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매 시간 자신이 하는 일이 충실하고 그것에 만족하는 사람은 행복을 따로 찾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럴 필요를 못 느끼기 때문인데요. 오늘은 가사도우미로 일하면서 웃음을 잃지 않는 함경북도 온성 출신의 노경미(가명)씨의 이야기 전해드립니다.
노경미: 돈 높이가 올라가고 행복의 높이가 올라가니까 솔직히 말해 콧노래가 나오죠.
일하는만큼 은행 통장에는 저축이 늘어갑니다. 꼭 많이 벌어서가 아니라 돈을 쓸 시간이 없어 계속 늘어가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2010년부터 남한생활을 시작한 노 씨는 북한에서 먹고 사는 것이 아주 힘든 1998년에 탈북했습니다.
노경미: 북한에서 최악의 식량난을 겪을 때 중국에 가서 돈을 벌어보자고 갔는데 북송 당했습니다. 그때 중국 도문변방 감옥에서 남한에 갔던 탈북자가 중국 시집에 왔다가 붙잡혀서 나하고 구류됐어요. 그런데 한국 국적이 있으니까 감옥에서 나가게 됐어요. 그때 내가 결심했어요. 난 북송당해서 북한에 갔다가 나와서 탈북해 한국으로 왔어요.
두만강을 건넌다는 것이 북한을 탈출하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단순히 먹고 사는 문제를 우선 해결해야겠다는 본능적 행동이었는데요. 중국에서는 공안의 단속을 피해야 했고 얼마 되지 않아 체포돼 북송되기 직전 마음을 정한 겁니다. 중국에 숨어사는 것이 아니라 신분안전을 보장하는 남한으로 가야 살 수 있다는 것을 같은 구류장에 있던 탈북자를 통해 알았습니다. 그래서 강제북송과 재탈북을 거쳐 결국 남한에 갔을 때, 노 씨의 나이 50대 초반이었습니다.
노경미: 처음에 와서는 젊은 사람은 생산직에 취업을 하자면 쉽지만 나이든 사람은 일당벌이 일에는 들어갈 수 있지만 회사 취업은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안해본 일 없이 다해봤어요. 한 번 가만히 생각을 하다가 나이든 사람에겐 청소일이 좋겠다 했는데 마침 파출부 소장이 가정집을 소개를 해줬요. 일을해보니까 가사도우미를 쓴다는 자체는 가정생활이 괜찮은 사람들이 가사도우미를 쓰거든요. 그집에 가서 내가 열심히 일해주고 하니까 시간도 짧고 보수도 좋고 해서 그때부터 청소일을 시작한 것이 지금껏 하고 있어요.
가사도우미란 시간제 또는 일일 고용 형태로 일반가정에 가서 집안 일을 해주는 사람을 말합니다. 가사도우미와 같은 말이 파출부인데요. 처음 시작은 직업소개소를 통해 어느 집을 가서 일을 해야하는지 주소를 받아서 찾아갔습니다.
노경미: 처음에는 가서 문을 두드리고 들어갔고 또 가게 되면 이거 해주세요, 저거 해주세요 하고 요구가 많았는데 이제는 그런 것이 없어요. 내가 혼자 문을 열고 들어가고 아무도 없는 집에 가서 일 끝나고 청소 끝났습니다 하고 문자를 보내면 계좌로 돈을 보내주고 해서 주인을 못 본 집에 많아요.
일을 오래하다보니 집주인이 노 씨를 믿게 됐고 나중에는 아무도 없는 빈집에 가서 일을 하는 관계로 발전했다는 말인데요. 해야할 일을 마치고는 전화 문자로 알려주면 주인은 보수를 은행구좌로 전산처리하게 돼서 서로 얼굴을 보지 못하는 일도 자주 있다는 설명입니다.
토요일 빼고는 매일 같은 일의 반복입니다. 물론 찾아가는 집은 다르지만 하는 일은 같습니다. 그러다보면 쉬지 않고 일만하고 사는가 하는 생각도 드는데요. 노 씨의 생각은 어떨까요?
노경미: 내 손끝에서 일거리가 끊이지 않고 사는 것이 재밌게 사는 겁니다. 집에 가면 텔레비전 틀어놓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일해요. 시간은 5시간 이지만 계속 일하는 것은 아니예요. 또 주인들이 저를 믿음으로 대해주니까 힘들다고 생각해본적도 없고 항상 만족하면서 살아요. 이제는 우선 마음이 편안해요. 근심이 없고요. 딸하나 있는 것도 출가를 해서 손녀가 이제는 재롱을 부리고 할머니 집에 매일 왔다갔다 하는데 보내놓고 보면 또 보고 싶고 그래요.
