안나더라고요.
남한생활이 10년되는 한 씨가 탈북한 사연은 이렇습니다.
한현정: 엄마가 1998년 3월 돌아가셨거든요.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니까 오빠집을 나와 독립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중국가서 돈을 벌어 장사 밑돈을 벌어와야겠다는 생각에 압록강을 건너게 됐어요.
이제 기억도 가물가물한 20년 전 이야깁니다. 탈북이후 중국을 거쳐 남한에 갔고 우연한 기회에 고양와 인연을 맺습니다.
기자: 애완동물을 키운다는 것이 쉽진 않은데 이쁜이는 어떻게 만난 겁니까?
한현정: 제가 2011년에 구청에 계약직으로 일할 때인데요. 길에서 애기 고양이를 구조했나봐요. 출근하는데 애옹애옹 하는 소리가 나서 가봤더니 아주 조그만 고양이가 울고 있더라고요. 너무 애처로워서 내가 퇴근할 때 데리고 왔죠.
북한에서부터 동물을 키웠기 때문에 특별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누군가의 보살핌이 필요해 보였고 깊이 생각하지 않고 그냥 퇴근길에 데리고 집으로 갔던 겁니다.
한현정: 저희집이 시골이라서 북한 시골에는 쥐가 많거든요. 항상 시골집들에서는 고양이를 키워요. 그래서 저희집에서도 고양이를 키웠거든요. 대야에 모래를 담아두면 고양이가 모래위에서 볼일을 보고 모래로 덮거든요. 그것을 알았으니까 이쁜이를 데려와서 아이스박스에 모래를 담아두고 저는 출근하고 하니까 어린 고양이가 모래에 들어가서 볼일을 보고 나오고 하더라고요.
북한에서는 고양이 사료가 따로 없어 그냥 데려다 놓으면 자기가 알아서 했지만 남한에서는 먹는 것부터 고양이에게 필요한 것은 모두 챙겨줘야만 합니다. 한 씨는 처음 고양이를 집에 데려온 날부터 지금껏 변함없이 가족으로 생각하고 고양이를 돌보고 있습니다.
한현정: 내가 안데려가면 혹시 또 어디 버려지지는 않을까… 내가 키워야겠다 해서 제가 집으로 데려와서 사료를 샀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한 달에 한 번 털도 깍아주고 사료도 주고 목욕도 시키고 하면서 키우고 있어요. 고양이를 키우다 보니까 퇴근해 오면 온 바닥에 고양이 털이 깔렸더라고요. 그래서 그때부터 털을 깍아주기 시작했죠. 집안에 너무 털이 많이 날리니까.
집안에서 함께 지내다 보니 주기적으로 고양이 털을 갂아주지 않으면 안 됐는데요. 초기투자 비용이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한현정: 그것이 한번 살때는 목돈이죠. 그런데 고양이가 죽는날까지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10년은 사니까 내가 투자한다고 생각했죠. 한 번 샵에 가서 깍으면 5만원이거든요. 1년이면 60만원이니까 45만원을 주고 바리깡을 사면 죽을때까지 쓸 수 있으니까요. 사람 머리깍는 바리깡도 그정도 해요. 가위로 깍으면 안 이쁘죠. 그리고 짐승은 사람처럼 가만히 있질 않고 움직이잖아요. 마취를 하고 깍아주는 것도 아니고요. 가위로 깍아주면 끝이 날카로우니까 고양이에겐 위험하죠.
사실 동물을 집안에서 키운다는 것에 눈쌀을 찌푸리는 사람도 있는데요. 어떻게 동물을 사람와 똑같이 대하는가 하는 이유일 겁니다. 기자와 전화 통화를 하는 중에도 고양이는 하루종일 못 봤는데 자기를 보지 않고 전화를 한다고 투정을 부리는지 한 씨의 부산함이 전화선을 통해 전해집니다.
한현정: 저는 북한에서도 내가 키우던 고양이하고 이불 덮고 같이 잤는데요. 여기 물을 떠놨잖아요.
고양이: 야옹…야옹….
기자: 이제 고양이가 좀 진정이 됐나요?
한 씨는 북한을 떠난지 오래돼서 인지 어느 부분에선 이제는 누가 봐도 남한사람이었습니다.
한현정: 사람이 밥만 먹고 살지 않잖아요. 고양이도 사료 외에도 여러 가지 고양이 간식을 파는데 너무 비싸요. 그중에 박스로 파는 깡통이 있는데 24개에 1만 9천원이더라고요. 그나마 다른 것보다 싸니까 사서 먹였는데 이쁜이가 너무 잘 먹는 거예요. 그래서 그때부터 이쁜이 사료하고 깡통은 사서 먹이고 있어요.
키우는 동물도 사람처럼 아플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동물병원을 가야 하는데요. 치료비용은 사람보다 비싸게 들기도 합니다.
한현정: 우리 이쁜이가 되게 깔끔해요. 8년동안 살면서 한번도 눈꼽을 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하루는 나를 따라 다니면서 애옹애옹하는 거예요. 누가봐도 제가 나한테 뭘 말하는 건데 내가 짐승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너무 속상하더라고요. 그리고 이틀만에 사료도 안먹고 침을 질질 흘리더라고요. 겁이 덜컹나서 병원을 갔는데 동물병원에서 마취를 시키고 입을 보더니 안에 염증이 있다고 소독약을 발라주고 항상제 주사를 놓고 했는데 계산하는데 9만원이라고 해서 너무 깜짝 놀랐어요.
한 씨가 좀 유별나고 동물을 유난히 좋아하는 탈북자라는 생각은 안들었스니다. 왜냐하면 기자가 알고 있는 탈북자 중에도 고양이를 키우는 분이 꽤 있으니 말입니다. 이분들은 남보다 경제적 여유가 있거나 혼자라 외로움에 동물과 함께 하는 것은 아닙니다. 각각 이유도 다양합니다. 예를 들어 자녀가 고양이를 좋아해서 또는 한 씨처럼 우연한 기회에 키우게 됐다는 건데요. 공통점은 키우는 동물을 가족처럼 대하면서 그 마음이 애틋하다는 겁니다.
한현정: 그 책임감은 남한 사람보다 더 높다고 생각해요. 저희는 고향을 떠나 왔잖아요. 그러니까 저처럼 어디서 애처로와서 안고와 키운다면 내가 고향을 떠나 온 것처럼 데려온 짐승에도 더 애착이 가지 않을까 싶어요. 탈북민들은 애완견을 쉽게 버리진 않을 것 같아요. 두고 온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이런 애완견에 가지 않을까 생각해요.
이제 중년의 나이를 훌쩍 넘은 한 씨는 건강하게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소망하고 있습니다.
한현정: 저는 이쁜이가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이쁜이가 이 세상 다하는 날까지 잘 살아보고 싶어요. 가장 큰 바램은 좋은 배우자를 만나는 거예요. 서로 아끼고 사랑해줄 수 있는 배우자는 만나서 우리 이쁜이랑 잘 살아보는 거예요.
제2의 고향 오늘은 함경북도 김책이 고향인 한현정(가명)씨의 이야기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