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시대] 푹빠져버린 콘서트장 경험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성시대 이시영입니다. 고향에서 추운 날씨에 일상의 여유보다는 빡빡함으로 매일매일 삶의 전투장에서 고생하실 여러분께 매번 즐거운 이야기만 전해드려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탈북 여성들은 이곳에 정착하면서 시간이 갈수록 일상을 즐길 줄 아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고 습관처럼 말합니다. 정착 5년까지는 아무도 모르는 대한민국에서 경험하지도 못한 다양한 일거리, 같은 말 다른 느낌으로 들리는 언어 긴장함의 연속입니다.

적응하느라 온몸의 신경이 긴장 상태에 있다가 6년이 되면 몸도 마음도 슬슬 아파지기도 합니다. 몸은 발전된 남한의 병원에서 치료할 수 있지만 외로운 마음은 고향 언니들 동생들이 위로해 준 덕분에 치유가 되는 것 같습니다.

북한에 가족이 남아있는 탈북 여성들은 고향을 떠난 이후로 한순간도 가족 걱정을 내려놓을 수 없는 숙명 속에 살고 있고 이곳에서 누리는 모든 행복이 미안하기만 하다고 한답니다. 시영이는 그나마 어머니랑 4촌 자매들이 함께 있어 외로움보다는 즐거움이 두 배가 됩니다.

그런데도 고향에 남겨진 가족들과 친척들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날이 참 많습니다.

며칠 전에는 대한민국에서 처음 경험했던 팬 문화를 경험했습니다. 이곳에서는 덕질 문화라고도 하는데 덕질은 어떤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하여 그와 관련된 것들을 모으거나 파고드는 일을 말합니다.

콘서트장을 찾아서

청취자님들도 남한 드라마나 노래 뮤지컬, 아이돌 공연 등을 좋아하시죠? 여전히 몰래 목숨을 걸고 시청하시고 부르시죠? 이곳에서는 당연하게 일상에서 누리는 문화생활의 일종인데요. 그렇다 보니 좋아하는 연예인이나 가수들을 팬 활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영이는 몇 년 전부터 텔레비전에서 진행하는 ‘미스터트롯’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임영웅 가수의 팬입니다. 아직 덕질까지는 아니지만 그분의 목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특히 어머니가 너무 좋아하셔서 간접적으로 세뇌된 팬이기도 하답니다.

고향의 형제들이 그리워 밤을 새울 때면 임영웅 가수의 노래가 위안이 되었다고 어머니는 말씀하십니다. 이곳 연예인들과 가수들은 본인의 실력에 따라 수입이 천차만별입니다. 무명가수로 활동하다 유명해지면 돈을 순간에 벌어들이는데 그 모든 수입의 원천은 국민입니다. 국민의 사랑이 얼만큼 큰가에 따라 수입이 늘어나며 청취자들의 눈 밖에 나는 행동을 하면 수입은 바닥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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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는 김부자의 찬양가만 부르다가 그나마 눈에 들면 발전하고 미래가 창창해진다고 하죠 그런데도 어처구니없는 월급과 적은 배급으로 생계를 겨우 유지하죠. 하지만, 이곳에서는 대중이 좋아하는 정도가 연예인의 가치라고도 볼 수 있고 수입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아무튼 전 국민의 대다수가 좋아하는 임영웅 가수의 공연 관람권은 제 노력으로 구매할 수 없더라고요. 가격이 비싼 데도 있지만 컴퓨터로 순간에 판매되는데 저는 매번 속도가 느려서 도저히 구매 불가영역이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가수분 중에 김희재 가수의 콘서트 관람권을 구매했죠. 어머니와 고향 언니들을 모시고 공연 구경을 떠났습니다. 자가용을 타고 언니들이 모였는데 북한 여성들 대단합니다. 7명이 모였는데 글쎄 자가용이 5대가 줄을 섭니다. 서로 다른 모양 색깔의 자가용 차가 도로를 누비며 공연장 주차장에 도착했고 이미 수많은 여성이 공연 관람을 위해 대기하고 있었어요.

대한민국 50대 여성들을 주로 이루는 공연장에는 남자분들은 몇명 안보이고 모두 여성들이었습니다. 대략 1,500명 정도인 듯했습니다. 입장표 가격은 1인 $150달러 정도인데 그것도 희재 팬이라면서 하루 두번 보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김희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단체 색깔의 패딩 장갑, 모자 가방을 구매하여 착용했는데요. 정말 누구의 의사도, 지시도, 상관없이 개인이 좋아하는 취미이고 일상생활이라니 아무리 10년이 넘은 시영이도 콘서트장에서 놀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북한과는 너무 다른 공연문화

가수의 공연이 시작되었는데 북한과 너무 다른 공연장, 모든 관객과 가수들이 하나가 되어 소리를 지르고 손뼉을 치고 김희재 가수님은 어릴 때부터 노래를 잘 부르기로 소문난 신동이었는데요. 얼마나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 추시는지 그날 공연을 보고 저도 김희재 팬이 되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가수분 1명이 추가되었다고 볼 수도 있지요.

1시간 40분 넘게 이어지는 공연은 분위기가 조용해질세라 춤추고 노래 부르고 여기저기에 번쩍거리는 무대 조명이 돌고, 세상에 이런 멋에 콘서트를 오는구나! 이게 바로 자본주의 공연문화구나! 입을 벌리고 다물지를 못했답니다.

북한에서는 김부자를 호위하는 군인들을 자주 보는 데 그날 가수가 무대에서 내려와 객석을 돌면서 팬들이랑 손을 잡고 셀카도 찍어주는데 주변에 체격 좋은 호위병들이 따라다니면서 사람들의 안전도 가수의 안전도 지켜주더라고요.

개인이 공연하는데 이렇게 큰 무대에서 몇십 명도 넘는 안내원들이 또 호위병들이 있다니 신기하지 않을 수 없다가 또 고향에 있는 친구들의 얼굴이 생각납니다. 노래를 잘 불러 해마다 설맞이 공연에 참여하던 친구도 또 피아노를 잘쳐서 국제무대에서 메달을 타왔던 친척 동생도 이곳에서 태어났으면 국민이 좋아하는 가수로 또 피아니스트로 화려한 무대에서 사랑을 받았을지 모른다는 생각이요.

친구와 함께라면 좋을 것을

공연을 마치고 가수님은 관람하신 팬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진심으로 전했고 눈에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어요. 배고픔을 참으며 몇 달 동안 죽을 고생을 하여 열병식 한번 참가하고 10년 만에 표창 휴가를 왔던 옆집 오빠도 생각이 납니다.

대학시절 방학도 집에 가지 못하고 수업도 듣지 못하고 아리랑 공연에서 밤낮없이 훈련하고 사탕 2㎏을 받고 4년제 대학을 7학년까지 다녀야 하던 상급생 언니의 얼굴도 생각이 납니다.

공연을 보면서 신나게 손뼉을 치고 함께 노래 부르던 분위기가 조용해지니 이것저것 다양한 생각들이 떠오르면서 마음이 쓸쓸해졌답니다. 그것도 잠깐 언니들이 수다를 떨며 한자리에 모였고 우리는 7첩 반찬이 나오는 한식집에서 맛있는 저녁을 먹고 기대되는 다음 만남을 약속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어머니는 “죽기 전에 통일 되야 할텐데, 마음만 조급하구나’라고 말씀하시면서 차창 넘어 고향 땅을 그려보셨습니다. 하루빨리 양강도 저의 고향에서도 즐거운 노랫소리가 울리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RFA 자유 아시아 방송 이시영이었습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편집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