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문화기행] 눈깔사탕 - 우는 아이도 달래는 '달콤한 묘약'

경제가 불황일수록 달콤한 음식이 잘 팔린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최근 미국 제과업계의 발표가 이 속설을 증명해주는데요, 경제 침체로 과자의 매출이 다 떨어졌지만 사탕은 더 잘 팔린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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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지 뭐 여러 가지 분석이 있겠죠, 그러나 옛날 눈깔사탕 먹던 추억을 떠올려보면 의외로 답은 간단합니다. 사탕 하나에 얼마나 행복했었는지 말입니다.

달콤한 사탕의 맛은 어린이들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시름과 걱정을 잠시 내려놓고 쉬어 갈 수 있게 만들어 주는데요, 오늘 '남북문화기행', 이 시간에 바로 이 '사탕'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남대문시장입니다. 요즘 불경기라고 해도 시장은 북적북적합니다. 남대문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바로 오른쪽에 사탕과 과자를 파는 도매 집이 모여 있는데요, 오늘은 며칠 앞으로 다가온 '화이트데이' 때문에 진열장이 아주 화려합니다.

형형색색의 사탕을 예쁜 바구니에 담아서 포장해놓기도 하고 알사탕, 막대 사탕, 별 사탕 세상에 나와 있는 사탕이란 사탕이 다 있는 것 같습니다.

사장님 이건 얼마에요? 150개 들었어 한통에 삼만 원이요.

비싸네. 앞쪽에도 많아요.

남대문시장에서 손님이 제일 많은 곳이 지금 여기 사탕 가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도 이곳 사장님은 장사가 예년 같이 않다고 딱 잘라 말하네요.

예긴 불황도 없나 봐요?

안 돼서 죽겠어요.

이렇게 줄을 많이 섰는데요?

3월 14일이 화이트데이입니다. 우리 말로 풀자면 ‘하얀 날’이라는 뜻인데 도대체 무슨 날인지 짐작도 안 가실 겁니다. 남자가 마음에 드는 여성에게 사탕을 주면서 사랑을 고백하는 날이라는데, 유래나 역사가 있는 명절은 아니고 일본 제과회사에 매출을 올릴 목적으로 만든 것인데 남쪽까지 넘어오게 됐습니다.

유래야 어찌 됐던 대한민국 사탕의 3분의 1은 3월 화이트데이 즈음에 팔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식생활이 서구화되고 먹을 것이 풍부해 지면서 남쪽 사람들에게 사탕은 이제는 환영받는 먹을거리가 아닙니다. 설탕이 치아에 좋지 않고 체중을 늘리고 당뇨병이나 심장 질환을 일으킬 위험이 있기 때문에 되도록 먹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요즘 남쪽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집에 귀한 손님이 오면 설탕물로 대접하고 사탕 하나를 온종일 물고 다니면서 자랑했던 일은 마치 딴 세상 얘기 같습니다.

한반도에서 처음 사탕이 시판된 시기는 1946년. 지금은 사라진 해태제과에서 만든 ‘해태 캐러멜’입니다. 그렇지만, 어르신들 얘기를 들어보면 어디서 누가 만들었지 모르는 눈깔사탕, 북쪽 식으로 하면 말 눈깔사탕은 그전에도 팔렸던 것 같습니다. 올해 69세, 전북 남원 출신 최용선 씨의 얘깁니다.

“하나 입에 넣어놓으면 하루 내 먹어요. 그니까 눈깔사탕이 참 좋아. 어렸을 때는 왜 항상 뭔가가 먹고 싶잖아요? 지금 얘들 보면 자기 먹고 싶은 것 다 먹고 그러는데 그때는 먹을 것이 없으니까… 먹다가 딱 모셔놔. 자기만 아는 곳에! 소풍 갈 때도 그 놈 입에 먹고 가면 딱 좋았지. 하여튼 그때는 유일한 희망이었고 할까?”

시골 5일장이 서면, 어머니 아버지 손에 들려 오던 봉지엔 십중팔구 바로 이 눈깔사탕이 들어 있었습니다. 빠듯한 살림살이에 아이들 군것질거리를 챙기려면 그나마 오래 먹을 수 있고 가격도 저렴한 눈깔사탕이 제일 만만했던 같습니다. 요즘 남쪽 말로 하면 ‘가격 대비 성능’이 최고였던 겁니다.

또 눈깔사탕 먹을 때는 절대 깨물어 먹으면 안 되잖아요. 깨물다가 이빨이 부러질 만큼 딱딱하기도 하지만 깨물어 먹기엔 너무 아까워서 두고두고 빨아먹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눈깔사탕 하나를 형이 먹다가 동생 좀 맛보여주고 어느 정도 먹었다 싶으면 다시 형이 뺏어 도로 자기 입에 넣고, 요즘 아이들은 이 얘기를 들으면 지저분하다고 기겁을 하겠지만 그 시절엔 그랬습니다.

최용선 씨와 함북 출신으로 2006년 남쪽에 온 김명철 씨의 얘깁니다.

“이걸 입에 물고 자요. 그럼 이것이 이불에 딱 달아 붙어요. 우리 집은 9남매였는데, 그러니까 이불 덥고 발만 넣고 자는 거야. 그러면 자다가 입에서 나와서 이불에 딱 붙어버려요. 그럼 그놈을 버려야 하는데, 얼마나 먼지가 붙었겠어요. 그래도 그냥 딱 떼어다가 다시 먹지. (웃음) 그만큼 귀했다는 거지.”

