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고난의 행군도 벌써 20여 년 전의 일이 됐습니다. 지금도 북한의 식량 사정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지만 장마당을 통해 주민들이 스스로 생존하는 법을 터득한 덕분에 20여 년 전과 같은 대량 아사 사태는 더 이상 일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이처럼 북한에서 장마당은 사회의 많은 것을 바꾸었습니다. 북한 당국의 정책과 계획에 의한 것이 아니었지만 철저한 계획 경제는 조금씩 시장경제로 대체되었고 유통과 교통, 통신도 인민들 스스로의 힘으로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알려진 바로는 북한에서 재산권도 조금씩 형성되고 있습니다. 북한 주민들은 이제 배급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열심히 일해 돈을 벌어 살아갑니다. 이런 변화는 북한 주민의 삶을 크게 개선시켰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같은 긍정적인 측면의 한편에선 빈부격차 문제가 크게 확대되고 있습니다.
특권을 갖거나 장마당 경제에 발 빠르게 적응한 사람들은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가지만 그렇지 못한 밑바닥 계층 주민들은 하루하루 생존조차 버거운 상황입니다. 오늘 하루 힘들여 벌어야 겨우 내일 식량을 구할 수 있는 밑바닥 계층은 전체 북한 주민의 10-20% 달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이들은 벌이가 신통치 않으면 하루 한두 끼 먹는 게 고작이고 일상적인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특히 경제사정이 조금만 나빠져도 커다란 생존위기에 내몰리는 상황입니다.
문제는 이들을 보호해야 할 북한 당국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상황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극빈층에 대한 기본적인 지원체계를 갖추고 있습니다. 최소한의 생존권은 국가가 보장해줘야 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북한 당국은 밑바닥 계층의 주민들을 보호할 의지도, 또 능력도 없는 것 같습니다.
물론 지금 북한의 상황에서 한국을 비롯한 선진국가 수준의 복지를 시행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또 당장 하루아침에 잘 짜여진 복지 체계를 갖출 리도 만무합니다. 복지는 그만두고라도 당장 국가운영에 필요한 돈도 없는 게 북한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밑바닥 계층의 생존을 돕는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국제사회와 협력한다면 이들에 대한 인도적인 지원은 가능합니다. 한국과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언제든지 북한의 하층 주민을 도와줄 의지도 있고, 준비도 돼 있으며 지금까지도 그렇게 해 왔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도적 지원은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를 꼽을 수 있는데 우선 첫 번째는 북한 당국이 국제사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을 강행하면서 국제사회의 여론이 악화된 것입니다. 북한 당국이 주민들을 위해 써야 할 돈을 무기 개발에 낭비하는 상황에서 그 어떤 나라가 흔쾌히 도와줄 수 있겠습니까? 지난 2012년 3차 핵실험 이후 세계식량계획의 대북지원은 30% 정도 규모가 줄었고 이런 추세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세계 여러 국가들이 북한에 대한 지원기금에 돈을 내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다른 하나는 투명성 문제입니다. 고난의 행군 이후 북한의 식량난이 알려지면서 수많은 나라들이 앞 다퉈 인도적 지원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지원이 북한 주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군대나 간부들의 호주머니를 채우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국제사회는 식량이 주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되는지 확인을 요구했고 북한 당국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여론이 악화되면서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자체가 크게 위축됐습니다.
이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북한 당국의 태도변화가 중요합니다. 국제사회가 가장 우려하는 건 과연 북한 당국이 주민들을 보살펴줄 의지가 있냐는 겁니다. 만일 북한 당국이 솔직하게 어려운 상황을 설명하면서 도움을 요청하고 제대로 된 지원의 투명성만 보장한다면 국제사회의 분위기는 언제라도 바뀔 수 있습니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한 국가의 존재 이유는 주민의 안전과 생존을 위해서입니다. 이는 체제나 역사를 떠나 모든 국가의 사명입니다. 북한 당국은 북한 주민, 특히 가난하고 어려운 주민을 위해 국제사회와 적극적 협력해야 합니다.
특히 올해는 극심한 가뭄으로 북한의 식량 생산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예상됩니다. 북한의 현 구조상 밑바닥 계층 주민들이 가장 큰 타격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전과 같은 대량 아사 사태는 아니어도 병약한 주민들을 중심으로 아사자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런 사태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국제사회에 대한 북한당국의 태도 변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