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경] 가족의 생사만이라도 알려 달라

0:00 / 0:00

오는 9월 14일부터 제30차 유엔 인권이사회가 스위스의 제네바에서 시작됩니다. 이번 인권 이사회에서 가장 주목하는 건 바로 강제 실종 문제입니다. 이사회의 일정표를 보면 21일 북한인권 특별보고관의 주최로 북한인권문제에 대한 공개토론회가 열릴 예정이고 바로 여기서 전반적인 북한 인권 문제를 비롯해 북한 당국이 전 세계 시민들을 대상으로 저지른 납치와 강제 실종 문제들이 중요한 의제로 다뤄지게 됩니다.

이번 토론회는 북한 당국이 자행한 납치와 강제 실종 문제를 적극적으로 국제 사회에 이해시키고 공개토론회를 통해 따져볼 것을 권고한 유엔 북한 인권 결의안의 권고에 따라 열리게 된 것입니다. 강제실종이라는 말이 좀 낯선데요. 우선, 어떤 경우가 '강제실종'에 해당되는지 그 요건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강제실종은 첫째, 사람의 의지를 무시한 채 자유를 박탈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두 번째로 이런 행위에 정부 관료가 연루돼 있거나 최소한 정부의 묵인 하에 자행되는 경우이고 셋째는 관련 정부가 실종자들의 행방이나 생사를 은폐하거나 납치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사건들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 세 가지의 요건이 다 충족되는 경우를 국제 법에서는 '강제실종'이라고 부릅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탈북자들의 강제 북송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살 길을 찾아 국경을 넘어 남한으로 가려던 탈북자를 중국에서 체포해 북한으로 강제로 끌고 간 뒤, 국제 인권 단체 등에서 북송된 사람의 생사와 행방을 물었을 때 그런 일이 없었다고 북한당국이 시치미를 떼는 경우가 바로 '강제실종'에 정확하게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난해 유엔의 북한인권 조사위원회는 북한당국이 자행한 '납북과 강제실종'이 국제적 중대범죄 중 하나인 '반 인도범죄'에 해당한다고 선언했습니다. 국제형사재판소의 헌장이라고 할 수 있는 로마규정에서 정부 당국이 납치와 강제실종과 같은 행위를 민간인들을 대상으로 광범위하고 조직적으로 자행하는 것을 '반 인도범죄'라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문제만을 전담해서 다루는 유엔의 기구도 있습니다. '강제적, 비자발적 실종에 관한 실무그룹'이라는 곳인데요, 이 단체에서는 전 세계의 권위주의 독재국가나 군사무력집단들이 자행한 모든 종류의 강제실종 문제를 조사하고 보고서를 쓰고, 해결책을 제안하는 일을 합니다.

강제실종 실무그룹이 지난 7월 중순에 1년간의 조사내용을 토대로 연례보고서를 내놓았습니다. 이 보고서에는 2002년에 탈북해 한국에 살고 있던 탈북자 부부가 2003년 4월 중국 지린성을 방문했다가 북한 보위부 요원들에게 납치된 사건을 다루면서 이들의 행방에 대해 중국 정부와 한국 정부에 협조 요청을 했던 사건 그리고 북한 당국에 실종된 4명의 탈북자들의 행방 확인을 요청했다는 사실도 나와 있습니다.

사실 이 연례 보고서에 나온 탈북자 강제북송과 실종 문제가 그다지 이례적인 사건은 아닙니다. 비슷한 사건을 우리는 수도 없이 많이 보고, 들어왔습니다. 납치와 강제실종의 희생자로는 공식적으로 인정된 17명의 일본 사람들에서부터 태국과 로므니아 시민 그리고 6.25전쟁 중 납치된 8만이 넘는 남한 시민들, 500명 이상의 국군포로 또 500명이 넘는 남한의 어부들과 학생들. 특히 남한행을 기도하다 북송돼 생사확인이 불가능한 헤아릴 수 없는 북한 주민들은 통계조차 나와 있지도 않습니다.

올해 하반기에는 이렇게 실종된 북한 주민들의 행방을 묻고 당국의 반 인도범죄 문제의 해결책에 대해 토론하는 유엔의 활동이 줄지어 전개 됩니다. 오는 9월 중순의 인권이사회를 시작으로 해서 10월 유엔 총회와 12월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까지 계획돼 있습니다. 북한당국도 리수용 외무상을 다음달 2일에 유엔 총회에 파견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북한당국은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국제사회의 우려에 대해 '미 제국주의의 반공화국 정치적 모략'이라는 주장을 되풀이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렇게 뻔한 북한 당국의 태도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에 있는 강제실종 희생자 가족들은 최소한 북에 있는 가족의 생사만이라도 알고 싶다는 희망을 품고 유엔의 활동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가족 간 생이별로 인한 뼈를 깎는 아픔을 북한당국이 조금이라도 헤아려 주기를 기대해봅니다.