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경] 정보유입이 통일 준비 첫 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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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한 일간지가 보도한 남북 관련 기사가 주목됩니다. 이 신문은 남북 간 군사적 긴장 상황이 극적인 합의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보도하면서 ‘김정은은 처음으로 전 세계에 약점을 보여줬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 지도부가 대북 확성기 방송에 보여준 강한 반발을 그 약점으로 지적했습니다. 신문은 북측의 이런 반발을 ‘두려움’ 때문이라고 해석했습니다.

북한 당국이 정보와 지식의 통로를 철저히 차단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 주민들에게 들어가는 다양한 외부 정보와 지식이 독재체제의 권위를 훼손하고 위협할 수 있다는 사실을 두려워한다는 것입니다.

독일 신문의 분석과 평가가 더 의미 있게 들리는 이유가 있습니다. 독일은 이미 25년 전에 통일을 이루어냈고 그 과정에서 언론매체가 동서독의 통일과 주민들의 화합에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분단 초기에는 동독 정권도 주민들이 서독 방송을 즐기는 것을 두려워해서 외부방송을 막기 위해 노력을 했지만 기술적 한계에 부딪쳤습니다. 1970년대부터는 동독 정권도 서독 방송의 시청을 거의 묵인하다가 80년대에는 공개적으로 인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 결과 80년대 중반에는 90프로 이상의 동독 주민들이 서독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즐겼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렇게 방송을 통해 동서독 양측 주민들은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고 문화와 의식의 거리를 좁히게 되면서 통일도 극단적인 갈등 없이 진행됐다고 평가합니다.

이런 방송의 역할을 잘 알고 있기에 남한에서도 북한주민들의 방송청취 권리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8월 27일에는 통일시대를 대비한 방송법 개정안이 남한 국회에 제출됐습니다.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이 발의한 이 개정안은 북한 주민을 청취 대상으로 하는 통일 방송 사업자를 선정해 주파수를 배정하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습니다. 현재 남한의 방송들은 주요 청취자로 북한 주민들을 고려하지 않고 있습니다. 따라서 북한 주민의 자유와 알권리를 만족 시킬 수 있는 통일방송사업자를 정하고 이들의 방송활동을 지원해 통일의 포석을 깔자는 것입니다.

하 의원 측은 ‘통일을 지향하고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한다’고 규정한 남한의 헌법에 기초한 개정안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런 방송을 통해, 통일을 추구하는 남한의 헌법적 가치를 실현시키자는 말인데요, 통일은 북한의 헌법적 가치이기도 합니다.

최근 남한으로 들어온 탈북자들에게 물어본 결과, 남한의 라디오 방송을 들었던 가장 큰 이유는 '진실을 알고 싶어서' 였습니다. 북한당국이 알려주는 정보를 더 이상 믿을 수가 없기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그 다음 이유는 날씨, 환율, 세계 경제동향에 대해서 알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외화벌이 어선의 선장들 사이에서는 남한방송의 날씨예보를 듣고 배를 타는 것은 이제는 당연한 현실이 되었습니다. 시간대별로 바다날씨와 파도의 높이를 꼼꼼하게 알려주는 남한의 일기예보를 참고하는 것은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필수라고 합니다.

심지어 장마당의 장사꾼마저도 남한 라디오에서 알려주는 북한 돈의 환율과 지역별 물품가격을 듣고 장마당 가격을 예측해 장사를 하고 북한의 젊은 세대는 남한에서 유행하는 가요를 듣기 위해서 라디오를 청취하기도 한답니다.

정보와 지식, 뉴스 보도, 문화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수요가 이렇게 높은데도 불구하고 북한 당국은 모든 외부 정보를 차단하고 있습니다. 정보를 알고 문화를 누리는 것은 사실 인민의 기본적인 권리이지만 북한 당국은 전혀 그렇게 할 의향이 없어 보입니다.

남북 간 언론과 방송 그리고 문화와 정보의 유통이야말로 양측 주민들을 정서와 의식을 아우르는 실질적인 통일 방안이며 통일 준비뿐만 아니라 통일 이후 사회통합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입니다.

과거 서독이 그랬듯이, 남한의 시민사회와 정부가 함께 더 적극적이고 다양한 방식으로 북한주민들에게 꼭 필요한 정보와 객관적인 진실을 제공해야 합니다. 북한주민들에게 들어가는 정보가 바로 통일시대를 여는 열쇠가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