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주간 저는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인권단체 활동가들과 법률 연구원들, 대학교 학생들을 만나서 북한의 인권상황에 대해서 설명하는 활동을 진행했습니다. 아르헨티나는 남미주 대륙의 남쪽 지역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덩치가 큰 나라이고 경제력에서는 세계 20위권의 강대국이며 민주적인 대통령 선거를 실시하는 민주화를 이룩한 국가입니다. 하지만 남한과 유사하게 1970년대 군부가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해 민간인을 무참히 희생시킨 참혹한 현대사가 있는 나라입니다.
오늘은 아르헨티나가 과거 70년대 중후반에 겪었던 처참한 인권유린을 간략히 설명 드리면서 북한의 인권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아르헨티나 역사에서 1976년부터 1983년까지 시기는 '추악한 전쟁'이라고 불리는 군부독재의 무자비한 인권유린의 시기였습니다. 역사는 이 시기의 군부독재를 ‘청년들의 대규모 강제실종’이라는 주제어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1976년 3월 육군참모총장이던 호르헤 비델라(Jorge Videla) 장군은 쿠데타를 일으키고 권력을 장악합니다. 전 대통령이던 페론을 지지하는 사람들이나 쿠데타에 저항해 게릴라에 가담한 청년들, 좌익적 사고를 하던 노동자나 법조인, 군부독재를 반대하던 정당 지도자나 당원들, 학생들, 지식인 등을 무차별적으로 납치해 감금하고 죽이기도 했습니다. 비델라 장군은 당시 '아르헨티나 식의 생활양식을 반대하면 그 누구라도 불순분자로 규정'해 잔인하게 탄압했습니다. 탄압과 인권유린의 이유가 북한 당국이 주장하는 것과 같은데요, 이들을 감금하는 방식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아르헨티나 군부독재 정권은 북한의 정치범관리소 형식의 비밀 감옥을 운영해 납치해온 청년들을 수감하고 고문했습니다. 수감자의 수가 많아지자 일부는 헬리콥터를 태워서 데리고 나가 큰 강 한가운데 빠뜨려 죽이는 등 각양각색의 잔혹한 비인간적인 유린을 자행 했습니다.
국민들이 선출한 대통령인 라울 알폰소가 1983년에 정권을 잡으면서 군부독재 치하에서 일어났던 비참한 인권유린 실상이 폭로되기 시작했고 군부에 대한 재판도 진행됐습니다. 인권단체들은 '추악한 전쟁'의 8년 동안 3만 명 가량의 주민들이 실종돼 죽음을 당했다고 밝혔습니다. 진상조사위원회도 설치해 희생자를 조사하고 가족에게 피해를 보상하는 등의 정책도 시행했습니다.
‘추악한 전쟁'이 진행 중이던 1977년 실종자들의 어머니들 14명이 대통령 집무공간 앞에 있는 오월 광장에서 데모를 시작했습니다. 이 용감한 어머니들은 흰색 수건을 머리에 두르고 납치돼 강제실종된 자식들을 "산 채로 돌려달라"고 외치며 비폭력 시위를 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실종자 어머니들의 시위는 지금도 오월광장에서 매주 목요일 오후에 진행됩니다. 어머니들은 여전히 “우리 자식들은 실종 됐을 뿐이다. 산 채로 돌려 보내라”는 구호를 외치며 인간생명의 귀중함과 인권의 가치를 확산하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토요일에 오월광장을 둘러봤기 때문에 어머니들의 집회는 참관하지 못했지만 집회에 사용되는 선전판과 바닥에 그려진 어머니들의 흰색 두건 모양이 당시 실종자 어머니들의 애타는 심경을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아르헨티나의 납치와 강제실종 문제는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던 군부독재 정권에 의해 과거 80년대 초반까지 진행됐던 사건입니다. 북한 당국에 의한 납치와 강제실종은 전쟁시기부터 바로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어서 국제적인 우려가 큽니다. 지난 15일에는 북한에 17개월이나 억류됐던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 씨가 혼수상태로 미국으로 인도됐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웜비어 씨는 단지 호텔에 있던 정치선전물을 가지려했다는 이유로 노동교화형 15년 형을 받았습니다. 일반적인 국가에서는 이런 경우 벌금 조금 내는 수준으로 끝날 일입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무거운 형량을 받은 것도 몰상식한 일이지만 수감 중 무슨 일이 있었는지 혼수상태에 빠져서야 본국으로 석방하는 비인간적인 경우가 발생했다는 것도 충격적입니다.
웜비어 씨에 대한 뉴스 보도를 계기로 국제사회는 강제로 북한에 억류돼 교화소에 수감돼 있는 외국인들에 대해 걱정하기 시작했습니다. 북한 당국이 정치적 협상도구로 활용하기 위해서 미국인, 캐나다인, 한국인들을 억류해 구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단순 납치 뿐만아니라 납치한 사람들의 생사를 알려주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납치사실 마저 인정하지 않는 인권범죄인 ‘강제실종’의 경우는 더 심각합니다. 강제실종 희생자는 탈북을 시도하던 북한 주민들부터, 북한 내에서 정치범관리소로 사라져간 사람들, 일본이나 태국 등 외국에서 납치해 간 사람들로 그 규모가 얼마만큼인지는 짐작할 수도 없을 정도입니다.
세계는 인공지능을 통한 4차 산업혁명을 이야기 하는 2017년 현재, 북한은 아직까지 전근대적이고 봉건적인 인권유린인 강제실종과 납치문제로 국제사회의 우려를 자아 내고 있습니다. 아르헨티나의 '오월광장의 어머니회'가 주장하는 "산 채로 돌려보내라"는 구호를 북한 당국의 귀에 큰 소리로 외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