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경] 문화와 정보 즐길 권리 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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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0일, 김정은의 친형인 김정철이 영국 런던의 한 공연장에 나타나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습니다. 일본의 한 텔레비전 방송사가 김정철이 어느 공연장에 등장한 것을 영상에 담아 내보냈기 때문입니다.

김정철이 런던에 간 이유는 영국인 기타 연주자이자 대중음악 작곡가이면서 가수인 에릭 클랩튼이라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예술인의 공연을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김정철은 수행원들과 함께 이틀 연속으로 공연을 관람했다고 합니다.

이 공연의 관람료는 제일 싼 것이 중국 돈 1천240위안, 미화로는 200달러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런던에 머물면서 숙박한 호텔은 첼시하버라는 최고급 호텔로 하루 밤 숙박료가 최고 2만1,300위안, 미화로는 3천400달러를 웃도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에릭 클랩튼 공연장에서 김정철이 목격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2006년 독일, 2011년 싱가포르에서 열린 공연에서 언론에 포착됐고 이 사실은 남한은 물론 해외 각국 언론들에도 크게 보도됐습니다. 당시 언론의 보도와 여론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요. 국민들은 가난에 허덕이는데 그 비싼 비용을 들여서 해외까지 가서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을 관람한 것에 대한 비판이었습니다.

세계여론의 비판도 일리 있는 비판입니다만, 저는 이번 기회를 빌어 북한의 인간으로서 보장 받아야 하는 권리 즉 인권 상황에 대해 지적하고 싶습니다. 문화를 즐기고 누리는 것도 인간으로서 보장받아야 하는 하나의 권리이므로 누구든 자신이 좋아하는 문화를 즐기고 누리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런 종류의 권리에 대해서 유엔이 정한 '경제 사회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에 잘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북한도 1981년에 이 규약에 가입했고, 일단 규약 가입 국이 된 이상 국제규약을 잘 지키고 따라야 하는 것이 회원국의 임무입니다. 굳이 이런 국제규약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김정은도, 김정철도 그리고 일반 북한주민들 누구나가 문화 활동에 참가하고 즐길 권리를 보장받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북한당국의 문화정책은 어떻습니까? 북한당국이 남한이나 서구의 발전된 드라마나 영화, 노래 등을 비사회주의 요소라며 차단하는 것은 너무나 잘 알려진 것으로 비단 1, 2년 전부터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과거 김일성 시기부터 서양 고전문학을 금지했습니다. 1967년 5월 25일 김일성이 한 연설을 바탕으로 나온 5.25교시에 따라, 당국은 도서관에 있는 소련문헌을 포함하여 모든 외국문헌을 없애버립니다. 이에 따라 70년대 중반까지 진행된 대대적 문화말살 정책을 통해 전국의 모든 가정과 직장의 책들이 일일이 검열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수령우상화가 뿌리내리고 항일투쟁을 절대화했으며 수정주의나 부르주아 문화요소가 있다고 간주되는 모든 책들과 고전음악 악보, 예술작품 등은 모두 없애버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비사회주의 날라리 황색바람이라고 치부하며 남한과 서양 문화를 읽고, 보고, 듣는 것을 범죄로 만들었습니다. 과거 90년대 말과 2천년 대 초에는 남한노래를 불렀다는 이유로 정치범수용소 즉 관리소에 수감되는 사례들도 많이 있었고, 자본주의 황색바람과 불순한 사상에 물들었다는 이유로 개성공단 근로자들이 해고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또 자본주의 바람을 막기 위해 국경 연선지역에서 대대적인 검열을 진행하고 최근에는 불법 녹화 물을 밀수하는 국경 경비대원과 주민들을 엄벌하라는 지시도 내려왔다고도 합니다.

주민들의 문화적 요소뿐만 아니라 선진화된 외부지식과 정보에 대한 열망과 추구도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북한당국은 TV도 라디오도 모든 정보를 취할 수 있는 기기들은 모두 당국에 등록시켜서 채널을 고정시킴으로써 외부정보와 지식의 통로를 막았습니다. 그런 통제에도 불구하고 북한주민들은 USB나 SD카드, 노트텔, 녹화기 등을 이용해서 외부 드라마와 영화 그리고 외국 라디오 방송을 숨죽이며 즐기고 있습니다.

김 씨 일가만 해외까지 나가서 자신들이 좋아하는 서구문화를 즐길 수 있고 일반 주민들은 황색 날라리 바람이 들었다고 교화해야 한다고 억압하는 것은 그 자체가 모순이자 독재 체제의 대표적 상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북한당국은 주민들의 당연한 권리이자 본성인 발전된 문화와 지식에 대한 관심과 추구를 폭압과 통제로 다 막을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주민들의 이 같은 문화에 대한 열망은 막을 수도 없거니와 막아서도 안 됩니다.

이제 남한 정부도 북한주민들이 문화와 정보, 지식을 자주 접하고 이를 마음껏 즐길 수 있도록 이들의 문화향수의 권리를 증진시킬 방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지원해야 할 때입니다. 먹고 사는 문제 뿐 아니라 북한주민들의 문화와 지적 생활을 보장함으로써 남북주민들의 의식과 지식수준을 맞추는 것 또한 통일의 지름길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