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경] ‘그 날이 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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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남한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영화가 하나 있습니다. ‘1987’이라는 영화인데요, 461만 명 이상이나 이 영화를 봤다고 합니다.

영화 ’1987’은 남한의 민주화를 만들어냈던 1987년 6월 민중항쟁의 배경이 된 사건을 묘사한 영화입니다. 서울대 언어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이던 박종철이 그 해 1월 14일에 치안본부 대공수사단의 취조를 받던 중 사망한 사건과 이 사건을 알리기 위해 평범한 사람들이 개인의 희생을 무릅쓰고 노력하는 모습들이 영화에서 그려집니다.

영화는 당시 전두환 정권이 이 사실을 은폐하려고 하고 언론과 시민사회는 박종철의 사망은 고문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을 폭로하려고 노력하는 이야기로 전개 됩니다. 당시 1980년대만 하더라도 남한도 언론의 자유를 제한 받던 시기입니다. 정부가 ‘보도지침’이라는 것을 각 언론사에 내려보내고 언론사는 이에 따라 정부를 비방하거나 정부에 불리한 내용은 보도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용기 있는 한 기자가 ‘경찰에서 조사받던 대학생 쇼크사’라는 짧은 기사를 내보내게 됩니다. 이 기사가 발단이 돼 박종철 사망사건이 국민의 조명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전두환 정권은 이 사건을 축소 은폐하고 당시 전국민의 염원이던 개헌요구를 거부해 정권유지를 도모하려 했습니다. 사건을 무마할 목적으로 박종철을 죽인 대공수사단 7명의 수사관 중 2명만 책임 있는 것으로 사건을 축소 조작해서 2명만 구속수감합니다. 전두환 대통령은 4월 13일 전국민이 희망하는 헌법 개정 요구를 묵살하고 기존헌법을 수호하며 간접선거를 통한 대통령 선거를 치를 것이라고 담화문을 발표했습니다. 국민들은 더 거세게 분노하기 시작했습니다.

구속된 2명의 대공수사단 수사관이 수감돼 있던 영등포교도소에 공교롭게도 남한의 대표적 재야인사인 이부영이 수감돼 있었습니다. 이부영은 교도소의 분위기가 이상한 것을 감지하고 교도소의 보안계장을 통해 대공수사단의 박종철 사건의 진위를 파악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내용을 편지로 썼고 한 교도관을 통해 외부로 빼돌려 재야의 민주화 운동가에게 전달하게 됩니다. 5월 18일 서울의 명동성당에서 열린 ‘광주 민중항쟁 제 7주기 미사’에서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김승훈 신부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이 조작되었다’라는 성명서를 마침내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발화점이 되어 6월 민중항쟁은 전 국민의 거사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이 설명은 영화의 내용이자 실제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내용이기도 합니다. 이 과정에서 이부영의 편지를 빼돌려 사회로 나오게 만들었던 보통 서민의 모습도 영화에서 보여줍니다. 1987년에 대학교에 입학한 연희라는 여성인데요. 이부영의 편지를 전달 받은 교도관의 질녀로 실존인물은 아닙니다만 당시 보통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역할을 합니다. 연희는 “이런다고 세상이 달라지냐”고 따집니다. 연희의 삼촌도 연희가 좋아하는 학교선배도 일신의 위험을 무릅쓰고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바쁩니다. 연희는 남은 가족의 아픔은 어떻게 하냐며 그래도 세상은 여전히 제자리 걸음일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연희가 보게 되는 6.10항쟁의 백만인파의 모습은 세상은 보통사람들의 작은 노력으로 그렇게 변한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보여줍니다.

저는 이 영화를 서울을 방문했던 독일의 북한인권운동가들과 함께 봤습니다. 독일인 친구들은 독일에서 북한인권 실상을 유럽국가에 전파하는 활동을 하고 있는데요. 영어자막이 없어서 이해하기 힘들 걸 알면서도 꼭 보고싶다고 하여 함께 관람했습니다. 독일 친구들은 한국 사회의 편리한 시설들과 발전된 여러 모습들에 좋은 인상을 받고 있었습니다. 또 한국사람들이 다른 사람물건을 훔쳐가지 않고 잃어버린 물건은 꼭 주인에게 돌려주는 습관에 큰 감동을 받던 중이었습니다. 영화를 본 이후에는 이 친구들은 한국이 더더욱 사랑스러워졌다며 한국의 과거가 그렇게 험혹했는지 상상할 수 없었다고 놀랐습니다. 또한 일반주민들을 길거리에서 무작위로 검열하고 구타하던 시기에서 현재의 엄청난 인권 향유국이 된 것 자체가 대단한 국민의 성공이라고 칭찬했습니다. 그런다고 세상이 달라지냐고 당시에도 많은 사람들이 생각했지만 그렇게 해서 세상이 변하고 사람들의 의식이 발전했습니다. 1987년 당시 사람들은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발전된 국가가 됐다는 사실이 독일 친구들 앞에 자랑스러웠습니다.

영화 ‘1987’은 당시에 거리로 뛰어 나왔던 사람들이 불렀던 노래를 들려주면서 끝이 나는데요. ‘그날이 오면’이라는 운동가요입니다. 가사의 한 구절을 들려드리면 이렇습니다. “한밤의 꿈은 아니리 / 오랜 고통 다한후에 / 내형제 빛나는 두눈에 뜨거운 눈물들 / 한줄기 강물로 흘러 고된 땀방울 함께 흘러 / 드넓은 평화의 바다에 정의의 물결 넘치는 꿈 /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