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경] 북한의 인권범죄, 강제실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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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30일은 ‘국제 강제실종 희생자의 날’이었습니다. ‘강제실종’은 국제 인권법에 의거한 범죄의 한 종류로 정부가 직접 또는 묵인이나 지원 하에서 개인을 체포해 구금하거나 납치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그리고 정부당국이 실종된 개인의 행방이나 생사여부에 대한 정보를 은폐하거나 자유의 박탈을 인정하지 않으며 실종자들을 오랜 기간 법적보호 대상에서 제외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국제 강제실종 희생자의 날’은 이 같은 비극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강제실종 범죄를 비판하고 실종된 개인의 행방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자는 날입니다. 남한에서도 북한당국이 자행한 강제실종 문제를 다루는 몇 가지 행사들이 열렸습니다.

9월 1일에는 유엔 서울사무소와 ‘전후납북피해자가족연합회’가 함께 기자회견을 가지고 북한당국이 저지른 납치문제에 대해 토론했습니다. 유엔 서울사무소의 폴슨 소장은 한국전쟁과 함께 지금까지 강제실종으로 사라져간 희생자의 수는 9만 6천 명 정도 된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고령이어서 생존해서 가족들과 만나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라며 우려를 표했습니다.

폴슨 소장은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을 지적했습니다. 바로 북한의 정치범 관리소로 끌려가서 행방이 묘연한 사람들을 언급했습니다. 북한의 정치범 관리소에 8만에서 12만 명 정도의 수감자들이 구금돼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이들도 강제실종의 피해자라고 말했습니다. 보위부원들이 끌고 간 이후에는 어디로 왜 데려갔는지도 그리고 수감자들의 생사여부도 알 수 없고, 심지어 국제사회에는 관리소의 존재 자체도 부정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됩니다.

실제로 탈북 후 중국에서 체포돼 북한으로 송환된 이후 보위부 심문에서 정치범을 골라낸다고 하는데요. 남한 행을 시도했거나 남한사람을 만났거나 또는 선교사를 만났다면 바로 정치범으로 취급돼 관리소로 끌려갑니다. 정확한 통계는 아직 없지만 한국에 온 탈북자들 중 이런 이유로 가족이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간 사람들이 제법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 강제실종희생자의 날인 30일 당일에는 ‘1969년 KAL기 납치피해자가족회’의 황인철 대표가 기자회견을 가진 이후, 길거리 선전활동으로 서울 시민들에게 KAL기 공중납치 사건에 대해 알렸습니다.

‘KAL기 납치 사건'은 1969년 12월 11일에 남한의 강릉에서 서울로 향하던 대한항공 YS-11기가 북한의 고정간첩에 의해 공중 납치되어 북한으로 끌려간 사건입니다. 이 비행기에는 전체 50명의 남한시민들이 타고 있었습니다. 당시 국제적십자사 등 국제기구의 비난에 북한당국은 다음 해에 비행기 탑승객들을 송환한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39명만 남측으로 보내고 11명은 현재까지 북한에 억류하고 있습니다. 북한당국은 이들 11명은 북측에 남기를 희망했다고 주장합니다만 남한으로 돌아온 39명은 나머지 11명도 남한의 가족에게 돌아오고 싶어 했다고 말했습니다. 이들 중 한 명이 남한의 MBC 방송국에서 일했던 황인철 대표의 아버지 황원 씨입니다.

황 대표는 ‘2001년 3차 이산가족 상봉'을 보면서 아버지를 찾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당시에 황 대표는 첫 딸을 갓 낳았던 시기여서 1969년 당시 32세의 젊은 아버지의 심정을 알 수 있었던 것입니다. 황 대표는 두 살난 어린 자식을 버려두고 북한에 억류되었을 당시 아버지의 심정을 상상하니 그런 고통이 세상에 없을 것 같았다며 아버지의 송환을 위해 나서게 된 계기를 설명했습니다. 황인철 씨의 고통은 1969년 이후 현재까지 계속 진행되고 있는 고통이며 아버지 황원 씨의 강제실종도 같은 기간 지속되고 있는 범죄입니다.

이처럼 강제실종은 피해자의 행방을 알게 되고 피해자가 되돌아올 때까지 실종상태가 지속되는 범죄라는 점이 범죄의 심각성을 더해 주고 있습니다. 또 특성상 강제구금과 고문과도 연결되고 심지어 법절차를 무시한 즉결처형이나 살인으로 이어질 수도 있으며, 피해자는 당사자뿐 아니라 가족들까지 확산된다는 점도 심각한 문제입니다.

2014년에 발행된 유엔 북한인권 조사위원회의 결과보고서는 강제실종은 국제형사재판소에서 다루어야 하는 ‘반인도범죄'에 해당된다고 선언하며 북한당국에게 납치된 자들에 대한 정보를 가족과 본국에 제공할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원하는 곳에서 한 가족이 서로 어울려 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가족의 권리입니다. 이를 강제로 막는 일은 인류의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 범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