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북한에서는 먹고 살기 힘들어 탈북을 했는데 그렇게 먹고 싶었던 닭을 원없이 손질하며 사는 여성이있습니다. 먹는 것도 그렇지만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8년만에 내집 장만도 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은 닭공장에서 일하는 함경북도 경성군 출신의 이순옥 씨의 이야기 입니다.
이순옥: 닭공장인데 출근 해야지 출근 안하면 닭이 커서 안돼요.
이 씨는 매일 양계장에서 배달되는 수 십만 마리의 닭을 처리해야 합니다. 물론 혼자 하는 것은 아니지만 닭고기 가공공장에서 깨끗하게 손질해서 상품으로 내보내야 하는 물동량을 끝내야 합니다. 현재 이렇게 일하는 이 씨가 북한을 떠난 것은 지난 1997년 입니다.
이순옥: 97년도는 고난의 행군 초창기라 아사자가 생기고 배고프고 힘들었어요. 원래는 중국에 와서 돈이나 벌어 가자 했는데 신랑 만나고 살다보니 중국에 살게 됐죠. 한국 갈 생각도 안했는데 하도 중국에서 10년 있는 동안 두 번이나 잡혀 나갔다오고 마지막에는 막내딸을 중국에서 낳았는데 생후 6개월 됐을 때 잡혀 나가서 1년 있다가 다시 건너왔어요. 그런데 중국에서 집으로 자꾸 잡으러 와서 할 수 없이 농촌에 있는 집을 다팔고 시내와서 집도 없이 남의 집 머슴살이 하다시피 하고 살다가 할 수 없이 한국가면 자유롭다고 해서 한국길에 들어섰어요.
먹고 살기 위해 탈북했다면 중국에서 한국 행을 한것은 가족과 함께 살기 위한 길이었습니다. 불법신분으로 언제 또 중국 공안에 잡혀 북송당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계속 중국에 있을 수가 없었던 겁니다. 그런 마음에서 다시 한 번 모험을 했던 것인데 지금 생각해도 그 결정이 옳았습니다.
이순옥: 한국에 오니까 너무 좋지. 한국에 오니까 내 맘대로 벌고 내가 힘있게 벌면 모든 것이 내 주머니에 들어오고 그저 자기만 열심히 일하면 밥 걱정 없고 내가 남편하고 열심히 일해서 8년만에 30평 새 아파트를 사 나왔잖아요.
2007년 제3국에서 비행기를 탔고 한국애 도착해서는 새로운 세상을 만납니다.
이순옥: 한국와서 내가 하고 싶은 말다하고 간섭없고 내가 열심히 벌고 하니까 너무 좋죠. 내가 닭공장에서 일한지 10년 됐어요.
한가지 일을 10년정도 했다면 이젠 그 분야 전문가라고 해도 될텐데요.
이순옥: 그렇죠. 이제는 완전 전문가가 됐어요. 외국인 근로자가 많이 있는데 이젠 내가 10년 됐으니까 누구든지 앞에서 큰소리 빵빵 치고 너무 좋죠. 이젠 다른데 가고 싶은 생각이 없죠.
닭고기 가공공장에서는 무슨 일을 하는 지 좀 설명을 들어봐야 알 것 같은데요. 출근하면 매일 어떤 일을 하는 지 직접 들어보죠.
이순옥: 닭공장에 생닭을 잡는회사예요. 농가에서 가져와서 닭을 라인에 걸면 펄펄 끓는 물에 넣고 털을 뽑고 우리가 다듬고 내장 빼고 그런 일을 해요.
이 씨가 일하는 닭공장은 함께 일하는 사람이 한 80명 되는 중소기업입니다. 처음부터 이 일이 좋았던 것은 아닙니다.
이순옥: 나는 닭공장이란 것이 닭키우는 데인줄 알았고 도축하는 곳인지 몰랐어요. 처음에 갔는데 환경이 더럽고 피를 보고는 속이 울렁거려서 나올 생각을 했어요. 일하러 가서도 조퇴를 하고 와서는 핸드폰을 꺼놓고 있었는데 관리직들이 너무 좋은 사람들이 많았는데 나오라고 자꾸 해서 나오다 보니 10년이 됐어요. 처음에는 너무 힘들고 잔업이 많았어요. 그런데 돈버는 재미에 남이 안하는 잔업고 하고 철야작업도 하고 했는데 지금은 집도 사고 돈도 저축하고 하니까 이젠 딱 일하는 것이 내몸에 맞아요. 월급이 2008년에 70만원이었는데 지금은 170만원이예요. 잔업 조금만 더하면 200만원 쉽게 벌죠.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 8시간 일하는 데요. 하루 이 씨가 일하는 닭고기 가공공장에서 처리해야 하는 물량이 얼마나 되는지 아십니까? 아마 여러분도 알게 되면 놀라실 겁니다.
이순옥: 하루에 10만 마리 가보면 닭장에 닭이 가뜩해요. 그닭을 누가 먹는지 모르지요. 그래도 그거 다 팔아요. 아무리 작다해도 하루 8만 마리는 잡아요. 매일 떨어지지 않고 들어와요. 여기 농가들이 있으니까. 어디서 가져오는지 사장들이 다 들여와요. 내일도 또 꽤 된다는 것 같던데…
집에서 먹는 찬거리로 닭을 안 산다고 말하는 이 씨.
이순옥: 닭만 보면 질린게 아니고…질리진 않아요. 여름엔 삼계탕을 하니까 하루 10만수 정도 잡아요. 지금도 육계와 삼계를 합해서 거진 10만마리 잡고 있어요.
또 잡혀갈까 걱정 안해도 되고 매일 하는 일은 힘들어도 일한만큼 대가를 받으니 행복합니다. 간혹 다른 탈북자들은 남한생활이 힘들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 씨에게는 그런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앞만보고 쭉 달리니까요.
이순옥: 다른 사람말이 내 귀에 안들어오더라고요. 나는 8년만에 새집을 샀잖아요. 지금도 그래요 내가 어떻게 이런 집에서 살까. 중국에 있을 땐 너무 힘들어서 북한 생각이 전혀 안났는데 이젠 좋은 집에 살고 먹고 살만하니까 북한에서 죽은 딸이 생각나요. 북송당해서 2002년 갔는데 딸이 굶어 죽었어요. 엄마도 97년 나올 때 중풍에 걸렸는데 오빠한테 보내고 왔어요. 중국에 있을 때는 생각이 안났는데 지금은 문득문득 생각이 나요. 그럴땐 혼자 눈물이 나서 울고 그래요.
탈북해 중국에서의 10년 그리고 남한에서 10여년 지내다 보니 이제 나이도 50대 중반이 됐습니다. 앞으로 한 5년 정도 열심히 일하고 60세가 넘으면 또 다른 경험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이순옥: 나는 지금 너무 행복해요. 여행은 국내 여행 제주도, 부산 놀러 많이 다녔어요. 작년 추석에도 부산 갔다 오고요. 이제부터는 여유있게 살아야죠. 지금까지 돈만 벌었으니까요. 그리고 우리딸이 졸업하면 해외 나갔다 올까. 지금 생각하고 있어요.
제2의 고향 오늘은 함경북도 경성군 출신의 이순옥 씨의 이야기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