50대 초에 시작한 생활이 이제 거진 10년이 됩니다. 세월도 많이 흘렀고 그동안 변화도 많습니다.
노경미: 그럼요. 이젠 나이는 못 속이잖아요. 체력은 괜찮은데 얼굴에 주름도 늘었고 뭘 하다가 보면 깜빡 하는 것도 있고요. 그런데 아직까지는 아파서 병원다니고 이런 것은 없어요. 항상 세끼 밥 잘 먹고 다른 사람들은 운돌을 한다고 하지만 나는 일하는 것이 운동이예요. 아침 새벽부터 저녁까지 일하고 있으니까요. 운동할 시간도 없어요. 그져 노동이 운동인거예요.
생활에 안정도 찾았고 이제는 쉬엄쉬엄 놀러도 다니면서 일하면 좋으련만 새벽부터 저녁까지 쉬지 않고 일하는 것은 돈 욕심 때문일까? 저축을 열심히 해서 소위 말하는 돈 걱정은 안한다는 노 씨가 이렇게 한결같은 생활을 하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노경미: 딸이 나보다 건강이 안좋아요. 북한 감옥에서 고생을 해서 그 후유증으로 해서 지금도 아프다 하는데가 나보다 더 많아요. 체력이 안되요. 지금은 힘든일 못하고 화장 기술을 배워서 일하는데 딸이 번돈으로 해서 생활이 안돼요. 자식이 있으니 나보다 지출이 많잖아요. 그래서 딸 차도 사주고 필요하다는 것을 사줘요. 내가 쓰는 돈은 아파트 관리비 하고 전화비 하고 보험료밖에 없어요. 나혼자 먹어면 얼마나 먹겠어요. 딸한테 돈을 많이 써요.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는 하지만 좀 편하고 다른 직업을 찾은 적은 없는지 또 지금 하고 있는 언제까지 계속 할것인지에 대한 답은 두 번 생각할 필요도 없이 바로 답변이 나왔습니다.
노경미: 일이라는 것이 그래요 어디 제 마음에 꼭 드는 것이 있어요? 모든 것을 헤쳐나가야죠. 내가 한발 양보를 하고요. 그렇게 일을 해서 그런지 지금 내가 맡은 집들은 별로 힘도 안들고 계란 노른자 같은 집들이라 스트레스도 안받고 육체적으로 안힘들고 정규직 직장에 다니는 것과 같아요. 손녀오면 간식 사주고 옷도 사주고 이렇게 돈을 써요. 그리고 또 내가 돈이 조금 여유라도 있어야 필요하다고 하면 엄마로서 뭔가 해줄 수 있잖아요.
노 씨의 말을 들어보면 무슨 일을 하든 책임감 있게 해준다면 그 대가는 결코 나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노경미: 대체로 내가 다니는 집들은 돈좀 있는 집들이라 집을 잘 꾸며놓고 살아요. 깨끗하고 집을 꾸미는데 얼마나 신경을 쓰는지 몰라요.
기자: 어떻게 해놓고 사는 것이 잘 꾸며놓고 사는 겁니까?
노경미: 그냥 내 눈에 잘해놨구나 하고 마음에 들면 잘해놓고 사는 거죠.
기자: 보통 한집에 가서 몇 시간씩 일하고 하는 일은 뭔가요?
노경미: 4시간에서 5시간을 하는데 집에 한 80평 되는 집이예요. 일주일에 6집을 다니는데 오전 오후 하면 12집이 되는 거예요. 빨리하고 정돈하고 청소기 돌려 구석구석 청소하고 오는 거죠.
기자: 이제는 남의 집에 가서 청소해주는 것이 아니고 내집을 가꾸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은 없으세요?
노경미: 네, 있지요. 그런데 나는 딸이 하나인데 지금은 국민임대 살잖아요. 내집 마련할 때까지는 도와주자는 생각이예요. 사람 욕심이란 것이 끝이 있어요? 소타면 말타고 싶다고 하잖아요. 돈은 쓰자면 아무리 벌어도 끝이 없더라고요.
제2의 고향 오늘은 온성 출신의 노경미(가명)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