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가뭄으로 인한 농사걱정이 점점 커지고 있는데요. 북쪽만 그런 건 아닙니다. 남한의 기상청은 서울, 경기, 강원 지역의 누적 강수량이 다른 해에 비해 57프로에 그친다고 밝혔습니다. 강원도의 경우는 평년에 비해 41프로에 불과한데 이는 1973년부터 강우량을 관측한 이래 세번째로 가장 적은 강수량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북쪽 상황은 더욱 심각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남한 통일부가 6월 9일에 내놓은 자료에 의하면, 북한의 곡창지대인 황해도와 평안도의 경우 5월 강수량이 평년에 비해 각각 46.9프로, 61프로였다고 합니다. 만약 가뭄이 7월 초까지 진행된다면 북한의 식량생산량이 전체 15-20프로 정도 감소할 것으로 통일부는 내다봤습니다. 북한의 가뭄은 2년 연속 지속되고 있어 누적되는 피해로 인해 그 후과가 더 커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지난해 봄에 겪었던 가뭄은 기존에 저장돼 있던 용수를 활용해 피해를 많이 줄일 수는 있었다고 합니다. 그 결과 2014년 북한 전체 식량 생산량은 그 전 해에 비해 큰 차이 없이 1만 톤 정도가 줄어든 480만 톤이었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상황이 더 악화될 것으로 예측됩니다. 남한 통일부의 전망처럼 20프로가 감소한다면 북측의 올해 식량생산량은 380만 톤 정도로 하락하게 됩니다.
1990년 말 고난의 행군시기의 작황은 한 해 350만~370만 톤 수준으로 올해 예상되는 식량 생산량과 많은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물론, 모든 주민이 거의 100프로 배급에만 의존하고 당과 수령만을 바라보며 배급을 기다리던 1990년 중반과 지금의 상황은 많이 다릅니다. 그래서 대량 아사 사태가 발생하지는 않겠지만 절대적인 식량생산량이 줄어드는 것은 분명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미 북한 내부 소식통들은 가뭄으로 인해 생겨나는 피해가 눈에 보인다고 전합니다. 올감자 수확기가 다가 왔는데 수확이 신통치 않아 장마당의 올감자 가격이 작년 같은 시기보다 3배나 높은 가격에 팔리고 있는 상황이고 덧붙여 관수설비가 미약한데다가 전기까지 부족해 가뭄에 대처하는 능력이 거의 없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북한 내부에서 들려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북한당국의 대책은 어떤 것이 있는지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지난 5월 말경 북한당국은 노동신문의 기사와 논평으로 주민들과 간부들에게 차질 없는 농사임무 완수를 재촉하고, 모내기철이 시작됨으로써 ‘모 살이율을 무조건 100퍼센트로 보장하여야 한다’며 ‘모판솎기, 잎 자르기 등 방법을 총동원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또한 ‘수령의 사상과 업적을 빛내기 위한 투쟁에서 뚜렷한 삶의 자욱을 새길 것’을 촉구했습니다. 이에 앞서, 김정은 제 1비서도 올해 신년사에서 물절약형 농법을 받아들여서 가뭄을 이겨내라고 주문했으나, 물절약형 농법이 어떤 것인지 구체적인 언급은 이후에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지난해 2월에 나온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의 보고서에도 북한의 기아사태에 대하여 다루면서 식량문제에 대한 우려를 표한 바 있습니다. 보고서는 ‘북한의 고도로 집중되어 있는 체제 하에서 식량과 관련된 모든 결정, 특히 식량 생산과 배급, 국가재정 할당, 인도주의 지원 관련 결정이나 국제지원의 활용에 대한 결정 등이 근본적으로 일반주민들과는 상관없는 고위관료들에 의해 행해진다고 지적했습니다.
보고서는 이어서 ‘북한의 법령과 정책을 포함한 구조적 문제들은 적절한 식량에 대한 권리와 굶주림으로부터 벗어날 자유를 위반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이런 식량 문제도 역시 생명권과 직접 관련된 기초적인 인권 문제의 영역입니다.
남한의 기상학자들은 올해를 기점으로 한반도에 대가뭄이 닥쳐올 것이며 최소 3년에서 10년은 가뭄으로 고생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고 있습니다. 이 전망이 맞는다면 북한은 장기적이고 실질적인 가뭄 대책을 세우는 것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그러나 전기설비를 비롯한 필수적인 사회기반시설이 무너져버린 지 오래고 주민의 노력 동원에만 의존하고 있는 북한 당국의 능력으론 역부족이라는 생각입니다.
세계 식량 계획이나 유엔 식량농업기구 등 국제기구를 비롯해서 남한정부, 그리고 인도주의 지원 단체들이 언제든지 북한과 더불어 북한의 식량문제 논의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단기적으로는 관개시설, 농업 관련 지원 그리고 인도주의 식량 지원에 대한 논의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산림복구사업 등 다양한 가뭄극복 방안이 논의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에 앞서 선행돼야 할 것은 북한당국이 북한의 농업현실을 인정하고 국제사회에 손을 내미는 일이 우선되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