“막내 외삼촌이 고등학생이었는데 나 유치원 갈 때는 간식 몰래 가지고 와야 나 저녁에 영화 보러 갈 때 데려간다. 그러면 먹다가 선생님 눈치 보고 딱 넣어오지. 영화 보는데 데려갈까 싶어서. 삼촌도 그게 그렇게 맛있었던 거에요. (웃음)”

아버지가 장에 갔다가 사온 눈깔사탕을 자랑하려고 학교에 가져가서 먹다가 선생님한테 뺏기는 날엔 선생님이 어찌나 원망스러웠지, 또 애지중지 아껴가며 빨아먹다가 잘못해서 목구멍으로 꿀꺽 넘어가면 그건 또 얼마나 서운했는지 모릅니다.

또 돌 사탕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돌 같이 딴딴하고 모양도 조약돌 같은 것이 아무리 먹어도 잘 녹지 않습니다. 남쪽에선 이것을 십리 가도록 녹여 먹는다고 몇몇 지역에선 ‘십리 사탕’ 이라고 불렀는데요, 북쪽에선 ‘무산평양 사탕’이라는 다른 이름도 있었다고 합니다. 남쪽에도 아직 돌 사탕이 나오는데요, 포장지 앞에 큼직한 글씨로 주의사항이 쓰여 있습니다. “깨물어 먹지 마시오. 치아가 부러질 수 있습니다.”

“그냥 딴딴하고 오랫동안 녹여야만 하는 사탕, 돌 사탕인데 이걸 우리는 또 무산평양 사탕이다 이렇게 부르기도 했어요. 무산에서 평양까지 급행열차가 있었는데, 급행이라 봤자 13시간이나 걸렸지만 가는 내내 먹는다고… (웃음)”

함북 출신으로 1999년 남쪽에 온 탈북자 김진희 씨의 얘기였습니다.

눈깔사탕이며 돌 사탕, 그리고 손가락 과자…

이런 것들은 전쟁 전에 나온 남북이 함께 먹고 자라온 먹을거리입니다. 하지면 여기까지. 이후에 나온 과자나 사탕, 초콜릿 같은 간식은 이제 남북이 천양지차입니다.

지난해 초 저희 방송국으로 물건이 하나 배달됐는데요, 바로 북한에서 2월 16일과 4월 15일 날 아이들에게 주는 ‘과자 보따리’ 였습니다. 이걸 본 방송국에 오는 탈북 방송인들의 반응은 똑같았습니다. 처음엔 반가워하고 그다음엔 화를 냈습니다. 고향의 물건을 보고 반가워했지만 남쪽에 비하면 너무 초라해 보이는 이 과자 봉지를 기다리는 고향 아이들 생각에 안타까워했습니다.

정영 기자의 말입니다.

“저 봉지를 사실, 돈이 귀해서 아이들 먹을 것을 파는 부모도 있거든요. 그래서 저 봉지를 받은 아이가 저걸 못 먹었구나 그런 마음도 들도. 한편으로 서글프기도 해요. 남쪽 상점을 가보면 막 쌓였거든요.
저것보다 잘 포장돼 있지만, 유통기한이 지나면 다 버리거든요. 아마 그것이 1킬로그램이 될 텐데, 그것을 참 좋아하고 우리 또 좋아했던 시절을 생각해보면 가슴이 아프고 한편으로 좀 서글프더라고요.”

남대문시장에서 제가 오늘 사온 눈깔사탕은 하나에 5백 원, 0.5 달러 정도입니다. 돌 사탕은 100개 들이 한 봉지에 5천5백 원. 약 4달러 정도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눈깔사탕이나 돌 사탕은 이제 아이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먹을거리라기보다는 그냥 옛날 생각하면서 아니면 신기해서 한 번씩 먹어보는 추억의 부스러기가 됐습니다.

요즘 사탕 하면, 혁신적인 발명품이라는 막대 사탕. 사탕에 막대를 꼽아서 손이나 입 주변에 끈적거리는 사탕 물이 묻히지 않게 만든 사탕입니다.

사탕 맛도 오렌지, 사과, 딸기 과일 맛부터 커피 맛, 누룽지 맛 사탕까지 나옵니다. 목에 좋다는 목 사탕에 잠을 깨우는 사탕도 있고 치아에 좋다는 자일리톨 사탕까지 사탕도 이제 기능 시대입니다.

“ 저 누룽지 사탕 좋아해요. 너무 맛있는 것이에요. 그리고 점심 먹은 다음에는 커피 사탕도 잘 먹고요. 이게 아주 싸서 한 봉지를 사서 잘 가지고 다녀요.”

도대체 누룽지 맛 사탕은 뭘까 궁금하실 것 같은데요, 구수하면서 달달한 이 누룽지 사탕. 아마 김지은 씨처럼 우리 청취자 여러분도 아주 좋아하실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북한에서 아동병원 의사로 일했던 김진희 씨는 남쪽의 사탕을 볼 때마다 고향의 아이들의 얼굴을 잊을 수 없다는 말도 잊지 않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 탈북 방송인들 물론 방송국의 있는 모든 기자가 북한에서 온 과자 봉지를 보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세상에 부럼 없어라’라고 쓰여 있는 과자 봉지.이걸 받고 북쪽 어린이들이 정말로 세상에 부럼이 없을 것 같아서 더 가슴이 아팠던 같습니다.

언젠가는 남쪽의 형형색색의 사탕들을 북쪽 어린이들에게, 누룽지 사탕을 저희 청취자들에게 맛보여줄 수 있는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남북문화기행 ‘사탕’ 편, 자전거를 탄 풍경의 ‘너에게 난 나에게 넌’ 들으면서 오늘 시간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