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난주 유럽의회가 있는 벨지끄의 브뤼셀에 다녀왔습니다. 브뤼셀에 있는 유럽연합 산하 아시아연구소라는 학술단체에서 개최한 북한 인권문제에 관한 대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는데요. 오늘은 이번 대회의 토의내용과 함께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유럽 나라들의 전반적인 인식과 이들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최근 몇 년간 국제사회가 유엔을 중심으로 펼쳐온 활동의 결과로 북한 인권에 대한 유럽 사람들의 우려와 인식이 상당히 높아졌습니다. 그래서 이번 강연 대회도 열리게 된 것인데요. ‘북한의 인권, 한반도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라는 주제로, 한국의 인권 활동가 두 명 그리고 북한 정치범수용소인 요덕 15호 관리소 출신 탈북자 한 명이 초청됐습니다.
강연 대회에서 저희들은 세 가지를 중점적으로 다뤘습니다.
첫째, 지난해 북한인권조사위원회 보고서에서 나온 권고사항을 국제사회가 충실히 실천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 방법으로 더 사실적이고 구체적인 인권 유린의 증거자료를 갖고 북한 당국에게 그에 대한 해명과 확인을 받을 것을 제안했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최근에 발표된 15호 관리소의 서림천 구역 수감자 180명의 명단과 인적사항을 근거로 북한당국에 서림천 혁명화 구역이 폐쇄된 이후 수감자들이 어디로 이감되었는지, 이들의 행방에 대한 확인을 요청하게 되었습니다.
둘째, 북한이 국내 형법체계는 물론이고 국제 인권법의 기준도 아예 무시한 채 정치적인 이유로 사람들을 체포, 고문, 구금하고 심지어는 정치범수용소 즉, 관리소에 수감하는 행태를 유럽의 주요 인사들에게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김정은 집권 이후 달라지고 있는 북한의 상황과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인권문제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90년대 말의 대량 아사 사태를 지나면서 북한의 인민들은 당과 수령보다 시장에 의존해 생계를 꾸려가고 있습니다. 장마당이 활성화되면서 돈주들을 중심으로 한 부유층이 생겨났지만 장사마저 할 형편이 못 되는 가난한 하층민들의 삶은 더더욱 비참해지고 있는 현재의 북한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이번 행사를 공동주최한 유럽의회의 중도우파 정당인 ‘유럽인민정당그룹(EPP)’의 대표 의원은 “주민들이 공포통치에 침묵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독재정권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유럽은 북한의 심각한 인권유린의 상황 앞에서 침묵으로 일관할 수 없다”며 침묵의 벽을 깨겠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지금 유럽 의회와 국제 사회의 분위기입니다.
북한의 인권문제가 더 이상 북한주민들만 고통을 당하며 인내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국제사회가 이들을 보호할 책임이 있고 해결해 나가야 할 문제라는데 동의를 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유럽연합 국가들은 지속적으로 북한 인민을 위한 인도주의 지원과 기술적 협력을 유지하며 북한을 국제사회로 이끌어 내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접근 방법은 어떻게 보면 안보문제를 중심에 두고 북한에 대한 제재를 우선순위에 놓는 미국이나 남한의 방식과는 차이가 있어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북한당국이 알아야 할 점이 있습니다. 유럽 국가들이 미국이 한국보다 관대한 대북정책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런 방법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유럽 국가들은 두 차례 세계대전으로 인한 참혹한 살상과 이념갈등, 냉전과 대립을 경험했습니다. 장기간 인내심을 가지고 머리를 맞대고 화합과 화해를 토론하면서 현재의 통합된 모습을 이뤄낸 역사적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대화와 접촉을 통해 갈등과 분쟁의 수준을 낮춰왔던 경험을 북한 문제에도 적용하려는 것입니다.
북한을 정상적인 국제적 인권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제재와 압박도 필요하겠지만 우선 대화의 장으로 유도해 만남과 대화를 갖자는 유럽의 방법도 고려해봄직 합니다.
북한 당국은 자신들이 잘 하고 있기 때문에 또는 북한정부가 쓸모 있기 때문에 유럽연합 국가들이 외교관계를 유지하고 북한과 만나려고 하는 것은 절대 아니란 점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북한당국도 국제사회의 일방적 배려만을 받으려 할 것이 아니라 인권을 포함한 외교관계 등을 국제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고위간부들의 숙청과 처형, 통제와 공포, 억압의 정치가 아닌 대화와 개방을 통한 국제사회무대 진출만이 정권도 살고 주민들을 살리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