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경] 국제형사재판소와 반인도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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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방송을 듣고 계신 청취자들은 현재 유엔과 국제사회가 진행하는 북한인권 운동의 진전단계에 대해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2014년 초에 유엔 북한인권 조사위원회의 조사결과 보고서가 나온 이후 국제사회는 북한의 반인도범죄에 책임이 있는 북한 당국자들을 국제형사재판소의 재판정에 앉혀야 한다는 단계까지 갔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이 상황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 ‘국제형사재판소’가 어떤 곳인지 그리고 거기서 다루는 중대범죄인 ‘반인도범죄’는 무엇인지 알아보려고 합니다.

국제형사재판소는 국제적인 상설 법원이고요, 서유럽에 위치한 화란(네덜란드)의 헤이그에 있습니다. 국제형사재판소는 개별 국가들의 현존하는 사법체계를 보완하는 역할을 하는데요. 국제적 중대범죄는 국가의 지도자와 당국자들이 저지르기 때문에 개별국가가 재판을 열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국제형사재판소가 나서게 됩니다.

국제적인 상설 재판소가 필요하다는 논의는 1차 세계대전 후 인류는 처참한 인권침해를 목격했고, 전쟁에 책임이 있는 정치 지도자들을 어떻게 처벌하느냐는 토론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전쟁범죄 책임자들을 제소하는 임시재판소가 두 곳 열렸습니다. 전쟁을 일으킨 독일 지도자들을 대상으로 한 재판소는 독일의 뉘른베르크였고, 일본의 지도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전범재판소는 일본 도쿄에서 각각 열렸습니다. 그리고 1948년 유엔 총회는 처음으로 국제적 중대범죄를 다룰 수 있는 상설 국제형사재판소의 필요성을 인정했습니다.

이후에도 국제사회는 전쟁범죄나 대량학살 등 한 국가가 재판을 열기에 역부족인 중대범죄에 대한 형사법적 처리를 할 수 있는 상설법정을 만드는 노력을 지속합니다. 가장 결정적인 계기가 된 사건이 바로 1990년대 초반에 있었던 구유고슬라비아 내전에서 발생한 대량학살과 아프리카 르완다의 집단학살입니다. 1993년과 1994년에 각각 ‘구유고국제형사재판소’와 ‘르완다국제형사재판소’가 임시로 열리게 되었습니다.

임시재판소로는 인류에게 중대한 위협이 되는 대량학살이나 전쟁범죄, 반인도범죄 등에 신속하게 대처하기 어렵다는 한계에 부딪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1993년 유엔 총회에서 상설 국제형사재판소를 설립하기 위한 규정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1998년 이탈리아 로마에서 ‘국제형사재판소에 관한 로마규정’이 채택되었습니다. 로마규정은 2002년 7월 1일부터 발효되었고 여기에 기초해서 상설 국제형사재판소가 헤이그에 만들어졌습니다.

로마규정은 국제형사재판소의 존재근거로써 재판소의 구성에서부터 운영방식, 중대범죄의 종류, 범죄를 다루는 원칙, 형량 등을 상세히 기술하고 있습니다. 로마규정 가입국가들은 123개국이며 중대범죄가 발생했을 때는 가입국가들이 범죄자를 국제형사재판소에 형사고발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과 같이 로마규정에 가입하지 않은 나라들에서 중대범죄가 발생했을 때는 유엔의 최고기구인 안전보장이사회가 형사재판소에 제소하라는 결의안을 통과시켜서 재판을 열 수가 있습니다.

국제형사재판소에서 다룰 수 있는 범죄는 대량살상, 반인도범죄, 전쟁범죄와 침략범죄입니다. 2013년에 조사활동을 진행한 유엔 북한인권 조사위원회는 북한에서 일어나고 있는 인권유린은 ‘반인도범죄’에 해당된다고 선언했습니다.

반인도범죄는 정부기관이나 당국이 민간인을 대상으로 지속적이고 대량으로 광범위하고 체계적으로 그리고 의도적으로 자행하는 범죄행위입니다. 해당되는 범죄종류는 살해, 고문, 강제이주, 강제노동, 법 절차를 무시한 구금, 납치, 정치적, 종교적, 문화적인 이유로 주민을 박해하거나, 신체와 정신에 심각한 피해를 주는 비인간적인 처우, 성폭력 등입니다. 즉 국가권력기구가 이런 범죄행위들을 의도적으로 일반 주민들을 대상으로 저지를 경우 국제형사재판소에서 다룬다는 말입니다.

전 세계의 검찰이자 법원역할을 하는 국제형사재판소에서 다루었던 사례들을 보겠습니다. 수단의 다르푸르, 리비아, 우간다, 케냐, 콩고,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등의 지도자들이 제소되었고,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부룬디, 우크라이나 등의 지도자들은 예비심사 중입니다. 지금도 범죄자로 재판정과 재판소 구류장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코트디부아르 전 대통령, 콩고의 부통령, 콩고의 국방위원장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이런 나라들의 지도자들은 군사력과 공권력을 이용해서 자국 내에 있는 다른 민족 사람들을 대량 살상하는 등 민간인들을 대상으로 잔혹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입니다.

유엔 북한인권 조사위원회의 조사결과 북한의 최고지도자를 포함하여 노동당, 보위사령부, 국가안전보위부, 사회안전부 등의 지도부가 반인도범죄를 자행한 책임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이 문제를 국제형사재판소에 제소하라고 권고했습니다.

위에 설명한 나라의 지도부들처럼 북한의 지도부와 당국자들도 ‘반인도범죄’의 죄목으로 언젠가는 국제형사재판소의 재판정에서 엄중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