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경] 해외 북 근로자 사망, 누구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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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해외 파견 근로자 강제노동이 국제적 인권문제로 부각되면서 북한 근로자들의 안전사고도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20일 러시아 시베리아 서부의 한 도시에서 일하던 북한 근로자 2명이 건설 중이던 주택이 붕괴하면서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습니다. 또 지난 달에는 러시아 칼리닌그라드주와 상트페테르부르크시 건설현장에서 일하던 북한 근로자 2명이 추락사하기도 했습니다.

작년 1월부터 올해 4월까지 모두 112명, 매월 평균 7명의 북한 근로자들이 머나먼 이국 땅에서 각종 사고와 질병으로 사망한 셈입니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 사망자는 100명에 이를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봤습니다. 작년 한 해 사망자 80명보다 25%나 증가한 수치입니다. 이와 관련해 자유아시아방송은 강도 높은 노동과 열악한 환경 등 북한 당국의 무관심 속에 해외파견 근로자들이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북한 근로자의 해외 파견은 김정은 시대 들어와 크게 늘었습니다.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 인권문제로 국제적 고립이 심해지고 무기수출 차단 등으로 부족해진 외화를 노동자 수출로 매우기 위해서입니다. 물론 인력수출은 가난한 3세계 국가들 대부분이 취하는 외화벌이 방식이라 노동력의 해외파견 그 자체만은 큰 문제라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다른 나라의 인력수출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북한 근로자들이 버는 돈의 대부분은 간부들과 당국에 갈취당하기 때문입니다.

러시아에 파견된 근로자들의 경우 매달 600에서 800달러, 연간 8천달러를 당국에 납부해야 합니다. 때문에 북한 근로자들은 부족한 상납금을 채우고 고향에 돌아갈 때 장사밑천이라도 마련하기 위해 무리하게 작업에 나서야 하는 상황입니다. 다른 나라 근로자들이 휴식을 취하는 휴일이나 야간에도 작업을 해야만 얼마간의 돈이라도 손에 쥐고 고향에 돌아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루 평균 15시간 이상의 고된 노동에 휴식도 제대로 취하지 못하다보니 각종 사고가 이어지는 것입니다. 오죽했으면 이런 고달픈 처지를 비관해 자살하는 북한 근로자까지 나오겠습니까? 올해 새해 첫날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선 북한 근로자 한 명이 고된 노동과 경제적 어려움을 한탄해 몸에 불을 붙이고 자살해 큰 충격을 줬습니다. 카타르에선 지난 5월 북한 근로자 2명이 당국의 착취를 피해 현지 경찰서로 도망가는 일까지 있었습니다.

북한 당국이 외화벌이에만 급급하고 노동자들의 안전은 나 몰라라 하는 것도 사망사고를 증가시키는 요인입니다. 지난 3월에는 아프리카 앙골라에서 북한 근로자 10여 명이 황열병에 걸려 숨지는 일이 있었습니다. 황열병은 백신(왁찐)만 한 번 맞으면 평생 걸리지 않는 병인데도 이런 안타까운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또 북한 근로자들은 대부분 어렵고 위험한 업종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아 크고 작은 사고에 항상 노출돼 있습니다. 하지만 현지 업체와 제대로 된 노동계약도 맺지 않고 사고에 대비한 보험도 대부분 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사고를 당해 죽거나 크게 다쳐도 보상금 한 푼 제대로 받지 못하고 귀국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당국이 따로 보상해주는 것도 아닙니다.

근로자들을 머나먼 땅까지 보내 외화벌이를 시켰으면 안전에 대한 관리와 보상이라도 제대로 해 주는 게 국가가 해야 할 최소한의 도리입니다. 그러나 북한 당국은 외화를 벌어들이는 데만 신경 쓸 뿐 파견된 근로자들이 어떤 악조건에서 일을 하는지, 어떤 환경에서 생활하는지 아무런 관심도 없습니다. 국가의 책무를 망각한 것입니다.

북한 근로자들의 목숨을 담보로 한 외화벌이는 중단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북한 당국의 인식이 달라져야 합니다. 기술과 자본이 부족한 현실에서 부족한 외화를 벌어들이기 위해 인력수출은 불가피합니다. 하지만 근로자들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하며 근로자들의 안전과 생활, 인권을 보장하는 선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