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말에 북한 문화에 대한 재미있는 보고서 하나가 나왔습니다. '텔레비젼 연속극과 사회주의'라는 보고서인데요, 북한의 최근 텔레비젼 연속극을 분석해서 변화하고 있는 김정은 정권의 정책을 해부한다는 취지로 나온 연구보고서입니다.
보고서를 쓴 진리라는 연구원은 2013년부터 몇 년간 AP통신의 평양지국장으로 일하면서 평양에서 몇 년을 생활했기 때문에 김정일 시대와 김정은 시대의 대중문화의 차이점을 깊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김정은 시절에 텔레비젼 연속극 즉 드라마가 많이 변화발전한 것을 발견하고 보고서를 썼답니다.
이 보고서의 주요 논점은 김정은 정권이 들어선 이후 북한 텔레비젼 연속극이 많이 진화 했다는 점입니다. 김정일 시절에는 충성심을 강요하고 이데올로기와 국가중심의 가치관을 강조하는 영화가 주류였다면 지금은 주민들의 일상생활을 묘사하고 국가보다는 가족 중심의 행동과 사고방식을 부각하는 내용으로 변했다는 겁니다. 김정일 시대에는 영화와 텔레비젼이 사상과 이념의 교육수단이자 당과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강요하는 매체로 활용됐는데, 지금은 텔레비젼 연속극을 통해 이상적인 삶은 어떤 것인지 광고합니다. 김정일이 "영화는 혁명과 사회주의 건설을 위한 강력한 이념적 무기"라고 주장했던 것과 비교하면 온화한 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고서가 설명하는 북한 텔레비젼 드라마의 목적은 사회적 문화적 정형을 바로 세우는 것입니다. 즉 김정은 당국은 북한 사회에서 훌륭한 시민이 되는 것은 어떤 것인지 텔레비젼에서 보여줍니다. 당국에 충성하고 국가적 이익을 발전시키기 위해 과학과 새로운 기술을 활용하고 문제해결을 위해 창조적으로 생각하는 것, 그리고 긍정적인 태도로 국가의 경제적 어려움에 대처하기 등이 바로 이상적인 시민의 태도라고 설명합니다. 또 최근 젊은 사람들의 주목을 효과적으로 끌어내기 위해서 젊은 세대들이 드라마 주인공으로 등장하며 드라마의 배경도 고층아파트나 컴퓨터 연구실, 엘리베이트 등 현대화된 설정이 많고 소품도 노트품이나 드론, 최근 유행하는 의상, 금팔찌 등을 활용해 젊은 세대의 눈을 사로잡는다고 설명합니다. 지금의 드라마는 현실적이고 사실적으로 발전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현실을 반영한 청년들의 일상생활, 전기가 부족한 현실, 청년기의 반항심, 부부간의 갈등이나 탈북에 대해서도 드라마에서 간접적으로 비춘다고 합니다.
이런 변화들은 청취자 여러분들이 더 직접 느끼고 있겠지요. 드라마 소재와 내용의 변화는 최근 달라지고 있는 북한주민들의 문화적 취향이 어느 정도는 반영된 듯 보입니다. 김정은이 집권한 이후 바로 탈북한 탈북민들은 조선중앙텔레비젼 방송은 전기가 없어도 청취하지 못하지만 재미가 없기 때문에 아무도 안 본다는 얘기들을 많이 합니다. 거의 대부분의 주민들이 알판이나 SD카드와 USB로 월등히 발전돼 다양한 재미를 주는 남한 드라마나 영화를 즐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북한주민들의 문화적 교양과 눈높이가 남한만큼이나 높아졌는데 북한당국이 예전식의 고루한 드라마만 계속 고집할 수는 없기 때문일 겁니다.
물론 이 변화가 큰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만 좀 더 멀리 생각해보면 북한사회 변화의 변곡점을 만들어 내고 있는 건 아닌가 감히 생각해 봅니다. 역사적으로 문화적 취향의 변화와 발전이 사회적 발전과 연계돼 사회와 국가가 진보한 사례들이 무수히 많기 때문입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남한의 문화적 발전과 민주화의 역사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1960년대 말부터 70-80년대를 이끈 남한의 청년문화와 저항문화를 들 수 있습니다. 물론 60년대 말 남한의 청년문화는 미국 중심의 서구 사회의 저항정신을 담은 대중음악의 영향이 컸습니다. 그래서 청바지를 입고 다니고 통기타를 치며 기성세대에 대한 반항심을 노래하고 다양한 문화적 매체로 표현하는 경향이 생겨났고 사회전반에 큰 유행으로 퍼졌습니다. 물론 당시 남한은 박정희 군사독재 하에서 반체제, 정치 풍자 등이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대중문화를 검열하고 단속 했습니다. 그래서 대중문화 예술인들이 감옥에 갇히는 사례가 무수히 많았습니다. 하지만 검열과 처벌로 청년들의 대중문화 물결을 잡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저항정신을 담은 대중문화는 수 많은 사회 변혁운동 정신을 담은 가요와 각양각색의 민중문화로 꽃을 피웠고 1987년 남한의 민주화 열풍으로 이어졌습니다.
지금 남한의 대중문화는 세계의 대중문화를 주도하는 대열에 있을 정도로 수준이 높습니다. 세계적 수준의 높은 문화적 영향을 받은 북한주민들 특히 청년세대의 문화 취향이 북한당국의 선전선동 수단인 텔레비젼의 내용과 수준을 높이고 있다니 놀랍습니다. 긴 인류역사의 궤도를 봤을 때 문화적 발전은 되돌아 역행하는 법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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