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경] 역사를 거꾸로 돌리는 '평양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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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한반도가 광복을 맞이한 지 70년이 됩니다.

남한에서는 시민단체들과 정부가 제각기 광복 70돌을 의미 있게 기념하기 위해 다양한 문화행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북쪽도 광복 70돌은 똑같고 당연히 의미를 크게 두고 있지만 기념하는 방식은 참으로 어이가 없습니다.

지난 7일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조국 해방 70돌을 기념해 8월 15일부터 북한의 표준시간을 30분 늦춰 사용할 것이라고 발표하고 이를 '평양시간'이라고 부르겠다고 밝혔습니다.

남한과 북한 그리고 일본은 공히 영국의 그리니치 천문대 기준의 국제표준 시간보다 9시간이 빠른 표준시를 사용해왔습니다. 이 시간대의 기준이 되는 도시는 일본의 도쿄입니다. 하지만 북한 당국은 평양의 경도를 기준으로 삼아 남한과 일본보다 30분을 늦춘 표준시를 사용하겠다는 것입니다.

북한 당국은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장의 글을 소개하며 이번 조치의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조선은 일제의 폭압통치에서 해방됐으나 일제의 악랄한 식민지 통치의 잔재는 사회생활의 이모저모에 뿌리 깊이 남아있었다'고 지적했습니다. 말하자면 이 표준시도 일제의 잔재라는 주장입니다.

그리고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는 "나라가 해방된 때로부터 70년이 돼오는 지금까지도 우리나라의 표준시간이 아니라 일제가 강요한 시간을 쓴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민족적 수치이며 시급히 바로잡아야 할 사업"이라고 강변했습니다. 얼핏 들으면 일리가 있는 주장처럼 들리기도 합니다만 사실 관계가 틀렸습니다.

한반도에서 처음으로 국제 표준시를 정한 것은 1908년이었습니다. 당시는 서울의 경도를 중심으로 그리니치 천문대의 국제 표준시간보다 8시간 30분이 빨랐습니다. 북한 당국이 설명한 것처럼 1912년 일본 총독부가 도쿄를 기준으로 국제표준시간보다 9시간 빠른 현재의 시간으로 돌려놓았습니다. 이것은 식민지인 한국과 일본 본국과의 시차가 생기는 것이 여러모로 불편했기 때문입니다.

남한에서도 광복과 전쟁 이후 이승만 정부가 들어서면서 1954년, 다시 서울의 경도를 중심으로 한반도의 표준시간을 바꿨습니다.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겠다는 명분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국가 간 시간차이가 30분 단위까지 나게 되면 국제 교류와 협력 사업에서 불편한 점이 많이 발생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박정희 정부 들어서면서 남한은 다시 국제적 기준에 맞게 지금과 같은 시간대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남한에서는 이렇게 광복 이후 두 차례의 표준시 변경이 있었으나 북쪽에선 그런 시도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 당국은 조평통을 통해서 남한은 일본이 식민통치를 하면서 만들어 놓았던 시간대를 그대로 쓰고 있기 때문에 '특등 친일매국노들의 무리, 더러운 역적집단'이라고 비난했습니다.

조평통의 이런 논리는 과거 70년간 일본과 같은 표준시를 사용한 김일성과 김정일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비난입니다.

그렇다면 북한당국은 어찌하여 자기모순에 빠질 것이 뻔한 이런 조치를 내놓을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요?

이번 8월 15일은 김정은 정권 들어 처음으로 '꺾이는 해'에 맞이하는 '조국해방의 날'이지만 북한 당국이 일반인민들 앞에 내놓을 만한 김정은의 업적은 사실상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일제의 잔재를 청산한다는 구실로 표준시를 바꾸는 것은 대내외적으로 좋은 전략이라고 타산한 듯합니다.

최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남한과 일본과의 관계를 부각시키면서 대외적으로 남한을 비난할 수도 있고 인민들을 대상으로는 외부의 적인 남한과 일본을 동시에 비난할 수 있는 좋은 선전사업으로도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북한 당국은 언제까지 이런 얕은 수로 북한주민을 우롱하는 내부단속 선전에만 몰두할 순 없을 겁니다. 또한 이것으로 북한당국이 통일에 대한 안목이나 의지마저도 없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도 됩니다.

한반도의 가까운 미래에 통일이 있다는 것이 전제가 되었다면 과거 100년 가까운 시간을 남한과 함께 공유한 표준 시간대를 지금에 와서 바꾸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세계는 지금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전 지구가 하나의 시간대나 다름없이 함께 발전하고 있습니다. 이런 지구촌에서 평양 시간이라니, 북한 당국은 시계방향을 거꾸로 돌려 역사의 발전에 역행하는 선택을 했습니다.

북한 당국은 조국해방 70돌을 맞이해 우리가 바라는 진정한 해방이 북한 당국의 폭압과 독재에서 벗어나는 인민 해방임을 기억해야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